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해외구호활동 현장리포트(273호)

더프라미스 식수 개발사업

더프라미스가 동티모르에 설치한 식수대에서 세수를 하는 아이들. 미소가 해맑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발리와 호주 북부 다윈 사이에 위치한 섬나라다. 남한의 6분의 1 정도 크기로, 강원도 정도의 넓이를 가진 섬이라고 보면 된다. 이 섬나라는 인도네시아에 속한 서티모르와 동티모르로 나뉜다. 동티모르는 치열한 투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한 민주공화국이다. 필자는 이 중 동티모르에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활동했다.

주민 자원봉사로 식수사업 공사

더프라미스 활동가와 아수마노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용천수 수원지를 파이프로 연결하는 중력식 급수 시스템을 설치하고 있다.

티모르는 400년 전부터 유럽 열강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1524년부터 포르투갈이 지배를 하다가 네덜란드가 뛰어들며 19세기에는 동티모르는 포르투갈, 서티모르는 네덜란드로 분할, 지배됐다. 1975년이 되어서야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하는데, 이후에도 인도네시아에 점령당해야 했다. 1999년에 비로소 동티모르만 어렵게 독립을 한다.

완전 독립국가는 유엔 등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2002년 경 세워진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동티모르에는 식민지 당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길거리 가게 간판에도, 대화할 때 사용하는 말에도 현지어 떼툼어와 포르투갈어, 인도네시아어가 무질서하게 섞여있다. 포르투갈 식민지 때 교육을 받은 할아버지는 포르투갈어, 인도네시아 식민지 때 학교를 다닌 아버지는 인도네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그리고 지금의 10대는 떼툼어만 구사하는데,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한다. 현재 동티모르의 공용어는 포르투갈어다.

가톨릭 인구가 91%를 차지하는 나라지만, 무속 등 민간신앙이 견고하게 존재한다. 예를 들어 중요한 이벤트, 식수사업 착수나 완공식 때 먼저 염소나 돼지의 내장을 빼 길흉을 점치고 나서 가톨릭식의 예배를 드린다. 무속에 대한 믿음이 대단하지만 성당도 열심히 다닌다.

더프라미스(이사장 웅산 스님)는 2010년 현지조사를 시작해 2012년 리끼사주 산악지대 시골 아수마노 마을에서 주민과 함께 식수사업의 첫 삽을 떴다. 또 2012년부터 2년 간 마을 공동수도시설과 산 속 깊은 골짜기 용천수 수원지를 파이프로 연결하는 중력식 급수 시스템을 설치했다.

급수시설 공사 중인 주민들 모습.

당시 더프라미스는 동티모르에 한국 매니저를 파견했다. 현지 식수위생 기술자와 위생교육 활동가들을 고용해 마을에 직접 들어가 함께 거주하면서 주민들과 사업을 해나갔다. 더프라미스가 자재를 제공하고, 모든 공사는 기술자들의 지원 아래 주민들의 자원봉사로 진행했다. 물론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식수를 공급받기 위한 사업이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노동에 참여했지만, 프로젝트 성격상 정해진 일정과 예산에 맞추려다 보니 자발적 참여라기보다 주민들이 공사에 동원되는 경우도 잦았다.

시작 3~4개월은 남녀노소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해내며 고무적으로 참여했지만, 이런 참여도 1년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지원하는 입장에서는 식수사업 현장이 주된 업무여서 집중할 수 있었지만,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 주민들의 입장을 감안할 때 자원봉사를 독촉하기는 어려웠다. 마을은 겉으로는 바쁜 일이 없어 보이지만 5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커피농사를 비롯해 3개월마다 옥수수 · 카사바 · 콩 등의 작물을 심고 거두는 일은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다. 특히 커피 수확량은 한 가정의 일 년 수입을 결정짓기에 정말 중요하다. 여기에다 아픈 아이를 업고 마을 보건소를 한 번 다녀오려면 하루 반나절 이상 산길을 걸어야 하고, 잦은 집 보수와 집안 행사 등 그들의 일상은 상당히 분주한 편이다.

현지 적십자사와의 협력

식수를 받고 있는 동티모르 어린이.

사실 식수 개발사업은 예산과 참여인원이 많은 대규모 사업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직접 현장을 관리하고 조율하는 건, 어찌 생각하면 무모해서 용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상생활을 할 때 집 가까운 곳에서 물을 길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하루에 2~3번 산을 타고 온 가족이 물을 기르지 않아도 된다는 건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이들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물이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나서 마을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부지런한 주민들이 집 근처에서 채소 재배를 시작한 것이다. 함께 쓰는 공용수도 근처에 사는 여덟 가구가 모여서, 아주머니 네 명이 모여서, 식수공사를 하다가 알게 된 아저씨들이 모여서 공동 텃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들의 텃밭 재배에 도움을 주고자 유기농 농사 경험이 있는 직원을 새로 뽑아 좋은 경작지 선택부터 땅 일구기, 비옥한 토양 마련하기, 친환경 비료 만들기, 천연살충제 만들기, 생태적 울타리치기 등 농사 관련 교육을 제공했다. 한 그룹에서는 공동 재배한 수확물을 이웃 마을에 팔기도 해서 작지만 소득도 올렸다. 마을 학교도 이런 변화에 동참해 교내 빈터에 학생들이 직접 텃밭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함께 모여 더 나은 변화의 결과를 보기도 전에 예전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주민들은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가계소득이 늘어나길 원한다. 현금이 필요해서다. 이곳에서 커피는 황금작물인데, 커피나무가 많은 땅을 소유한 자와 그렇지 않아서 소작해야 하는 자의 소득격차는 상당하다. 또한 개인이 마을로 찾아오는 커피 중간 수매상인에게 커피 생두를 팔 때는 상인이 낮은 가격을 부르더라도 흥정이 어렵다. 커피 이외의 작물도 개인이 수확한 양은 외부로 팔기에 너무 소량이다. 그래서 개인이나 한 가구가 현금을 모으기는 쉽지 않다.

동티모르적십자와 파트너십으로 완공한 급수시설 센터.

그래서 어떤 주민이 자신의 삶과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의 변화를 원한다면, 가능한 많은 사람의 힘을 모아야 한다. 혼자 시작할 수는 있어도 앞서와 같은 이유로 변화를 혼자 만들어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식수사업에서는 주민급수관리위원회, 채소재배에서는 소규모 그룹과 같은 주민조직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변화를 위한 첫 단추를 꿰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필자는 2015년쯤 동티모르에서 그동안의 활동을 돌아봤다. 그러면서 문득 ‘지속가능한 변화, 과연 가능할까?’란 의문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무엇이 빠졌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물 사정이 어렵다고 찾아오는 주민들은 있었다. 적극 나설 자신이 없었다. 급수시설을 주민과 함께 짓는 과정이 힘들기도 했고, 급수시설을 지은 후 주민들의 사후관리를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주민을 돌려보냈지만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이런 문제의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 동티모르 청년들과 동티모르 적십자회원들이다. 전국 모든 주에 13개의 지부를 두고 있는 이곳 적십자는 동티모르인들이 사업수행과 관리를 모두 책임지고 있다. 이들은 식수위생 · 재난경감 · 보건위생팀을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부러우면서도 현지 지부 운영과 사업 수행에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아수마노 마을에 식수시설을 호소하던 주민이 있었는데, ‘동티모르 적십자와 함께 한다면 다시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과감히 파트너십 제의를 했다. 다행히 주민중심의 자발적 참여를 원칙으로 하는 적십자와 우리의 비전이 맞아떨어졌다. 그 덕분에 2016년부터 현재까지 3년째 적십자와 함께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마을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에게 멋진 현지 친구가 직원으로 와주었는데, 그 친구를 따르던 수도 딜리의 청년들이 마을로 오면서 새로운 해법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현지 직원들과 청년들은 주민들과의 소통이 훨씬 원활했다. 그때부터 마을 활동은 현지 직원과 청년들에게 맡겼다. 직원은 자신이 가진 경험과 기술로 주민과 함께 친환경 유기농 텃밭을 가꾸었고, 도시에서 온 청년들은 주민들의 농사를 도우며 자신들도 농업과 친해지는 기회를 가졌다.

수도에 청년마을지원센터 개소

커피 수확시기에는 온 가족이 모두 동원된다.

결과적으로 더프라미스는 도시 청년과 농촌마을을 잇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동티모르 인구의 83%가 농업에 기반을 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만큼 농업은 중요한 사회 기반이지만 청년들은 실업자가 될 각오를 한 채 수도 딜리에 모여든다. 실제 도시는 이들의 자립적인 삶을 더욱 힘들게 한다. 임금노동을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청년들과 농촌마을을 잇는 구심점이 될 센터를 수도 딜리에 지었다. 이름하여 ‘청년마을지원센터’. 청년들이 직접 위치를 선정하고, 자재를 사러 다니면서 근 1년 간 센터를 지었다. 학교를 마치고 와서 시멘트 · 벽돌을 나르는 걸 돕는 고등학생들, 학교 오후반에 가기 전 고생하는 오빠를 위해 커피를 만드는 여학생들, 놀이 삼아 형들을 돕는 동네 꼬마들. 이들의 정성과 땀이 고스란히 쌓인 센터는 그렇게 탄생했다.

청년들은 이곳에 책을 읽고 커피를 함께 마실 수 있는 야외카페, 간단한 공연을 할 수 있는 작은 무대, 스스로 가꾸어보는 실험 텃밭 등을 만들고 싶어 했다. 우리는 그렇게 해보라고 했다. 현재 완성돼 운영 중인 이 센터는 청년 개개인과 지역이 더불어 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공간이 되었다.

더프라미스의 현지 활동가들은 이 청년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3개 마을(예전 더프라미스의 활동 지역인 아수마노 마을 포함)을 찾아다니며 함께 농사를 짓고, 주민회의에 참가하고, 어울리기도 한다. 센터로 돌아와서는 영문과를 졸업한 마을의 청년의 영어수업도 기획한다. 영어 실력 편차가 커서 반을 나누자는 의견도 나오고, 조금씩 수업비를 걷어 선생님께 드리자는 얘기도 나온다. 이들은 이렇게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스스로 배우는 중이다.

시골 마을의 현안인 식수 문제 해결도 동티모르 적십자사와 협력하고 있다. 현지 기술팀이 마을에 거주하면서 함께 노동하고 있고, 교육팀은 지속적으로 마을을 방문해 주민을 만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커지면서 더프라미스는 동티모르에서 제 역할을 찾게 됐고,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가고 있다. 이방인이 현지 주민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기엔 장벽도 높고, 장애도 많았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오해도 생기기 마련이다. 결국 주민들은 이방인들이 가져온 자원에만 의지하게 됐다. 이런 문제를 현지 적십자사와 젊은이들과의 협력으로 풀어낸 셈이다.

어떠한 문제를 풀어낼 대 가장 중요한 건 소통이다.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 간에 오가는 대화여야 한다. 이를 통해 주민 스스로가 문제를 풀어내야 지속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더프라미스 활동가들이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것에는 이렇게 동티모르 적십자사 여러분과 현지 청년들의 역할이 컸다. 우리가 하는 일에 정답은 없지만, 우리와 현지인들이 바람은 다르지 않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동티모르 더프라미스는 지금도 한걸음씩 걸음을 내딛고 있다.

영어수업 중인 청년들.
달리 청년조직 'BUFO' 소속 청년들과 로에스마을 주민들이 '루뚜모리스 캠페인'을 홍보하고 있다. '루뚜모리스'란 살아있는 나무를 이용해 울타리를 만들자는 캠페인이다.
마을 주민들에게 전통 수공예를 배우는 도시 청년들.
완공된 급수탱크에 그림으로 메시지를 담는 동티모르 예술가들.
핑자와 아수마노 마을 급수관리위원회 분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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