세계 불교인의 삶과 신앙(273호)

태어난 아기에 관욕해주고
재가불자 수년씩 무문관 수행
힌두문화 속 라마불교 굳건

히말라야 호숫가에 세워진 돌탑. 네팔은 티베트 재가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네팔은 중국과 인도, 방글라데시에 둘러싸인 히말라야 산맥 중앙부의 남쪽 반을 차지하는 내륙국가이다. 정식 국가 명칭은 네팔연방민주공화국(The Federal Democratic Republic of Nepal). 국토면적은 14만 7,000km이며, 인구는 3,000만 명 정도다. 흔히 ‘부처님의 나라’라고 하면 인도를 떠올리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동산은 이곳 네팔에 위치해 있다. 즉, 네팔은 불교의 발상지인 셈이다.

부처님 당시 부족국가였던 인도 북부를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왕이 통일하는데, 이후 네팔 지역은 2~3세기부터 줄곧 독립왕국을 유지해온다. 리차비 왕조 – 타쿠리 왕조 – 말라 왕조 – 샤 왕조까지 이어진다. 샤 왕조는 19세기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과의 전쟁에 패한 후 왕권이 무력화되지만, 2008년 왕정이 폐지될 때까지 존속했다. 종교적으로는 아리안족의 영향을 받은 힌두문화와 티베트·몽골의 불교문화가 혼합된 형태이다.

네팔은 간단히 설명하기가 어려운 나라다. 네팔을 알기 위해서는 사회 · 역사 · 문화 등을 고루 이해해야 한다. 산악지대에 자리한 네팔은 다종족 국가다. 체뜨리족 · 브라만족 · 마가르족 · 타루족 · 따망족 · 네와르족 · 무슬림 · 카미족을 포함해 40여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언어와 문화가 제각각이다. 아리아족의 영향으로 힌두교인이 80%에 가까울 만큼 강세여서 오랫동안 힌두교를 국교로 두기도 했지만 현재는 국교가 없다. 불교인의 비율은 20% 안팎, 그 다음은 무슬림 순이다.

네팔인 중에 불교인은 주로 몽골족이다. 따망 · 세르파 · 구룽 · 욜모 · 탁카리 · 네와르 · 마가르족은 불교신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네팔불교는 거의가 북방 티베트 불교인 금강승(金剛乘, 밀교의 한 종파인 진언종)이라고 할 수 있다. 몽골계 네팔인 중에 몇몇 종족은 토착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힌두교와 불교가 혼재돼 구분이 분명치 않은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히 구분하면 중앙산지의 북부 고지대는 셰르파를 직업으로 삼는 따망족이 많아 금강승이 강한 편이고, 남부 힌두스탠 평원으로 이어지는 저지대는 힌두교가 우세하다.

네팔 카트만두에 있는 보드나트 사원.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

성인들과 관련된 성지 중 으뜸은 탄생지다. 그런 점에서 네팔은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다.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난 룸비니가 있기 때문이다. 룸비니는 남부 따라이 루판대히 지방의 최대 도시 바이라와에서 서쪽으로 18km지점 즉, 틸라우라강 등 몇 개의 작은 강을 가로질러서 자동차로 30분쯤 달려서 도착하는 곳에 있다. 이곳은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잡초만 무성했다.

8세기 경 이곳을 순례한 혜초 스님은 〈왕오천축국전〉에 룸비니를 방문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비해 13세기경 인도의 불적지를 순례한 티베트의 승려 다르마 스마빈은 자신의 기행문에서 룸비니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역사가들은 이런 점을 감안해 9세기부터 13세기 사이에 인도를 침입한 회교도인이 룸비니를 파괴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룸비니에 있는 아쇼카왕 석주.

룸비니가 부처님의 탄생성지로 확인된 건 1896년 고고학자 퓨라 박사에 의해서다. 그는 이 유적을 발굴하면서 아쇼카왕이 세운 석주를 찾아냈고, 이를 통해 이곳이 룸비니임을 확인했다. 고고학적 유적지로만 남아 있던 룸비니는 1967년까지만 해도 황폐한 모습이었다. 당시 이곳을 방문했던 우탄트 전 UN사무총장은 이를 애석하게 여겨 세계 각국에 룸비니의 재건을 호소했다. 그 덕분에 복원을 할 수 있었고, 현재 룸비니는 ‘룸비니 개발위원회’ 사무실과 여러 불교국가에서 지은 사원이 있는데, 이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그렇다면, 네팔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때는 언제로 보아야 할까? 네팔불교의 상징으로 수도 카트만두의 중심에 있는 스와얌부나트 스투파는 1세기경 건립된 것으로 본다. 불교도 이에 앞서 전래됐으리라 여겨지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카트만두 서쪽에 있는 이 탑은 높이가 20m이며, 4각의 탑신 윗부분에는 뾰족한 모양의 상륜이 13개 있다. 이 상륜을 티베트어로 ‘초덴 팍바 싱쿤’이라고 한다.

흔히 ‘네팔벨리’로 불리는 네팔의 중앙산지는 기원전 6세기경부터 많은 부족국가가 일어난 지역이다. 이 중 가장 세력이 강설했던 카리티족은 왕국을 세워 29대를 이었다. 그 뒤에 리차비 왕조(300~800년)가 이 지역을 지배했으며, 뒤를 이어 유명한 말라 왕조가 18세기까지 계속됐다.

말라 왕조의 역사도 전기(1200~1480년)와 후기(1481~1750년)로 나뉘는데, 이 무렵이 되어서야 네팔에는 ‘네팔불교’라고 할 만한 문화적 특징이 확립됐다. 불교는 인도에서 발전을 거듭해 인도의 전 지역과 동남아시아, 중국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변모를 거듭한다. 사상적으로는 원시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가 차례로 일어났으며, 의례와 불교문화도 힌두교의 영향으로 변모했다.

네팔수도 카트만두에 있는 스와얌부나트 사원의 불상.
네팔 카트만두 수도원에서 승려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힌두교의 접점, 그리고 밀교

이 과정에서 생겨난 밀교는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가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특히 티베트 지역에서는 샤머니즘과 불교가 융합해 ‘금강승’이라는 독특한 밀교계통의 불교를 발전시켰다. 네팔은 남쪽으로는 인도와 인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히말라야를 넘으면 티베트와도 접경을 이루고 있다.

네팔은 한때 티베트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이때 금강승(밀교)이 자연스럽게 네팔에 뿌리내리게 됐다. 네팔이 티베트에게만 불교를 전수받은 것은 아니다. 인도 대륙에서 융성하던 불교는 주변국가인 네팔에도 자연스럽게 전파되었으리라 본다. 다만, 힌두교의 영향으로 그렇게 융성한 편은 아니었으리라 추측된다. 또한 이미 힌두교의 영향으로 변질된 형태의 불교였으리라. 이런 상황이었기에 금강승은 네팔에 매우 용이하게 정착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네팔불교는 ‘라마교’가 되었다.

네팔의 불교문화는 대체로 말라 왕조, 그 중에서도 후기 말라 왕조 때 완성되었다. 전기 말라 왕조 때에도 이슬람이 크게 융성했다. 14세기경 방가라 지방에서 이슬람군이 카트만두에 침입해 불교사원을 파괴하고, 행정기구를 마비시키면서 불교는 크게 위축되었다. 14세기말에 와서 유능하고 강직한 시티말라 왕이 네팔을 재통일하는데, 이때 다시 불교가 꽃피기 시작한다.

이 시대는 네팔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시대다. 카트만두 동남쪽에 있는 말라 왕조 후기의 도성 박타푸르(Bhaktapur)와 남쪽에 있는 고도(古都) 파탄(Patan)에는 지금도 많은 힌두사원과 불교사원이 한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

파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다. 이곳에는 원숭이 신을 모신 힌두사원 부근에 마하바웃다 사원이 있다. 이 사원에는 1,000개의 불상이 벽돌 하나하나에 조각돼 장관을 이룬다. 네팔에는 이러한 힌두사원과 불교사원이 2,500여 개에 달한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데로 두 종교 간의 엄격한 구분이 없어 네팔의 불교에 대한 예비지식이 부족한 힌두교 순례자들은 ‘관음보살’을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며 참배하기도 하고, 불교 순례자들은 힌두의 수행자를 불교의 승려로 오인하기도 한다.

말라 왕조는 18세기 중엽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나 왕국을 삼등분하여 통치했는데, 호전적인 구르카족의 침입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불교는 티베트에서 온 라마승들에게 의해 계속 명맥을 유지했다. 스와얌부나트 사원은 소년불교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학생 수는 2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모두 사원에서 합숙을 하면서 불교예절과 불교교리 등을 배운다. 이들은 학교 측의 허락 없이는 집에 갈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한 규율 아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있다.

네팔 불교도들은 마니차(摩尼車) 돌리기를 좋아한다. 실제로 많이 돌릴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네팔 사원에는 손에 쥘 수 있는 크기부터 몇 미터 크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마니차가 있다. 스님이나 불자들은 날마다 새벽 3시부터 이 마니차를 돌리기 시작한다. 상황이 안 될 때에도 매일 아침과 저녁에 한차례씩이라도 돌린다. 그리고 매년 음력 4월 한 달간은 매일 밤을 새워서 탑을 돌며 마니차를 돌리거나 오체투지를 한다.

불교 신자가 스와얌부나트 사원에서 부처님을 존경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재단을 어루만지고 있다.

불자의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네팔의 불자 집안 아기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불자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불자 집안에 아이가 태어나면 스님(라마)을 찾아뵙고, 하나부터 열까지를 스님에게 물어보고 행한다. 스님은 아기가 태어난 날부터 3일에서 7일 사이에 관욕의식[Tvusol, 튀솔]을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태어난 아기를 목욕시키기 위해서 좋은 날짜를 정해준다. 아기를 목욕시킬 때는 그냥 민물과 비누로 하는 게 아니라, 스님이 사원에서 여러 가지 약초로 만든 물을 약병에 담아 준비해온다. 집에서도 준비할 게 있는데, 쑥과 흰색 돌맹이다. 정해진 날짜에 스님을 집으로 모셔와 집 문 앞에서 관불의식을 한다. 그 의식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아기 옷을 모두 벗긴 다음, 엄마나 가족 중에 목욕을 잘 시키는 사람이 아기를 목욕 시킨다. 그리고 스님은 아기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병에 담아온 약초 물로 목욕을 시킨다. 목욕한 다음, 아기 아빠가 새 수건으로 아기를 닦아준 후 새 옷을 입혀준다. 아기를 목욕시키기 전에 숯불에 흰색 돌멩이를 얹어 달구고, 그 위에 쑥을 놓는다. 여기에 물을 뿌리면 생기는 연기 위에 아기를 놓고 목욕시키는데, 이는 나쁜 기운을 모두 몰아내고,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원한다.

둘째, 아기 엄마와 아빠가 목욕진언과 의식염불을 하면서 세수를 시킨다.

셋째, 모든 가족과 의식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차례로 아기의 세수를 시키고, 집안 곳곳에 약초 물을 뿌려준다. 이것은 집안을 청결하게 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런 절차를 거친 다음에는 신중(神衆)에 향공양을 올린다. 이유는 아기가 새로 태어날 때 집안에 좋지 않은 기운이 들어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향공양을 통해 나쁜 기운이 하나도 남지 않도록 하는 의식이다. 다음에는 스님(라마)이 아기의 앞날에 행운이 오도록 축원불공을 하면서 이름을 불러준다. 그리고 스님은 아이의 태어난 띠(해)와 날짜, 시간 등의 사주(四柱)를 적어 부모에게 건넨다. 아기의 전생과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지를 알아보는 행위다. 이렇게 한 사람의 네팔 불자의 삶은 시작한다.

네팔 불자들이 깨달음의 길(수행)을 걷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출가해 수행을 하면서 세속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출가하지 않고 속가에서 부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이 출가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아이가 5~6세 때 훌륭한 스승을 찾아서 인연을 맺게 해준다. 부모는 스님을 찾아가서 스님에게 삼배를 올린 뒤 무릎을 꿇고 자신의 소개를 하면서 소원을 말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존경하신 스님! 스님께서 제 자식을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불제자가 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그것이 제 소원입니다. 제 자식을 제자로 받아 주시겠습니까?”

부모가 스님에게 이렇게 부탁하는 까닭은 자식이 사바세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이가 스님 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부탁을 받은 스님은 “법우여! 그러면 먼저 이 아이에 대해 확인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스님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이 아이가 공부를 잘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아이, 큰 스승 만들고 싶으면

만약 스님이 아이를 불제자로 받아들인다면 이렇게 말한다.

“000 법우여! 그대들이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이 아이는 그대들의 자식이기도 하지만, 오늘부터는 내 제자이기도 합니다. 이제부터 모든 것을 내가 알아서 가르칩니다. 그대들은 이 아이를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아이를 훌륭한 지도자로 만들고 싶으면, 앞으로 10년 동안 이 아이를 찾지 마십시오.”

부모가 스님의 말을 지키겠다고 약속하면 스님은 아이에게 “지금부터 너는 나의 제자가 되었다. 나는 너의 스승이다.”라고 말한 뒤, 제자에게 보살계를 주고 법명을 지어준다. 스승이 보살계를 주기 전에 제자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면서 삼배를 올린다. 이때 스승이 같이 염불하면서 제자에게 “너의 머리카락을 잘라도 되겠느냐?”하고 물어본다. 그러면 제자는 “네~ 잘라 주십시오.”하고 대답한다. 제자의 대답을 들은 스승은 제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가위로 머리카락을 조금 자르고 부처님 전에 올린다. 이때 제자는 “이제부터 스님은 저의 완전한 스승이 되셨습니다. 스승님께 큰 절로 삼배를 올립니다. (라마라 캽수치오). 스승님께 귀의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의식 뒤 스승은 제자에게 법명이 무엇인지 일러주고 “제자야! 이제부터 너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 내 제자가 되었다. 너와 나는 한 생각이다. 이제는 제대로 가르쳐 주마. 첫째, 오계(Pnchashila)를 지켜야 한다. 불살생 · 불투도 · 불망어 · 불사음 · 불음주 등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키고 삼악도(탐 · 진 · 치)를 버려야 한다. 지킬 수 있느냐?”고 세 번 물어본다. 이에 제자는 “네~ 지키겠습니다.”를 세 번 맹세한다. 불자가 지켜야 할 세 가지와 버려야 할 세 가지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로 만탕사원(Lo Manthang)의 불탑앞에서 기도하는 네팔 불자.

불자가 버려야 할 세 가지

1.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하면서, 다른 외부 종교 신들에게 절대 귀의하지 않는다. (Sangyela kyapsu songne Jigtenpi Lhala Chhyag michal)

2.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하면서, 모든 생명과 중생들을 죽이거나 살생하지 않는다. (Chhyoela kyapsu songne Semchyenla Noeche Pong)

3. 거룩한 승가에 귀의하면서, 나쁜 마구니들과 하루도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 (Gyedunla Kyapsu songne Dro muteg chyendang Syagdro mijhe)

불자가 지켜야 할 세 가지

1.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하면서, 불상이 깨지거나 사진이 찢겨 있더라도 조금 높은 곳, 좋은 자리에 올려두어야 한다. (Sangyela kyapsu songne Sangye ku Hinchhela Chhyagdu Guipa xe)

2.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하면서, 경전의 글씨만 보이더라도 높은데 올려두거나 불에 태워 주어야 한다. (Chhyoela kyapsu songne Higye Na. Ra. Hinchhela Chhyagdu Guipa xe)

3. 거룩한 승가에 귀의하면서 노란색과 빨간색을 밟거나 함부로 버리지 않고 귀의해야 한다. (Gyedunla Kyapsu songne, Goe marser Hinchhela Chhyagdu Guipa xe)

재가불자들 치열한 수행

네팔 불자들은 일 년에 네 번은 반드시 사찰에 간다. 부처님오신날(음력 4월 보름), 부처님이 성도 후 처음 설법한 날(음력 6월 4일), 부처님이 천상에 있는 어머니(마야부인)에게 설법하고 내려온 날(음력 9월 23일), 부처님이 신통력을 보이는 날(음력 1월 1~15일)이다. 그리고 매월 음력 8일(약사재일), 10일(파드마삼바바재일), 15일(아미타재일), 25일(여자신중재일, 라기니신 재일), 29일(신중기도일), 30일(부처님재일) 등 여섯 차례 사찰을 참배하고 기도한다. 특히 신중기도 때는 신중에게 곡차를 올리는데, 불자들은 절대 마시지 않는다.

불자들은 사찰 참배 시 꽃 한 송이나, 과일, 쌀, 버터로 만든 램프(양초 대용) 등을 공양물로 가져간다. 법당에 들어서서 바로 부처님 전에 삼배 또는 오체투지를 하고 불전으로 향한다. 불단에는 만다라가 있는데, 그 위에 자신이 준비한 공양물을 얹고, 공양물에 이마를 댄 다음 개인이나 가족의 소원성취, 일체중생의 행복을 기원하는 축원을 한다. 참배가 끝나면 법당 밖으로 나와 램프를 켜고 기도하거나 탑돌이를 한다. 이들은 사찰불사에 동참하고 싶거나, 개인적으로 대중공양 같은 보시를 하고 싶을 때는 사찰의 재무담당자를 통해 시주를 한다. 대중공양의 경우, 시주받은 돈으로 재료를 사서 공양간에서 음식을 만들어 스님들에게 공양한다.

특히 네팔 불자들은 경전(대장경)을 중요시해서 사찰이나 집에서 늘 독송한다. 티베트 대장경은 전체 100권으로 구성돼 있는데, 100권을 축약해 16권으로 만들었고, 16권을 축약해 3권으로 만들었고, 3권을 축약해 1권으로 만들어 놓았다. 각자의 재정 상황에 따라 경전을 구입해 독송할 수 있다.

네팔 불자들은 일반적인 신행생활 외에도 한국 선종사찰의 무문관과 같은 곳에서 수행하기도 한다. 규모가 있는 사찰에는 대부분 재가불자들을 위한 수행공간이 있다. 수행기간은 6개월, 1년, 3년3개월3일 등 다양하다. 개인의 건강상태나 여건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불자들이 수행공간에 들어가면 밖에서 문을 잠근다. 수행공간은 개인 수행처와 대중방으로 구분돼 있다. 특이한 점은 설법을 하는 스님도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만 수행공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강사 스님도 수행하는 불자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대중방의 창문을 통해 강의할 정도로 재가불자들의 수행처는 출입제한이 엄격하다.

수행공간에 들어가면 불자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 일과가 끝나는 저녁 8시까지 수행정진을 한다. 수행기간도 4등분해 네 종류(오체투지, 금강살타진언, 만다라 공양, 염불명상)의 수행을 한다. 각 수행은 매회 500번 씩, 하루 총 2,000번 한다.

오체투지는 몸으로 지은 업을 참회하는 수행이고, 100자로 된 금강살타진언은 입으로 지은 업을 참회하는 수행, 만다라 공양은 자신의 소구소원을 기원하며 하는 공양, 염불명상은 (스승을 생각하면서 스승의 도움을 받아)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수행이다. 구체적인 수행일과를 보면, 새벽 3시에 일어나 하루 네 차례 수행(오전 4~6시, 8~10시, 오후 2~4시, 6~8시)을 하고, 오후 5~6에는 신중기도를 한다. 공양은 오전 7시에 아침공양, 낮 12시까지 점심공양(남방불교권은 오후 불식) 두 끼만 한다.

국교가 한때 힌두교였던 만큼 힌두인들이 많지만, 불교인들은 그들과 종교적으로 마찰을 빚지 않고 이웃사촌처럼 잘 지낸다. 다만, 한국 기독교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와 마찰을 빚고 있는데 심히 우려스럽다.

라마 쿤상 도르제(Lama Kunsang Dorje)

네팔 스님. 서울네팔법당(일원동 소재) 주지. 1981년 네팔 나라그준 카유 사원에서 제10대 툴구 고사르 린포체를 은사로 사미계, 1985년 제14대 달라이라마를 전계사로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했다. 1999년 한국으로 건너왔으며, 남양주 덕소 묘적사에서 정진했다. 2017년 1월 서울네팔법당을 개원, 네팔을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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