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아무런 원인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우연을 강조하는 주장들이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어 당혹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개인의 사회적 성공에는 개인적 노력도 작용하지만 실제론 훨씬 더 많은 우연적 요소가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이를 간과한 채 온전한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로 믿고 싶어 한다고 말합니다. 또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은 정말 우연히 발생하는 일조차 특별한 인과관계로 파악하려는 성향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자기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조차 자신의 행동과 직접 연결 지으려는 욕구가 강하다면서 조상들이 가뭄 뒤에 비가 온 것이 기우제 때문이라고 믿는 등의 일을 그 예로 내세웁니다.

과연 원인이 동반되지 않는 우연이 가능한 것일까요? ‘머피의 법칙(Murphy’s law)’이 있습니다. 일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꼬이기만 할 때 쓰는 용어입니다. 이 말의 유래는 미국 에드워드 공군기지에 근무하던 머피(Edward A. Murphy) 대위에서 비롯됩니다. 머피 대위는 1949년 조종사들에게 전극봉을 이용해 가속된 신체가 갑자기 정지될 때 신체 상태를 측정하는 급감속 실험을 했는데 모두 실패하게 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조종사들에게 쓰인 전극봉의 한 쪽 끝이 모두 잘못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한 기술자가 배선을 제대로 연결하지 않아 생긴 사소한 실수 때문이었습니다. 전극봉을 설계한 머피는 이를 보고 “어떤 일을 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그 가운데 한 가지 방법이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면 누군가가 꼭 그 방법을 쓴다.”고 말했습니다. 머피의 법칙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입니다. 즉 머피의 법칙은 자신이 바라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고, 우연히도 나쁜 방향으로만 일이 전개될 때 쓰는 말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머피의 법칙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연의 소재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기술자가 배선을 올바르게 하지 않아 빚어진 실험의 실패였습니다.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이와 같은 예들은 부지기수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객관적이지 못한 경험을 토대로 일반화하는 경향이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말입니다.

인과(因果)는 원인(原因)과 결과(結果)의 준말입니다. 사람들은 일상의 생활 속에서 ‘… 때문에’ 또는 ‘…로 인하여’라는 말을 씁니다. 모두 인과관계를 밝혀 설득과 공감을 넓히기 위한 목적으로 쓰는 표현법입니다. 불교는 세상의 모든 법칙이 이같은 인과, 다시 말해 연기법(緣起法)으로 이뤄진다고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따라서 연기법을 부정하면 불자가 아닙니다. 인과를 믿지 않고선 불교를 말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 재세 당시에도 무인론(無因論)을 주장하는 외도(外道)들이 있었습니다. 세상은 어떤 숙명이나 우연으로 이루어진다는 외도들에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어 사람의 하는 바는 일체가 다 인도 없고 연도 없다고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곧 그에게 묻겠다. ‘여러분은 진실로 사람의 하는 바는 일체가 다 인도 없고 연도 없다고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하는가?’ 그가 그렇다고 답한다면 나는 다시 그에게 말하겠다.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다 산 목숨을 죽이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일체는 다 인도 없고 연도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여러분은 주지 않은 것을 가지며 사음하고 거짓말하고 내지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다. 왜냐하면 일체는 다 인도 없고 연도 없다고 진실로 본다면 자기 생활 가운데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서 도무지 적극적인 의지도 없고 방편도 없을 것이다. 여러분이 만일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서 진실 그대로 알지 못하면 곧 바른 생각을 잃을 것이요, 바른 지혜가 없으면 가르칠 수 없을 것이다.’”

인과를 부정하는 사람은 살상 등 중대범죄의 신분이 된다는 게 부처님 말씀입니다. 실제로 인과를 믿지 않으므로 사회의 공적이 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인과를 진실로 믿는다면 범죄가 현격히 줄어들고 밝은 사회가 될 것이 당연합니다. 우연을 강조하는 행태는 미신을 조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소소한 일상생활에서 미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정서적 요인도 있겠지만 인과관계에 대해 논리적인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 더욱 클 것입니다. 우리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방책은 자연과 나, 사회와 자연, 나와 사회 등이 서로 유기적인 인과관계에 놓여있다는 점을 누구나 인식하는 순간에 있습니다.

“사랑으로 씨를 뿌리니/사랑을 받을 땅이 있어 과실이 난다.(有性來下種 因地果還生) 사랑이 없으면 씨 또한 없어/불성도 태어남도 없으리라.(無情亦無種 無性也無生)”

중국 선종 5조 홍인대사의 전법게(傳法偈)로서 인과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 넓게 울려야 할 메시지는 홍인대사의 전법게처럼 인과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서로를 맑게 하는 힘, 인과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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