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명론(272호)

에띠엔 라모뜨.

인도와 불교를 넓고 깊게 기술한 通史

대개 한 나라를 여행하고자 할 때 여행가방 안에 일용품 이외에 무엇을 넣어야 할까? 서로 차이가 있겠지만 먼저 그 나라의 지도와 여행 안내서를 지참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그 나라를 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그 나라의 통사 중 가장 권위가 있는 역사책을 구해 읽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인도불교 통사’를 읽는다면 인도의 역사와 문화 중에서도 가장 뚜렷한 자취를 남긴 불교와 힌두교, 자이나교와 이슬람교의 역사와 문화까지 알게 될 것이다. 뒤이어 해당 관심 분야의 전문 통사를 구해 읽게 되면 그 분야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까지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관심 분야가 불교라면 무엇보다도 인도와 불교를 온전히 그려내고 있는 ‘인도불교 통사’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기획된 2권 중 1권만 출간돼

인도불교의 통사로는 에띠엔 라모뜨(1903~1983)의 〈인도불교사〉 1, 2(시공사 출간)와 히라가와 아키라(1915~2002)의 〈인도불교의 역사〉 상, 하(민족사 출간)가 단연 최고 역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들 두 가지 중 하나를 구해 통독하게 된다면 인도불교의 지형을 온전히 그려갈 수 있을 것이다.

에띠엔 라모뜨의 〈인도불교사〉는 본디 ‘불교의 기원(서력 기원전 6세기)에서 샤까 시대(기원후 1세기까지)의 상좌부불교를 다룬 제1권이다. 그는 제1권에 이어 대승불교 역사를 다룰 제2권까지 쓸 계획이었으나 아쉽게도 이루지 못했다.

라모뜨가 쓴 제1권은 워낙 분량이 많아서 색인을 포함해 제1책(915면)과 제2책(629면)을 합치면 1,544면에 이르는 분량이다. 이렇게 방대한 통사를 기술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 십 년의 준비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과 자료에 힘입어 10여 년 동안 기술하여 이 통사를 간행하였다. 이 책은 1988년에 영어로도 번역이 되어 동서양 학계에 널리 알려졌다.

우리말 〈인도불교사〉는 동국대 호진 스님이 9년 넘게 번역에 착수해서 간행하였다. 이 저술은 유럽학자들에 의해 “불교 연구에 있어서 이정표” 혹은 “불교 연구 역사에 있어 한 시대의 획을 긋는 기념비적인 저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 학계에 이렇게 저명한 통사의 기술과 번역본이 간행되지 못하는 것은 ‘대학평가’와 ‘개인평가’가 짧은 호흡의 논문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일 것이다.

종래의 통사들을 쓴 역사가들은 당시까지 발견된 문헌과 유물 및 유적 중심으로 기술해 왔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와 과학자들이 ‘방사선을 이용해 유물 · 유적의 절대연대를 측정하는 방법’ 즉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법’을 통해 해당 유물의 연대를 측정하면서 인문학의 연구에도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해 왔다. 인도와 네팔 지역 필사본들의 발견, 중국과 티베트 자료들의 조사, 금석문들의 발견과 고고학적 발견물을 통해 종래의 불교 통사들은 이제 새로 써야할 때가 되었다. 최근에는 인간의 기억에 의한 기록에 입각한 구술 사료까지 확보하면서 역사 기술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일반 역사뿐만 아니라 불교 역사 영역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도 상좌부불교의 역사 다뤄

에띠엔 라모뜨의 〈인도불교사〉 제1권은 인도의 고대불교 즉 ‘상좌부불교의 역사’에 해당한다. 그가 제1권에서 염두에 둔 관심사는 “불교에게 부족한 역사적인 틀 속에 불교를 재정립해서, 스스로 칩거한 관념의 세계로부터 불교를 현실세계로 이끌어내는 것이었다.”(7면) 라모뜨는 “끊임없이 비문들을 참고하고, 연대기들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중국 순례자들이 제공해준 지리적인 영역의 정보들을 정리함으로써 어느 정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7면) 이 때문에 그는 종래의 불교사와 달리 “제7장 가운데에서 앞의 5장은 불교적인 사실들이 포함돼 있는 인도 역사에 대한 서술로 시작”(7면)하였다.

여기서 그는 각 장마다 ‘이 시대의 특징들’을 요약한 뒤 ‘역사적 - 지리적 자료’ 혹은 ‘역사적인 사실들’ 및 ‘불교의 전설과 전승’의 검토 위에서 기술하고 있다. 제6장의 ‘부파불교’에서는 붓다의 말씀을 최대한 널리 전파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많은 언어로 그것을 옮김으로써 붓다의 말씀을 보급시킨 불교 언어의 형성문제와 부파의 기원과 분포 및 업적을 다루고 있다. 제7장의 ‘불교라는 종교’에서는 ‘정법(正法)이 통과한 단계’, ‘신격화된 붓다’, ‘불교의 이차적인 형태’에 이어 ‘보유’편으로 ‘아쇼까의 새로운 법칙들과 두 가지 언어로 된 깐다하르비문’을 덧붙이고 있다. 나아가 라모뜨는 “첫 6세기 동안의 불교를 연대기적으로 기술한 것에 다시 2장을 첨가하여 1장은 부파들에, 그리고 다른 1장은 불교라는 종교에 할애하였다.”(9면)

특히 라모뜨는 이 책 전체를 통해 “원전자료에는 전설적이고 모순적인 점들이 많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면서도(11면) “각 줄마다 원전(原典) 자료에 의거하면서 가능한 그것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10면)고 밝혔다. 그 이유를 그는 “불교 전승은 경이로운 일에 싸여 있다. 어떤 부파들은 그것을 축소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부파들은 과장하기도 했지만, 경이로운 일은 도처에서 나오고 있다. 우리는 서구적 합리주의의 이름으로 그것을 제거해 버리려고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11면) 그러면서도 그는 “그것을 무시해버리는 것은 독자들에게 불교의 희화적(戱畵的)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될 뿐, 여전히 역사적인 진실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사실의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전설을 버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경이로운 일이 자료에서 항상 차지했던 자리를 그것에 남겨줌으로써, 우리는 붓다 제자들의 정신상태를 좀더 충실하게 반영할 수 있다고 믿는다.”(11면)고 하였다.

라모뜨는 이어 “우리가 추구하는 연구의 진정한 목표는 이런 정신상태이지, 파악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파악할 수도 없는 역사적 확실성이 아니다. 게다가 자료를 대조하는 것과 인물과 동물 모습을 새긴 기념물들로써 문헌들을 확인하는 것은, 가장 명백한 허구적인 사실들을 일소하고, 받아들일만한 관점에서 전통을 제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보다 처리하기 어려운 점은 여러 문헌에 수없이 많이 나오는 모순들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이다.”(11면)라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사료에 대한 평가에 있어 어느 한 쪽에 치우침이 없는 가치중립적인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관은 역사가들이 반드시 견지해야 할 점이자 지켜야 할 점이다.

고대 인도불교 모든 분야 망라

흔히 역사가들은 역사적인 사건에 집중하다 보면 철학사상적인 부분의 기술에 소홀하기 쉽다. 더욱이 불교사를 기술하기 위해서는 붓다와 붓다의 기본교리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라모뜨는 (붓다의)“내가 발견한 이 진리는 깊고, 알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미묘하고, 난해하고, 모든 생각을 넘는 것으로서, 오직 현자(賢者)만이 이해할 수 있다. …… 이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요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인과법, 즉 원인과 결과의 사슬(12연기법)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vinaya. I. pp.4~5, 95면)는 부분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불교에 대한 접근의 어려움에 대해 전술한 대목이다.

라모뜨는 불교의 핵심이 인과법 즉 연기법에 있음을 분명히 알고 이 통사를 기술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경전에서 “연기법을 이해하는 자는 법을 이해하고 법을 이해하는 자는 연기법을 이해한다.”는 부분을 인용하면서 “연기법만이 제법(諸法)이 어떻게 해서 어떠한 실체적인 것도 없이 엄격한 결정론에 지배되고 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며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고(苦)는 존재한다. 그러나 괴로움을 당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업을 짓는 자는 없다[無作者]. 그러나 업은 있다.[而有業報]’라는 사실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설명해 준다.”고 하였다.

라모뜨는 “우리는 이 책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 관점들을 강조하거나 모순들을 지적했다. 그러나 초기 저자들의 정신상태와 의도를 나타내는 발전 경향을 밝히기 위해 그것들을 연대순으로 분류하려고 애썼다. 이 방법 덕택으로, 예를 들면 두 번의 첫 불교 결집에 관한 전승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매우 다른 목적으로 어떻게 이용될 수 있었는가를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12면, 본서 1권 pp.263~276) 그는 불교가 소홀히 해 온 역사적 · 지리적 자료에 집중하면서 연대순으로 분류하기 위해 애썼는데 이는 저자들의 정신상태와 의도의 발전 경향을 이해하기 위함으로 이해된다.

특히 그는 “불교에 끼친 외국의 영향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대단히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자발적으로 모든 존재들에게 자신을 개발한 불교는 보편적인 종교라는 명칭을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불교는 아시아 대륙의 가장 넓은 부분을 정복했다. 그렇지만 그 역사의 첫 몇 세기 동안에는, 불교는 인도적인 한 현상이었을 뿐이었다.”(12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그의 기술 태도는 불교에 대한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불교사, 특히 인도불교사 기술에 대한 신뢰를 드높이고 있다.

이 책은 붓다의 생애로부터 초기불교 교리, 교단의 조직, 성전의 성립과 발달, 불교의 언어, 부파의 기원, 전도와 전파, 아비다르마의 발전, 조각과 건축, 유적의 발굴, 문헌학, 금석학, 고전학 등 고대 인도불교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또 인도 서북부의 카슈미르와 간다라, 나아가 스리랑카의 불교 역사까지 포괄하고 있어 이 책은 인도불교사를 넘어 ‘인도대륙불교사’를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 특징과 특장이 있다. 각종 관련 사진과 9면에 이르는 약어표, 32면에 이르는 참고문헌목록, 56/39면에 이르는 찾아보기(제1권/제2권)는 〈인도불교사〉로서 이 책이 얼마나 넓고 깊은 정보를 담고 있는가를 시사해 준다. 다만 이 책이 〈인도불교사〉의 이름을 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좌부 불교 이후에 전개된 ‘중관과 유식 및 밀교로 이어지는 대승 및 금강승에 대한 논구’와 ‘각 시대의 특징’ 및 ‘역사적인 사실들’을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대단히 아쉽고도 안타까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고영섭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소장,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소장. 〈분황 원효의 생애와 사상〉, 〈삼국유사 인문학 유행〉, 〈한국불학사〉, 〈한국불교사연구〉, 〈한국불교사탐구〉 등 다수의 논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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