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단상(272호)

“구인사 가려면 여기서 내려야 하나요?”

연거푸 묻지만 버스 운전기사는 대답하지 않는다. 난감한 표정의 이방인(異邦人)을 안심시키고자 대신 대답했다.

“구인사는 종점이에요. 저도 구인사에 가니까 같이 갈래요?”

“아! 감사합니다. 제가 한국에 온 지 삼일 되었는데, 당신이 저와 이야기를 나눈 첫 번째 사람이에요.”

그 말에 묘한 안도감과 외로움이 묻어났다. 단양터미널에서 사람들이 다 내리고 난 직후라 버스를 타고 있는 사람은 둘뿐. 시끄러워도 방해받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아담(Adam), 미국 하와이에서 왔다고 했다. 하와이에 살고 있는 사람이 이곳 단양 구인사를 알고 찾아오다니 신기했다. 한국에 유명한 관광지가 어디 한두 군데인가? 구인사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더니 한국에서 가장 큰 사찰이라고 여행책자에 소개되어 있어 꼭 와보고 싶었다고 했다.

아담은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게 취미라고 했다. 한국에 오기 전 무려 116개 국가를 돌아본 여행 베테랑이었다. 공통된 관심사인 여행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구인사에 도착! 각자 할 일을 마친 뒤 대조사전에서 다시 만나 구인사에 있는 전각을 차례로 돌아봤다.

한국 절에 처음 온 아담에게 법당에서 절하는 법을 알려주고, 한국불교의 역사와 천태종, 불교와 관련된 여러 질문에 대답해 주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담은 기독교인이지만 진지한 태도로 불상에 절을 했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 어쩌면 이해하기 어려웠을 ‐ 내 말을 주의 깊게 경청했다. 우리는 열심히 설명해주고, 귀 기울여 들어주는 서로에게 감동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가 되었다.

온라인으로 연락하는 게 전부이지만, 19시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생일에는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고, 새해가 시작되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해준다. 말레이시아, 쿠바, 인도, 몽골…… 때로는 다음번에 여행하고 싶은 나라와 가고 싶은 이유를 두서없이 얘기하기도 한다. 언젠가 하와이에 간다면 일찌감치 아담에게 시간을 비워두라고 얘기할 것이다. 내가 하와이에 가는 그 새를 못 참고 또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릴 지도 모르니까.

아담을 만난 뒤부터는 당장 가야 할 취재 일정이 잡혀있지 않은 한, 외국인이 보이면 주저 없이 먼저 말을 건넨다. “어디서 왔어요? 시간이 괜찮으면 같이 돌아볼래요?”하고.

지금도 구인사를 가면 가끔 1년 전 그날, 아담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불교를 처음 만난 아담의 크고 작은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을 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때 아담은 깊이 고마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I will always remember Guinsa(항상 구인사를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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