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명론(272호)

부처님 생애 다룬 책 중 가장 오래 사랑 받은
〈신편팔상록〉

안진호 스님. 〈사진제공=도서출판 민족사〉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이 명제를 의심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인간만이 생각을 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어미를 찾는 새끼의 간절함이나 애간장의 고사처럼 새끼를 잃은 어미들의 행동을 보면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는 감정과 사고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앞서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말할 때는 생각만이 아니라 문자와 같은 매체로 그 생각을 공유하는 것을 통칭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생각하는 인간은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왔다. 그 가운데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답해주신, 우리들의 스승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궁금증은 부처님의 전기를 짓게 하였다. 부처님 생전에는 경전이 편집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는데, 하물며 부처님의 일대기를 기록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 위대한 열반에 드신 이후 불교도들은 부처님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으로 부처님 생애의 주요한 장면을 글이나 그림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부처님의 전생과 탄생, 수행과 갖가지 교화에 관한 이야기, 열반 등에 관해 적혀진 경전의 등장이 그것이다.

부처님의 전생을 기록하고 있는 〈본생경(本生經)〉, 〈과거현재인과경〉,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을 필두로 하여, 부처님의 수행과 교화의 행적을 찬탄하는 〈불소행찬(佛所行讚)〉이 인도의 마명 보살에 의해 편찬되었다. 그리고 중국 승우(僧祐, 445~518) 스님에 의해 족보적인 관점에서 〈석가보(釋迦譜)〉가 편찬되었으며, 명나라와 청나라 때는 〈석씨원류(釋氏源流)〉와 〈석가여래응화사적(釋迦如來應化事蹟)〉 등이 편찬되었다.

또 14세기 중엽 고려 운묵(雲黙) 스님은 〈석가여래행적송〉을 편찬하였고, 15세기 한글이 창제된 이후 수양대군은 〈석보상절〉을 편찬하였다. 19세기 이후에는 〈팔상록〉이라는 이름으로 부처님의 생애가 필사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목마른 이가 물을 구하듯이 부처님의 생애를 담은 서적들이 간간이 이어졌다. 1913년 이교담(李交淡)의 〈팔상록〉, 1922년 백용성의 〈팔상록〉, 1930년대 김대은의 〈석가여래약전〉, 1941년 만상회(卍商會)에서 편집한 안진호(安震湖)의 〈신편팔상록〉 등을 들 수 있다.

〈신편팔상록〉, 1954년 재판본.

출판된 부처님의 생애 가운데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은 책은 안진호의 〈신편팔상록〉이 아닐까싶다. 이 책은 초판 이래 1954년 재판, 1961년 중판, 1975년 개정판이 보급되었으며, 이후에도 여러 사찰에서 복제 발행된 것으로 보인다. 안진호의 〈신편팔상록〉은 부처님의 생애가 역사적이고 인간적인 측면으로 수용되기 시작한 1970년대 이전까지 부처님의 생애를 소개하는 유일하고 가장 권위 있는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크기는 가로 14.

5cm, 세로 21cm 우철 4공의 실로 매는 제책 방식이다. 양면 인쇄로 본문 548쪽으로 구성되었다. 본문은 겹선 안에 13행을 세로쓰기하고, 한 행에 평균 32자 내외가 인자(印字)되어 있으며, 한자를 오른쪽 위에 작게 쓰고 있다. 먼저 그림을 제시하고 설명하는 방식으로, 166편의 그림과 177편의 생애사가 담겨 있다. 11편에는 그림이 없다. 본문 겹선의 좌우의 홀수 쪽에는 생애사의 제목이, 짝수 쪽에는 팔상이 작은 글자로 인쇄되어 있다. 그림이 담긴 부분의 겹선 위에는 그림 제목이, 아래에는 시주자로 보이는 이들의 이름과 발원이 더 새겨져 있다. 겉표지에는 ‘신편 팔상록’이, 표지 안에는 ‘불일증휘 법륜상전’과 ‘만상회’가 한자로 표기되었다.

책에는 177편의 생애사가 팔상으로 분과되어 있는데 서문에 2편, 도솔천에서 내려오시는 모양의 제1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에 2편, 룸비니에서 강생하시는 모양의 제2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에 16편, 사대문으로 유관하시는 모양의 제3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에 4편, 성을 넘어 출가하는 모양의 제4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에 6편, 설산에서 도를 닦는 모양의 제5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에 11편, 나무 아래에서 마군을 항복받는 모양의 제6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에 8편, 녹야원에서 법을 전하는 모양의 제7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에 105편, 쌍림에서 열반에 드시는 모양의 제8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에 23편이 배치되었다.

먼저 그림을 배치하고 글을 싣는 순서이지만, 11편의 글과 그림이 있는 ‘설산수도상’편을 제외하고는 그림을 10편 단위로 제시하고 설명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그림은 각각이지만 내용이 이어지면 글의 단락을 나누거나 쪽을 새로 시작하지 않고 연이어 서술하고 있다. 각 편 그림 앞에는 각 편의 목차가 다시 한 번 제시되어 있다.

초판 이후 보급되고 있는 이 책의 후속 판에서는 안진호가 저자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안진호의 저서라고 보기 어렵다. 초판에는 “한문견서 회화삽입 신편팔상록(일명-석가여래응화사적)”과 “소백산인 진호 안본석연(安本錫淵) 편집”이라는 원전과 편집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래서 책을 편집하고 간행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별도로 밝히지 않아 책에 실린 그림과 목차 글의 내용 등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다. 일명 〈석가여래응화사적〉이라고 하였듯이 이 책은 〈석가여래응화사적〉을 저본으로 하여 편집하고 번역하며 윤문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석가여래응화사적〉은 청나라 강희제의 증손인 진국공(鎭國公) 영산(永珊)이 1787년부터 1793년 사이에 두 명의 경전을 쓰는 사람과 세 명의 그림 그리는 사람을 동원하여 완성한 부처님의 일대기를 싣고 있다. 〈신편팔상록〉의 저본이 된 이 책은 1939년 상해본(上海本)과 유사하다. 상해본에는 부처님의 생애에 대한 그림을 제시한 후 경전과 불서 등 출전을 밝히며 해설하고 있다. 그림 1면, 해설 1면의 형식이다.

안진호는 〈석가여래응화사적〉에서 165편의 그림과 글을 취하고, 새로 12편을 삽입해 전체 177편의 ‘석가여래응화사적’을 석가여래 팔상성도의 ‘팔상’에 맞춰 분배하고 전통의 부처님의 일대기 명칭인 ‘팔상록’을 제목으로 취했다. 새로 삽입한 부분은 〈부모은중경〉의 그림과 이야기를 비롯해 ‘극락세계의 연기를 설하는 장면, 아이를 죽이고 악한 보(報)를 받는 장면, 두 집에 한 자식이 된 장면, 부처님이 해골에 절하는 장면’ 등이다. 삭제한 것은 팔상의 중간 중간에 전생에 관한 이야기나 사리를 분배한 이후의 결집이야기 등 43편을 제외하고 있다.

이 책은 편집자가 〈석가여래응화사적〉을 단순히 번역만 하지 않고 편집하였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첫째, ‘팔상록’에 부합하는 것을 중심으로 편집하였다. 둘째, 저본의 원문 내용과는 적지 않은 거리가 있지만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내용을 윤문하였다. 셋째, 각 사건의 시차를 참고하여 편집하였다. 넷째, ‘시아귀회(施餓鬼會)’와 같은 보시와 〈부모은중경〉의 고사를 추가하였다. 다섯째, 책자의 편집과 번역에 참여한 사부대중의 함자를 매 그림 하단에 명기하였는데, 이는 보시한 이들의 명자(名字)를 책자의 중앙에 명기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수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편집자 안진호는 누구이며, 책자의 편집에 담긴 또 다른 관점과 의의는 무엇일까? 안진호는 본명이 석연(錫淵)이며, 1880년(고종 17) 경상도 예천에서 태어났다. 16세에 용문사에서 경전을 열람하던 중에 발심, 이듬해 1896년 신일(信一)을 스승으로 출가했다. 그 후 9년 동안 용문사 강원에서 수학한 후 김룡사 · 대승사 · 봉선사를 비롯한 여러 강원에서 후학을 지도하였다. 1920년대 후반 이후 사찰의 역사를 기록한 사지 편집에 종사하였다. 1935년에 ‘만상회’라는 불교출판사를 설립하여 〈석문의범〉 등 불교의례 서적과 치문 · 사집 · 사교 등에 토를 달고 주석하여 보급하였다.

〈신편팔상록〉의 여러 특징 가운데 문장을 윤문하면서도 ‘왈’이라고 하여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는 점도 특이하다. 또 기존의 ‘법보시’ 위주의 불서 보급에서 탈피해 상업성과 대중성을 추구한 점도 돋보인다. 초판 이후 30년 이상 절찬리에 보급될 수 있었던 까닭이라고 할 수 있다.

〈석가여래응화사적〉은 73편의 경전과 불서에 의거해 편집하였다고 출전을 밝히고 있으나 〈신편팔상록〉은 근거를 밝히지 않고 있다. 대중성을 위해서인지 몰라도 각 설화의 출전을 명기하지 않고, 옛날이야기 방식으로만 전개해 학술성을 떨어뜨린 점은 옥에 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사지(寺誌)를 편집한 기자로서의 관점이 반영되었거나 저본 그대로 옮기지 않아 근거를 밝힐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책의 편집자와 보시자의 창씨개명이나 보시자의 발원, 본문의 언어와 표기 등은 불교사뿐만 아니라 사회사와 언어사를 연구하는 자료로도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이성운

현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학술연구교수. 동국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한불교조계종 의례위원회 실무위원, 불교의례문화연구소 연구실장을 맡고 있다. 동국대 · 금강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불교의례, 그 몸짓의 철학〉, 〈한국불교 의례체계 연구〉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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