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도란도란(2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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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상념

김점례 / 전북 부안군 보안면

현대엔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가 산다. 높고 빽빽한 빌딩숲에서 도시인들은 벌떼처럼 몰려다니고 있다. 그들은 산이 그립지 않을까?

내가 사는 곳은 농촌의 산골마을이다. 그래서 숲 속에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러 찾아 나서지 않아도 산책을 할 때면 숲길을 거닐게 된다. 오늘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운동 삼아 숲길을 걷는다.

가시덤불 속에서도 구김 없이 맑게 피어난 나뭇잎, 풀잎에게 눈인사를 하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꺼억, 꺼억’ 소리를 내며 푸드득 날아오르는 장끼와 까투리 때문에 깜짝 놀랐다. 이 숲 속의 본디 주인공은 저 꿩들일 테니, 제 집을 쳐들어온 인기척에 기겁을 했나 보다.

“너희들 신방을 들여다본 것도 아닌데 웬 호들갑이야! 내가 더 놀랐잖아!”

한 소리 해놓고 생각해보니, 그저 자연의 움직임이고 소리일 뿐인데 나는 왜 그리 놀랐을까? 사랑놀이를 침해 받고도 원망 없이 날아가는 꿩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빙긋이 웃음을 짓는다.

숲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형태만큼이나 다양한 삶이 있다. 무엇보다 숲은 ‘식물들의 도시’라고 할 만하다. 갖가지 식물들이 촘촘히 모여 살고 있다.

누가 심었을까? 두충나무 몇 그루가 정답게 서 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뭇가지에서 스무 살 청년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 중 하나를 넝쿨이 감고 올라가면서 두충나무의 살갗에 홈이 파였다. 넝쿨이 나무의 살을 파고 들어앉아 기생하는 듯 보였다. 나무가 얼마나 괴로울까 싶어 넝쿨의 뿌리를 잘라버리고 싶어진다. 그러나 순간 ‘아니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저 두충나무와 넝쿨은 아름다운 동거 중일지도 모른다. 의지할 기둥이 없는 넝쿨나무의 삶을 위해 기꺼이 몸을 내어준, 두충나무의 배려일지도.

부모와 자식 간에도 한 공간에서 살면 불편해 분가를 하는 게 인간사. 아파트 윗집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에 아랫집 사람은 짜증을 내는 일도 다반사. 이렇게 자기중심의 이기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대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가는 나무의 깊은 뜻을 알 수 있겠는가?

천천히 생각에 젖어 걸었다. 비탈길에 뽕나무가 서 있다. 지난겨울 설한풍(雪寒風)에 된통 시달렸는지 찢겨 늘어진 가지에 연초록 잎을 가득 피우고 있다. 칡넝쿨이 그 찢긴 가지를 타고 올랐고, 나무꼭대기엔 새들이 조잘대며 놀고 있었다. 비탈길에 서서 상처를 보듬고 자기 삶을 지탱하기도 힘겨울 텐데. 사람이라면 제 머리 꼭대기에서 제멋대로 노래를 불러대고 제 몸을 덮어 타고 오르는 것들을 묵묵히 수용할 수 있을까?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나무는 말한다. ‘내가 살 때 네가 살고, 네가 살 때 내가 살 수 있다고. 함께 사는 세상은 이런 거라고.’

숲은 열변 없는 스승이다. 들을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 좋은 것, 의미 있는 것, 어진 것을 가르쳐 준다. 그래서 숲에 가면 귀를 열어두어야 한다. 숲은 잘났건 못났건 구별은 있으나 차별은 없다. 네 터 내 터가 없이 어울려서 능력만큼만 누리며 산다.

맹감나무와 며느리밑씻개 넝쿨이 아카시나무를 타고 올라가 엉켜 있다. 그래도 어느 것 하나 불평이 없다. 어우러져야 숲이 된다며 서로 손잡고 붙잡아주며 초록세상을 만들고 있다. 모두가 하나같이 멈춘 듯 부지런히 움직이며 살고 있다. 한쪽에는 생을 마친 삭정이가 널브러져 있다. 이 삭정이도 한 때는 푸른 꿈을 키우며 아름다운 세상을 가꾸는데 동참했으리라.

상념(想念) 속에 아궁이에 땔감으로 쓸 요량으로 삭정이들을 모아서 끌고 오려는데 주위의 넝쿨들이 쉽게 놓아주질 않는다. 어디 가냐고 이쪽저쪽에서 알은 체를 한다. 함께 살 부비고 살던 정을 떼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조금 더 힘을 주니 저만치 숲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 갈 때 되면 가고 올 때 되면 오는 것이 대자연의 법칙이니 아쉬워하지 말고 잘 가란다. 오늘도 숲 속에서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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