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산, 그 옛 이야기(272호)

법기보살(法起菩薩)의 상주처

높이 1,638m. 금강산은 동해에 임박한 태백산맥 북부의 아름다운 명승지로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 이름이 알려져 있다. 최고봉인 비로봉(1,638m)을 중심으로 주위가 약 80㎞에 이르는데, 강원도의 회양(淮陽) · 통천(通川) · 고성(高城)의 3개 군에 걸쳐 있으며, 면적이 약 160㎢에 이른다.

금강산의 ‘금강(金剛)’이라는 말은 불교 경전인 〈화엄경〉에 “해동에 법기보살(法起菩薩)이 상주하는 금강산이 있다.”고 적힌 데서 연유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산의 이름을 금강산 외에 개골(皆骨) · 열반(涅槃) · 풍악(楓嶽) · 기달(怾怛)의 네 가지를 들고 있다. 이 가운데 ‘금강’과 ‘열반’은 불교의 용어이고, 그 밖의 이름은 금강산이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 경색이 달라져 판이한 정취를 주기 때문에 계절에 따른 명칭이다. 봄에는 온 산이 새싹과 꽃에 뒤덮이므로 금강이라 하고, 여름에는 봉우리와 계곡에 녹음이 깔리므로 봉래(蓬萊)라 하고, 가을에는 일만이천봉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므로 풍악이라 하고, 겨울이 되어 나뭇잎이 지고 나면 암석만이 앙상한 뼈처럼 드러나므로 개골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의 호칭이 있으면서도 일반적으로 ‘금강산’으로 통칭된 것은 이 산이 불교의 영지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비로봉을 경계로 서쪽을 내금강, 동쪽을 외금강이라 하며, 동쪽 끝의 해안을 해금강이라 부른다. 내금강의 경치는 대체로 숲 · 계곡 · 사찰 등이 어울려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며, 외금강은 암반과 절벽, 그리고 폭포 따위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어 남성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해금강은 고성군에서 동쪽으로 4km 떨어진 해안에 바위와 절벽과 암초가 거친 파도와 어울려 멋진 경치를 이룬다. 또 금강산에는 유점사를 비롯하여 표훈사, 장안사 등의 오래된 사찰이 많다.

〈태종실록〉 태종 4년 9월 ‘기미’조를 보면 왕이 재상 하륜(河崙)과 정사를 의논하다가 “중국 사신들이 조선에 오기만 하면 꼭 금강산을 보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묻자 재상 하륜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일찍이 송나라 시인이 노래하기를 ‘원컨대 고려국에 태어나 한 번만이라도 금강산을 보았으면~~ (願生高麗國 親見金剛山)’이라고 했답니다.”라는 기록이 전할 정도로 일찍부터 천하의 명산으로 불려왔다.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가게 되는 염라국

염라대왕은 항상 죽은 사람을 불러들여서 그들이 살면서 지은 죄를 낱낱이 따졌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지옥으로 보내고,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은 극락으로 보냈다. 그런데 염라대왕 앞에 불려온 사람들은 저마다 살면서 좋은 일만 하였다고 자랑하였다. 그래서 염라대왕은 여러 가지 궁리 끝에 사람의 한평생이 그대로 환히 들여다보이는 거울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명경대(明鏡臺).

누구든 그 거울 앞에 서기만 하면 한평생이 그대로 비쳐져, 죄를 많이 지었는지 좋은 일을 많이 했는지 환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염라대왕 앞에는 한 비구니 스님이 들어왔다. 그런데 비구니 스님은 이상하게도 승복을 입지 않은 속옷 차림이었다.

염라대왕은 눈살을 찌푸리며 엄하게 비구니 스님을 꾸짖었다.

“어이하여 그대는 겉옷을 입지 않았는고?”

비구니 스님은 부끄러운 듯 말이 없었다.

“저 비구니는 필시 무슨 사연이 있을 듯 하니 자세히 살펴보도록 해라.”

판관은 염라대왕에게 허리를 굽히고 비구니 스님을 과거를 보는 거울 앞으로 이끌고 갔다. 순간, 거울 속에는 매서운 눈보라 속을 헤매는 거지 여자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거지 여자가 눈물을 흘리는데, 뜻밖에도 몸에는 승복을 걸쳐 입고 있었다.

“스님! 스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합니까?”

그 거울 속의 여인은 목멘 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 저 여자는 어이하여 승복을 입고 저리 슬피 우느냐?”

염라대왕이 이상하다는 듯 판관에게 묻자, 판관은 말했다.

“이 비구니 스님은 평생 남을 위해서만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눈보라치는 겨울날 추위에 떨고 있는 거지 여인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비구니 스님은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주었습니다. 지금 저 여인이 고마워 저러는 줄 아룁니다.”

염라대왕이 감탄하며 말했다.

“이 스님은 극락으로 드실 분이니 비단옷을 내어드리고 풍악을 울려 길을 안내하도록 하라.”

그러나 그때 비구니 스님이 염라대왕 앞에 꿇어 엎드렸다. 그러고는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대왕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염라대왕은 놀란 눈으로 비구니 스님을 쳐다보았다.

“극락이 마음에 들지 않소?”

그제야 고개를 든 비구니 스님은 아주 간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극락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뭐라구!”

아직 한 번도 극락이 싫다고 한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염라대왕은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대왕마마 저는 극락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를 지옥으로 가게 하여 주옵소서.”

염라대왕은 또 한 번 놀랐다.

“뭐, 지옥이라구? 그것 참, 이상한 스님이로고. 그래, 그대가 지옥으로 가겠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극락에 가면 제가 할 일이 없습니다. 안락한 그곳에는 가난하고 병들어서 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이 없을 것 아닙니까? 지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고통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비구니 스님은 아주 간절하게 말했다.

“오호!”

염라대왕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대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리오. 그대와 같은 성자를 알아보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럽소. 내 그대의 그 거룩한 청을 받아들여 그대를 지옥으로 안내하겠소.”

“대왕님 감사합니다.”

비구니 스님은 염라대왕에게 합장을 하였다.

“여봐라. 이 성자를 지옥으로 안내하라. 그러나 이 성자에게는 모든 사람들을 제도할 수 있도록 안 먹어도 아프지 않고, 불속에 들어가도 데이지 않는 특별한 능력을 주어서 많은 지옥 사람들을 착한 길로 인도하도록 하라. 그리고…….”

그러나 염라대왕의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엉거주춤 서 있던 비구니 스님이 다시 염라대왕 앞에 엎드렸다.

“대왕마마!”

염라대왕도 이번에는 놀라지 않고 다시 비구니 스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성자시여, 말씀하시오.”

“저는 특별한 능력을 원하지 않사옵니다. 지옥 사람들과 똑같이 고통을 받도록 해주십시오. 지옥 사람들은 모두 고통 받고 있는데, 저만이 고통을 받지 않는다면 어찌 그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그들과 같이 굶주림과 추위에 떨 것입니다.”

“성자시여, 그것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염라대왕은 아주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비록 죄를 지은 사람들이지만 그들과 함께 마음을 나눈다면 지옥인들 두렵겠습니까?”

“성자시여, 성자시여!”

염라대왕은 눈물을 머금고 그 비구니 스님을 지옥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금강산에 명경대를 만들다

비구니 스님을 지옥으로 보낸 뒤에 사자들은 이름난 부자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너는 이름난 부자였다지? 그래 한평생 지은 죄는 얼마나 되며, 좋은 일은 얼마나 했는지 말해 보아라.”

“제가 어찌나 인심이 후했던지 우리나라 전국의 거지들이란 거지는 모두 제 집으로 모여드는 바람에 거지 행렬이 이십리도 더 뻗쳤다면 대왕님께서도 짐작이 가실 겁니다.”

부자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 염라대왕도, 판관도 야릇한 웃음을 날리며 부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 판관은 이 부자를 거울 앞에 세우도록 하라.”

부자를 거울 앞에 세우라는 염라대왕의 명이 떨어지자 부자는 거울 앞이 극락으로 가는 문인 줄 알고 아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부자가 거울 앞에 서자마자 거울 속에 웬 걸인 두 사람이 닫힌 대문을 마구 두들기는 장면이 나왔다.

“야 이 더러운 놈아, 왜 달라는 동냥은 안 주고 쪽박을 깨. 쪽박을 깨면 우린 뭘로 빌어먹고 살라고.”

걸인들은 울부짖듯이 대문을 발길로 차고 욕을 퍼부었다. 거울 속을 들여다보고 있던 부자는 그만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이 고약한 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거짓말을 늘어놓느냐? 그럼 그 다음 일을 보여줄 테니 꼼짝하지 말고 서 있거라.”

판관이 다시 염라대왕의 분부대로 부자를 끌어다가 거울 앞에 세우니 거울 속엔 수많은 여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부자를 붙들고 살려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모두 머리가 헝클어지고 옷이 찢겨지고 심지어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여인들은 두 팔을 내저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염라대왕이 판관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판관은 허리를 굽혀 말했습니다.

“대왕마마 이 자가 양식을 주지 않아 어린 자식들이 모두 굶어 죽은 여인들입니다. 농사가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는 때에 이 자만이 곡간 가득 곡식을 쌓아두고 배불리 먹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그게 그런 게 아니라……”

부자는 다시 무슨 변명을 하려고 하였다.

염라대왕은 고함을 질렀다.

“네, 이 고약한 놈 같으니 그렇게 못된 짓을 하고도 모자라 나까지 속이려 해. 여봐라! 이 자는 더 비춰볼 것도 없으니 냉큼 끌어다가 등짝에 염열지옥(炎熱地獄) 도장을 찍어 떨어뜨려라!”

그 후로 염라대왕은 곰곰 생각을 하였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고, 좋은 일을 많이 하면 극락으로 간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궁리 끝에 염라대왕은 판관과 사자를 불러들였다.

“내 조선의 명산 금강산에 우리 염라국에 있는 명경대를 만들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죽은 자들을 심판하는 모습을 바위로 만들어서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깨달음을 주도록 하라!”

그리고 염라대왕은 해 뜨는 나라의 제일 명산, 금강산의 가장 큰 절인 장안사 남쪽에 냇물을 만들었다. 그 냇물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넘어가는 냇물이라 하여 황천강(黃泉江)이라고 하였고, 그 냇물 위에는 앞뒤 모양이 똑같은 거울 모양의 큰 바위를 세웠으니 그 바위가 바로 명경대다.

명경대 가운데는 염라대왕이 버티고 앉아 있으며 그 좌우로는 죄인봉 · 판관봉 · 사자봉 등이 늘어서 있다.

지금도 명경대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들은 우리에게 염라대왕의 준엄한 뜻을 전하고 있다.

우봉규

작가. 〈황금사과〉로 동양문학상을 받은 뒤 〈객사〉로 월간문학상을, 〈남태강곡〉으로 삼성문학상을, 〈갈매기야 훨훨 날아라〉로 계몽사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희곡 〈눈꽃〉이 한국일보사 공모 광복 50주년 기념작에 당선됐다. 2001년과 2002년 서울국제공연제 공식 초청작 〈바리공주〉, 〈행복한 집〉 발표 이후, 우리나라 희곡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