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산, 그 옛 이야기(273호)

소백산(小白山)은 죽령 남쪽의 도솔봉을 시작으로 제1연화봉·제2연화봉·국망봉 등이 연봉을 이루고 있다. 소백산은 한반도의 등뼈와도 같은 태백산맥이 서남쪽으로 뻗어 내린 줄기로 우리나라 중부지역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소백’이라는 이름 때문에 작은 산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소백산은 큰 산(1439m)이다.

그 단양의 영춘면 백자리 소백산록에 구인사가 있다. 구인사는 소백산 구봉팔문 중 제4봉인 수리봉 밑 해발 600여 m의 고지에 위치해 있는데, 천태종의 중창조인 상월대조사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45년이다. 대조사가 초암을 짓고 수도하던 자리에 국내 최대 규모의 웅장한 사찰을 축조한 것이다.

소백산의 큰 고개

언제나 이곳은 산 도적이 들끓었다. 이곳을 지나가는 길손은 물건을 털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목숨마저 빼앗기고는 하였다. 그래서 큰 고개를 넘으려면 죽을 각오를 하거나 아니면 열 명 스무 명 씩 떼를 지어 넘어야만 했다.

깊은 산골이라 관가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고, 또 관가에서 온다고 하여도 몇 십 년씩이나 산에서 훈련된 산적들을 잡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큰 고개의 산적들 때문에 소백산 기슭 단양의 사또는 하루도 편한 날을 보낼 수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백성들은 사또를 찾아와 하소연을 하였다.

“사또,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소인은 안동 고을에 사는 장사치이온데 큰 고개를 넘어오다가 비단 백 필을 모두 산적에게 빼앗겼습니다.”

“사또, 저는 한양 사는 선비이온데 경상도에 볼 일이 있어 아내와 함께 가던 중 큰 고개를 넘다가 그만 아내가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큰 고개에서 재물을 빼앗긴 사람, 생명을 잃은 가족, 저마다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면서 사또를 찾아오는 사람은 너무도 많았다.

백성의 원성에 나선 산신령 할멈

사또가 온종일 이들의 말만 들어도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큰 고개 산적들의 행패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다. 그렇다고 사방으로 통하는 길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길손들은 한양 쪽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은 고개 남쪽에서, 경상도로 내려가는 사람은 고개 북쪽에서 주막을 정하고 며칠 씩 묵으면서 사람들이 모이기를 기다리는 도리 밖에 없었다. 길손이 적을 때는 사흘이고 열흘이고 통행인의 수가 불어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산적의 수가 워낙 많은 지라 웬만한 수의 동행끼리는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 관가에서는 큰 고개의 도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나졸들을 풀어보았으나 오히려 당하는 것은 나졸들이었다. 귀신같이 숨었다가 바람같이 나타나는 산적들을 관군들은 감당할 수 없었다.

이렇게 산적들이 밤낮으로 날뛰는 통에 소백산 산신령은 귀가 소란해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여간해서는 인간들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산신령은 소백산의 평화를 위해 산적들을 물리치기로 하였다.

산신령은 허름한 할멈으로 변장하여 천천히 소백산을 내려와 고을의 사또를 찾아갔다. 고을의 사또도 산적들 때문에 여러 가지 궁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산신령이 동헌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사또가 묵고 있는 곳으로 찾아가자 사또는 또 무슨 호소를 하러 왔는가 싶어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나 이상했다. 이 할멈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한 마디의 호소도 하지 않고, 사또의 귀를 잡아 자기 입에 갖다 댔다. 사또는 기분이 나빴지만 할멈의 나이가 워낙 많이 들어 보여 꾹 참았다. 할멈은 사또에게 한참을 속삭이더니 바람처럼 훌훌 떠나버리고 말았다.

사또와 헤어진 할멈은 그로부터 얼마 안 가 큰 고개에 나타났다. 그리고 울창하게 우거진 사방의 숲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다자구야! 들자구야!”

“다자구야! 들자구야!”

이렇게 외치는 할멈의 이상한 소리는 깊은 산 골골이 깊게 메아리쳐 갔다. 산속 깊은 산적들의 산채에도 이 소리는 울려 퍼졌다. 때 아닌 이상한 소리에 놀란 산적들은 우악스럽게 몰려가 할멈을 단숨에 붙잡았다.

할멈은 산적들에게 끌려가 그들의 두목 앞에 꿇어 앉혀졌다.

“이 요망한 할멈아,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우리 산을 시끄럽게 하느냐? 도대체 다자구는 뭐고 들자구는 뭐냔 말이냐?”

할멈은 산적 두목이 자신의 영토인 소백산을 우리 산이라고 한 것이 우스웠다. 그러나 일단은 공손해지기로 하였다.

“네. 다자구는 제 큰 아들의 이름이고, 들자구는 제 작은 아들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산속에 와서 아들들의 이름을 부르느냐?”

“한 오년 전에 집을 나간 두 아들이 이곳에 있다고 해서 나도 그 아들과 함께 이 산중에서 살까하고 찾는 중이올시다.”

할멈의 이 말을 들은 두목은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내 부하들 중에는 다자구나 들자구란 놈은 없다. 아마 두 아들은 이미 죽은 모양이니 더 찾을 필요가 없다. 할멈은 늙어서 다른 일은 할 수 없으니 여기서 우리들 밥이나 짓고 빨래나 하면서 살도록 해라. 나는 아주 마음씨가 좋으니까 특별히 배려를 하는 게야.”

산적 두목은 아주 거드름을 피웠다.

산적들은 할멈의 정체도 모르면서 그렇게 잡아두었다. 할멈은 매일 사나운 도적들의 밥을 지어 주고 빨래를 해주었다.

한편 할멈이 떠난 며칠 뒤 고을 사또는 날랜 군졸들을 모두 풀어 큰 고개 위에 있는 바위 뒤에 숨게 하였다. 그렇게 바위 뒤에 숨어서 기회만 보고 있던 어느 날.

산적 두목의 생일이 다가왔다. 도적 두목과 졸개들은 오랜만에 경사나 맞이한 듯 제법 잔치를 벌이고 놀 준비를 하였다.

사람들에게 강탈한 수백 필의 비단을 끊어 제멋대로 옷을 해 입고, 이 마을 저 마을에서 끌어온 황소 수십 마리를 잡았다. 물론 술도 푸짐하게 담갔다. 산적들의 대부분은 일은 하지 않고 먹고 마시는 것을 일상으로 하던 사람들이라 모두들 들떠 있었다.

드디어 산적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두목의 생일이 돌아왔다. 산적들은 저마다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불렀다. 소백의 온 산이 떠들썩하도록 소란을 피웠다.

‘다자구야! 들자구야!’ 민요로 전해져

이 때 할멈은 산적들이 원하는 대로 술을 퍼서 안겼다. 그리고 산적들이 술에 취해 흥얼거리는 틈을 타서 슬며시 소굴 옆에 있는 소나무 위에 올라가서 큰 고개를 향해 소리를 쳤다.

“들자구야!”

“들자구야!”

할멈은 다자구야는 외치지 않고 들자구만 외쳤다. 도적들은 아직은 정신이 있는지라 할멈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할멈, 술이나 퍼. 이미 죽은 아들 이름 부르면 뭣 해!”

“맛난 음식, 좋은 술을 보니 죽은 아들들이 생각나서 그래요.”

할멈이 아주 슬픈 듯이 그렇게 말하자 두목이 두 눈을 부라리며 나섰다.

“이 할망구야, 그럼 왜 작은 아들 들자구만 부르고, 큰 아들 다자구는 안 부르느냐?”

“큰 아들 다자구는 좀 있다가 부르려구요.”

워낙 의심 많은 두목은 할멈의 아래 위를 훑어보며 지껄였다.

“좀 있다가 다자구를 부른다구? 아무래도 이 할멈이 수상해. 이 술잔치가 끝나면 저 할멈을 아주 죽여 버릴까한다.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 있나?”

두목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졸개들이 두 손을 하늘로 추켜올리며 만세를 불렀다.

“두목님 오늘 아주 좋은 구경하겠습니다.”

“저희도 어쩐지 저 할멈이 수상쩍었습니다. 오늘 아예 후환을 없애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러나 산적들은 워낙 술을 많이 마신 탓으로 누구도 할멈을 묶지는 않았다. 드디어 제멋대로 지화자를 부르며 엉덩방아를 찧던 산적들은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술잔을 든 채 조는 놈, 술잔 위에 그대로 엎어진 놈, 노랫가락을 부르다가 남의 허리를 벤 채 코를 고는 놈까지 있었다. 그야말로 산적들의 산채는 엉망이었다. 잔치가 끝나면 그 기념으로 할멈의 목을 베겠다던 두목도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뜬 채 졸기 시작했다.

할멈은 이 때를 놓칠세라 얼른 밖으로 나가, 역시 아까 그 소나무 위에 올라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번에는 ‘들자구야’가 아니라 ‘다자구야’였다.

“다자구야!”

“다자구야!”

할멈의 음성은 산속으로도 울려 퍼졌다.

큰 고개에서 때를 기다리던 군졸들이 산채에 일제히 들이닥쳤다.

술에 취해서 곤드레만드레가 된 도적들은 저항할 틈도 없이 몽땅 군졸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로인해 큰 고개의 도적들은 모두 일망타진 되었고, 그 후부터 다시는 도적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산신령 할멈은 다시 조용해진 소백산을 베개 삼아 옛날과 같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 뒤로 사또와 고을 사람들은 산신령 할멈에게 해마다 제사를 올렸다. 그리고 할멈이 사또에게 귀엣말을 하고 부르던 ‘다자구야, 들자구야’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늘날 단양 땅 민요로 전해져 오고 있다. ‘들자구야’는 산적들이 아직 잠을 자지 않는다는 뜻이고, ‘다자구야’는 산적들이 모두 잠을 잔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산의 전설 중에 이렇게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가 또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소백산이 가지고 있는 중간쯤의 잔잔함 때문이 아닐까? 높으되 높지 않고, 깊으되 깊지 않은 소백산은 오늘도 ‘다자구야, 들자구야!’를 외치며 할멈이 산적을 쫓고 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아들의 이름으로!

우봉규

작가. 〈황금사과〉로 동양문학상을 받은 뒤 〈객사〉로 월간문학상을, 〈남태강곡〉으로 삼성문학상을, 〈갈매기야 훨훨 날아라〉로 계몽사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희곡 〈눈꽃〉이 한국일보사 공모 광복 50주년 기념작에 당선됐다. 2001년과 2002년 서울국제공연제 공식 초청작 〈바리공주〉, 〈행복한 집〉 발표 이후, 우리나라 희곡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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