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명론(272호)

불교학 개론서의 고전

김동화 박사.

개론서는 원론서에 비해 쉬운 책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저자가 집필하기도, 독자가 선택하기도 어려운 책이다. 개론서는 특성상 저자가 어떤 분야의 광범위한 내용들을 핵심적으로 정리하면서도 독자가 용이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불교학 분야에 있어서도 수많은 개론서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수한 불교학 개론서는 손꼽을 수 있는 정도다.

김동화(金東華, 1902~1980)의 〈불교학개론(佛敎學槪論)〉(1954)은 불교학 개론서의 고전이라 평가할 수 있다. 김동화의 호는 뇌허(雷虛)이며, 경북 상주 출생으로 1913년 동진출가(童眞出家)하였다. 그는 릿쇼(立正)대학 종교과를 수석 졸업하고 해당 대학의 전임강사를 지낸 후 귀국하여 경북 오산불교학교 교장, 혜화전문학교 강사를 거쳐 동국대학교 교수로서 후학 양성과 저술에 전념하였다.

김동화는 초기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불교학 전반에 걸친 분야별 개론서를 저술하였는데, 〈원시불교사상〉, 〈유식철학〉, 〈구사학개론(俱舍學槪論)〉, 〈선종사상사〉, 〈대승불교사상〉 등이 있다. 당시에는 판로가 적은 불교서적을 출판해주겠다는 출판사가 마땅히 없었기 때문에 이 책들의 상당수는 학교 인쇄소에 부탁해 손으로 쓴 필사본들이었다.

〈불교학개론〉은 상기의 불교학 분야들을 총론한 성격의 개론서로, 불교학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집필되었다. 이 책은 국판 반양장 491쪽의 형태로 백영사에서 출간되었다. 당시의 책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이 책 역시 한문 투로 기술되어 있으며, 조사와 술어 이외는 모두 한자로 표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의 불교 교양인들에게 있어서는 필독서로 자리하였으나, 한문 투에 익숙지 않은 현재의 독자들에게는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불교학에 대한 개관서가 흔치 않았던 그 시기에 〈불교학개론〉은 일반인들이 불교학을 체계적으로 접할 수 있는 불교학의 지침서였다.

김동화 역시 서문에서 〈불교학개론〉을 그와 같은 이유로 집필하였다는 경위를 밝히고 있다. 본 서평을 작성함에 있어서 당대의 한문 투 문장을 오늘날의 독자가 일부나마 체험하게 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해당 ‘서문’의 일부를 원문 그대로 인용해본다.

 

“일즉부터 知友 學生들로부터 佛敎硏究의 指南書가 없어 遺憾이라는 悔恨을 들을 적마다. 佛敎를 專攻하는 한사람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을 禁치 하엿던 것은 勿論이요, 또 適當한 것을 하나 쓰라는 勸告를 받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였는 지라, 其實은, 四二八○년경에 千七百餘頁의 原稿가, 脫稿되어있던 것과 其他 三鐘의原稿 三千餘頁를, 六, 二五事變 무렵에 全部盜難을 當하고 말았다.

… 중략 …

그리던 것이, 그後, 東國大學校出版部로부터, 一般 文化人과 靑年學徒들이 읽을 만한 本書起稿의 委囑을 받았다. 그래서 避難地인 釜山·大邱 等地를, 轉轉하여 가면서, 脫稿가 된 것은 四二八六年 一月이였는바 이제야 겨우 出版의 完了를 보게 되어, 實로 感慨無量한 바가 있다.

이 微微한 著書가 初學者의 入門書가 되고 또 一般 人士가 佛陀의 理想을, 그 理想으로하여, 이 나라가 淨化되고 …… 一助가 된다면, 著者로서는 望外의 多幸이다.

 

〈불교학개론〉, 1954년 초판본. 백영사.

김동화는 이렇게 〈불교학개론〉을 불교연구의 지남서이자 입문서로 집필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그는 ‘서문’에서 이 책이 1947년(단기 4280) 탈고되었지만 한국전쟁 무렵에 도난당해 실의에 빠져 있다가 동국대학교출판부의 요청으로 피난지인 부산과 대구 등지를 전전하면서 재집필한 끝에 1953년에 탈고하여 이듬해인 1954년에야 비로소 출판하게 되었다는 경위도 기술하고 있다.

김동화는 ‘서론’의 제1장에서는 불교의 의의를, 제3장에서는 불교연구의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불교의 의의는 인생의 관점에서 불교의 정의와 불교의 목적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종교로서 불교를 논하는 것이다. 김동화는 불교를 철학도 윤리도 아닌 종교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면서 종교로서 불교의 양대 목적을, 개인 완성으로써 불타가 되는 것과 일체중생의 성불(成佛)로써 불국토의 건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불교의 목적에 대한 그의 주장은 일반론적인 소승에서 대승으로 나아가는 관점이 아니다. 제1목적인 불타가 되는 것은 정신적 문제이고, 제2목적인 불국토의 건설은 물질적 문제라는데 맞추고 있다. 그 이유로 정신적으로 완전한 인격자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인격에 상응하는 물질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인격의 실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임을 주장한다.

이와 같이 불교의 의의가 종교로서 불교를 논하는 것이었다면, 불교연구의 방법은 학문으로서 불교를 분류하고 그 연구 방법을 논하고 있다. 김동화는 두 가지로 불교를 분류하였는데, 그 하나는 삼장(三藏) · 의불(依佛)  · 교리(敎理) · 실천(實踐) · 교도(敎導)이며, 다른 하나는 종교적 · 윤리적 · 철학적 불교이다. 그는 이와 같은 분류 하에 불교의 연구 방법으로 윤리적 · 역사적 · 보조학 · 주석적 연구로 제시하고 있다. 이 중 보조학 연구는 불교학의 연구에 있어서 보조가 되는 어학 · 종교학 · 미술 · 문예 · 고고학 등의 연구를 지칭한다.

그렇다면 〈불교학개론〉의 ‘본론’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근래 출판되는 불교학 개론서들은 대체로 부처님의 생애, 소승불교, 대승불교, 현대불교 등 연대기 순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해 〈불교학개론〉의 ‘본론’은 불보론(교주론), 법보론(진리론), 승보론(해탈론)의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동화는 그 구성을 ‘의불지교(依佛之敎), 불타즉교(佛陀卽敎), 성불지교(成佛之敎)’의 논리로 제시하고 있다. 즉, 불교는 불타에 대한 의존으로 성립하며(依佛之敎), 불타는 곧 가르침이고(佛陀卽敎), 불타가 되는 가르침, 즉 불타가 아닌 승려도 해탈할 수 있다(成佛之敎)는 논리이다.

제1편 불보론에서는 불교의 교주로서 불타(佛陀)를 역사적 불타론인 응신론(應身論)과 진리적 불타론인 법신론(法身論)으로 분별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는 불타의 존재에 대한 전통론인 이신설(二身說)에 입각한 것이다. 이신설은 불타를 생멸신(生滅身)과 불멸신(不滅身)으로 구분한다. 생멸신은 역사적으로 실재한 석가모니불을 지칭하며, 불멸신은 불멸(佛滅) 이후 그 동안 설한 진리로서의 법을 영원한 불타로 간주하는 것이다.

제2편 법보론에서는 진리로서 불타의 가르침을 우주론, 연기론(현상론), 실상론(실체론), 지혜론(인식론)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중 연기론을 현상론으로, 실상론을 실체론으로, 지혜론을 인식론으로 부연하여 표기하는 방식은 불교학을 서양철학의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제3편 승보론에서는 불과 법을 계승하여 해탈로 나아가는 사람들인 승단을 설명하고 있다. 승보론은 신앙론(信) · 열반론(解) · 수행론(行) · 단혹증리론(斷惑證理論, 證)으로 구분되어 있다. 열반론이 굳이 해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의문 등 신앙론 · 열반론 · 수행론 · 단혹증리론을 신 · 해 · 행 · 증에 무리하게 배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해탈에 이르는 과정인 신 · 해 · 행 · 증으로써 그 주체인 승단을 설명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불타의 궁극적 가르침에 여법한 불교학 개론서를 집필하고자 한 저자의 의도를 일정 정도 추정할 수 있으며 그러한 그의 의도는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명저라고 할지라도 시대의 언어로 개역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명저의 생명력이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김동화의 〈불교학개론〉의 내용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불교학 개론서의 고전으로서 가치가 높다. 다만 그 언어는 시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독자들이 읽기에 불편함과 어려움이 상당히 많다. 오늘의 불교학자들에 의한 현대판 개역 작업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김동화의 〈불교학개론〉을 비롯한 불교학의 근대고전들이 새로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개역되고, 널리 읽혀져 불타의 가르침이 온 누리에 전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조기룡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 상임연구원, 한국교수불자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현재 진각복지재단 이사, 한국교수불자연합회 이사. 저서로 〈종무행정론〉, 〈불교리더십과 사찰 운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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