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실과 비합리증 심각
대립 아닌 중도적 시각으로
조화와 원융의 길 모색해야

요즘 우리 사회는 정체성의 혼란기에 빠진 것 같다. 진실이 외면당하는 ‘탈(脫) 진실(post-truth) 현상’이 팽배해지고 있다. 탈진실은 2016년 옥스퍼스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로 ‘객관적 사실보다 강한 주장들이 여론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뜻한다. 우리는 실제 무엇이 진실인지 뻔히 알면서도 그 진실을 왜곡하면서 또 다른 진실을 만들어내려는 모습을 목도하곤 한다.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들이 소셜네트워크와 댓글을 통해 자기 뜻을 표출하고, 조금 소극적인 사람들은 ‘좋아요’를 눌러서 여론을 형성하는 건 한 가지 예다. 객관적 근거 없이 일단 터트려서 사람들의 반응을 보자는 방식은 우리 사회를 더욱 심한 분열로 몰아갈 수 있다.

또 한가지 현상은 ‘비합리증’이다. 충분한 지식이 있지만 특정 상황에서 비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증상이다. 매우 합리적인 사람이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합리적이지 않은 판단을 해서 사회적인 지탄을 받는 사건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판단의 잣대가 타인에게는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너그럽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합리성을 잃어버리는 비합리증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탈진실과 비합리증이 아닐까 한다.이런 사회 현상은 인간성 해체라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사회학자들은 분석한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았다면 그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필자는 그 해답이 불교에 있다고 본다.

바로 ‘불이(不二)사상’이다. 화엄사상을 비롯해 대승불교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사상의 하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둘이 아니라는 불이사상이다. 불이사상은 유와 무, 너와 나, 선과 악, 생과 사, 마음과 몸 등 세상 모든 대립을 넘어서는 중도적 관점을 제시한다. 이러한 불이적 관점을 통해 도달한 만물의 조화와 원융의 세계야말로 가장 살기 좋은 사회를 이루는 바탕이다.

그런데 불이사상은 두 개가 하나라는 것이 아니라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로 관계를 맺으려면 서로 통하는 공통점을 찾게 되니 서로 전혀 다른 둘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불이(不二) 관계에 있는 세상 만물은 그 각각이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존재이면서 서로 영향을 주며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장엄한 화엄세계를 이룬다. 요즘 단어로 협업을 통한 상생이고, 융합을 통합 재창조이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로 젠더 문제를 들면 남자와 여자는 서로 적이 아니라는 것이 합리적 판단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여성 차별이 존재하는 것은 탈진실이다.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지배 세력에 의해 형성된 사회적 통념으로 여성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다. 불이사상에 의해 남성과 여성이 아닌 양성으로 뜻을 모은다면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가 열리면서 인간이 기계인간과 대치되는 상황을 상상하곤 한다. 이럴 때 일수록 인간은 더욱 인간다워져야 한다. 탈진실이나 비합리증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트릴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받도록 해야 한다. 인간은 이 우주에서 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는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사회와 맞설 것이 아니라 사회를 포용하며 갈등을 풀어간다면 무한한 가능성의 화엄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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