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명강연(273호)

퓰리처상 수상한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는?

미국의 과학자이다. 1937년 미국에서 출생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생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의과대학 생리학 · 지리학교수이며, 조류학 · 진화생물학 · 생물지리학 분야로 학구적 영역을 넓혀왔다.

그는 〈네이처(Nature)〉, 〈내추럴 히스토리(Natural History)〉, 〈디스커버(Discover)〉 등 세계 최고의 과학지에 빈번하게 기고를 하는 과학 분야의 저술인이다. 저서 〈제3의 침팬지(The Third Chimpanzee)〉로 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수여되는 영국의 ‘과학출판상’과 미국의 ‘LA타임스 출판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 · 미국과학아카데미 · 미국철학협회 회원이며, 미국지리학회가 주관하는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 1998년 퓰리처상과 영국 과학출판상을 수상한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를 비롯해 〈문명의 붕괴(Collapse)〉, 〈어제까지의 세계(The World Until Yesterday)〉, 〈제3의 침팬지(The Third Chimpanzee)〉, 〈섹스의 진화(Why is Sex Fun)〉 등이 있다.

이 내용은 2016년 12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인류사에 있어서 종교의 기능은 무엇일까?’를 주제로 한 강의다.

그는 2013년 5월 예루살렘에서 열린 이스라엘 의회 행사에서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으로부터 올해의 농업상을 수상했다.

저는 종교를 인류가 가진 특성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동물에 비해 큰 두뇌를 가진 인간은 원인과 결과, 주체(主體, agency) 등의 개념을 연역해 내고, 특히 주체 개념을 일반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과거에 인류는 주체 개념을 다른 사람, 동물뿐만 아니라 태양 · 바위 등 자연물이나 자연현상에도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과학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을 구분함으로써 우리 선조가 자연물에도 주체 개념을 부여하는 등 주체개념을 지나치게 일반화해 초자연적인 냥 잘못 이해했던 것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종교의 초기 기능 중 하나로 ‘설명’이 있습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종교를 통해 초자연적인 현상을 설명했습니다. 시대가 변해 현재 우리는 과거와 달리 과학적으로 세상을 이해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사실 과학적인 이해와 비과학적인 이해의 구분은 임의적이라 봅니다.

예를 들어, 뉴기니인들은 질병을 각종 주술(呪術, sorcery)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의사가 뉴기니 마을에 가서 “병은 병균 때문에 발생하는데, 병균은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라고 말하자 뉴기니인은 “병균을 본 적이 있습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아니요, 하지만 병균이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대답한 의사에게 뉴기니인은 “음, 그럼 당신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는 것이군요?”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태양’과 같은 것에 주체 개념을 적용하여 태양신이 태양을 움직인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이처럼 종교의 초기 기능 중 하나는 ‘설명’이었고, 이 기능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점점 쇠퇴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종교의 초기 기능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위험에 대한 불안감을 다독여 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 기능은 아직도 종교의 기능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각 종교는 의식이나 기도 등을 통해 사람들의 불안감을 해소해 줍니다. 북이스라엘의 한 마을에 폭격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린 후 인근으로 대피한 동네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한 결과, 대피자 중 종교인인 2/3 정도가 기도문을 외웠고, 종교인들은 비종교인이었던 나머지 1/3보다 불안감이나 분노 같은 감정을 덜 느꼈습니다. 또한 잠을 잘 때도 더 양질의 수면을 취했다고 합니다.

종교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죽음이나 괴로움에 대하여 안위를 제공하는 기능도 합니다. 특히 좋은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때 기독교에서는 천국에 가면 잘못된 일들이 모두 바로잡아질 것이라고 말합니다.(불교에서는 인과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좋은 사람은 상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을 것이라 믿으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습니다. 저의 경우도 제 아들을 병마에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잠시나마 천국의 존재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구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죽음에 대한 안위를 제공하는 종교의 기능은 삶이 더 괴롭고 어려워짐에 따라 강화되었습니다.

그의 저서 〈총, 균, 쇠〉는 1998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5500여 년 전 국가와 정부 개념이 생김에 따라 종교는 새로운 기능을 가지게 됩니다. 현대 사회에는 왕이나 대통령, 국무총리와 같은 개념이 있고, 우리는 선거철마다 “이 ‘추장’에게 음식과 세금 등을 제공할 의무의 정당성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지도자에 대한 복종과 그 정당성’은 인류 사회의 진화와 함께 생겨난 문제입니다.

역사 속 각종 왕국과 제국 속 왕과 황제는 신과의 관계를 통해 백성들에게 복종을 호소 또는 강요하였습니다. “그대가 나에게 복종하고 음식과 노동력을 제공하면 짐(황제 또는 왕)이 신과 소통하여 비를 내리고, 그대에게 혜택을 내리도록 하리라.” 하는 식이였지요. 이 기능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쇠퇴했습니다. 이제는 신과 연결된 존재여서 왕과 대통령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과 사법제도 등이 있기 때문에 복종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쇠퇴한 기능 중에 ‘낯선 사람과의 공생’에 관련한 기능도 있습니다. 소규모 전통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서로를 알고 지냅니다. 따라서 같은 그룹에 속한 사람은 친절히 대하고, 외부인에게는 친절히 대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행동지침입니다. 하지만 인류사회의 발전에 따라 한 사회에 속하는 구성원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고, 이와 함께 새로운 문제가 등장했습니다. 아직 과거 전통사회 양식을 보존하고 있는 뉴기니인들의 행동지침은 간단합니다. 외부인을 만날 일도 거의 없지만 외부인을 만나면 뉴기니인들은 그 외부인을 죽이거나 그로부터 도망을 칩니다. 그런데 소규모 사회와 달리 규모가 큰 사회에서는 만나는 낯선 사람을 모두 죽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낯선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내용을 담은 규칙이 생겨납니다. 십계명(十誡命, Ten Commandments)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십계명에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낯선 이와의 공생’은 6000여 년 전 새로 생긴 종교의 기능입니다. 이 기능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쇠퇴하였습니다. 이제는 십계명 때문이 아니라 법과 제도 때문에 살인을 하지 않습니다.

또다른 저서 〈어제까지의 세계〉.

마지막으로 종교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합니다. 뉴기니와 같은 부족사회에서는 정기적인 부족전쟁이 일어납니다. 이런 부족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외부인을 죽이는 것에 대한 제재(制裁)가 없습니다. 같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친절하지만, 다른 부족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뉴기니의 아이들은 십계명이나 살인을 금하는 가르침을 배우지 않습니다. 하지만 살인을 금하는 계명을 배우며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난해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18년 동안 타인을 해하지 말라더니 18세로 성인이 되니 갑자기 “아, 그 계명은 이제 잊고, 저기 있는 저 사람들을 죽여.” 하는 명령을 마을 어른들로부터 듣습니다.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이지요.

실제로 세계 제1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 참전한 군인 중 절반 정도의 군인이 총기를 발사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다른 예를 들자면, 제 아내는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군인들과 일하는 임상심리학자인데요, 아내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군을 훈련할 때도 사막에 데리고 가서 처음에는 사람의 특징을 전혀 가지지 않은 목표물을 상대로 연습을 합니다. 이후 점차적으로 사람 형상을 한 목표물로 바꿔 총을 쏠 수 있도록 한 후 마침내 사람 사진을 목표물 삼아 발사하도록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살인은 종교에 의해 어떻게 정당화되는 것일까요? “십계명은 네가 속한 그룹에만 해당되고, 저기 다른 그룹은 아주 사악하니 죽어야 마땅해.”하는 방식으로 정당화 합니다. 이로 인해 이제 다른 종교를 믿는 타인을 죽일 의무가 생긴 것입니다. 중세시대에는 종교에 의해 정당화된 대량살상이 빈번히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쟁을 정당화하는 종교의 기능은 지난 몇 천 년 간 쇠퇴해왔습니다. 여전히 종교에 기인한 살상도 일어나긴 하지만 현대에 일어나는 살인은 대개 종교적 동기보다 정치적 동기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는 시간 · 에너지 · 인력 등 엄청난 자원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무신론자 사회보다 유신론자 사회가 역사상 훨씬 더 융성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지금까지 설명한 종교의 기능에서 찾습니다. 또 위와 같은 기능이 종교가 범세계적인 현상이 될 수 있었던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어떨까요? 50년 후 종교는 어떤 모습일까요?

제 생각에 종교의 기능과 생존은 깊은 상관관계를 가질 것 같습니다. 현재 스칸디나비아에 위치한 국가들과 같이 교육수준이 높고 전쟁이나 테러로부터 안전한 국가의 일요일 예배 참석률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영국도 비슷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반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가에서는 종교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강한 국가인 미국 내에서도 지역차가 심합니다. 가난한 지역일수록 종교를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여러 가지 문제의 해결을 통해 인류가 더욱 번영하고 인류 대부분이 삶에 만족하게 된다면 종교는 계속 쇠퇴하게 될 것이고, 인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번영하지 못해 많은 사람이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다면 종교는 강성해 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혜인

부산외국어고등학교, 서울교육대학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영어 · 교육학 · 한국불교를 공부했다. 2013년 초 인도에서 열린 샤카디타 세계불교여성대회에서 통 · 번역을 했던 것을 계기로 불교 번역에 입문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