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과학(272호)

명상 하면 체열 상승
연구 통해 밝혀지며
‘마음과학’ 분야 열려

| ‘마음과학’의 등장

1979년 10월 18일, 티베트 망명정부의 수반이며 티베트 불교의 법왕인 달라이라마 성하가 미국 하버드대학교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허버트 벤슨(Herbert Benson) 교수도 이때 달라이라마를 만나게 되었다. 벤슨 교수는 이 만남에서 자신이 환자의 치료를 위해 시행해 온 간단한 명상기법의 생리학적 효과에 대해 설명하면서 티베트 불교의 몇 가지 고급 명상기법을 연구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나아가 벤슨 교수는 티베트 불교의 명상 수행법의 하나인 ‘뚬모(gTum-mo)’ 명상의 신비한 ‘마음 ‐ 몸 효과(mind-body effect)’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는 의사를 비쳤다.

벤슨 교수가 뚬모 명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한 권의 책이었다. 20세기 초, 알렉산드라 데이비드 닐(Alexandra David Neel)이라는 여성이 티베트 승려로 가장해 티베트를 여행한 후 관찰한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 1971년에 출간된 〈티베트의 신비와 미스테리(Magic and Mystery of Tibet)〉다. 이 책에는 뚬모 명상이 다음과 같이 소개돼 있다.

알렉산드라 데이비드 닐(Alexandra David-Neel, 1868~1969)은 티베트 승려로 가장해, 많은 사원을 일일이 다니며 수많은 고승을 모시고 불교를 배웠다. 그리고 〈티베트의 신비와 미스테리(Magic and Mystery of Tibet)〉를 썼다.

“수행승은 알몸으로 맨바닥에 가부좌를 하고 앉는다. 수행승은 얼음물에 담긴 천들 중 하나를 꺼내서 자신을 감싸고 명상에 들어가 그 몸에서 발생하는 열로 그 천을 말려야 한다. 그 천이 다 마르면 다시 얼음물 속에서 다른 천을 꺼내어 자신을 다시 감싼다. 이 과정이 초저녁부터 시작하여 다음날이 밝아 올 때까지 계속 반복된다. 그렇게 해서 가장 많은 수의 젖은 천을 말린 사람이 승자로 인정받는다.”

벤슨 교수는 달라이라마에게 ‘뚬모 명상 중 수행자에게 일어나는 몸의 현상들을 현대의학 장비를 이용해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 이런 요청에 달라이라마는 과학적으로 이런 현상을 측정할 수 있다는 데 관심을 표하면서도 그것이 과연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했다. 그러면서도 티베트의 전통 수행법을 서구의 과학자들이 연구한다면 티베트 불교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도와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티베트 불교공동체와 하버드 의과대학은 마음과학(Mind Science)에 대한 상호 교류와 연구를 시작하고, 10년 이상 공동 연구를 지속했다. 그 연구결과를 발표한 자리가 1990년 10월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크레스지(Kresge) 강당에서 달라이라마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하버드 마음과학 심포지엄’이다.

데이비드 닐은 1914년 한 수도원에서 15세의 라마승 용덴(Yongden)을 만나 양자로 삼고, 아시아와 유럽 각지를 함께 여행하며 가르침을 구하는 여정을 떠난다.

| 티베트 불교수행법, 뚬모 명상

뚬모 명상이란 위에서 언급한 데이비드 닐이 책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추운 겨울 얼음물에 적신 천으로 몸을 감싸 두르고 명상함으로써 수행과정에서 발생하는 몸의 열로 그 천을 말리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수행법이다. 이 수행은 수행자들이 명상을 통해 체열(體熱)을 발생시켜 망상을 태워버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수행자들은 명상을 하면서 스스로 망상을 소각하고 있다고 관상(觀想)을 한다.

뚬모 명상에서 ‘뚬모’는 수행자가 명상을 통해 자신의 체내에 있는 세포조직의 생명력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몸의 열을 의미한다. 티베트에서는 뚬모를 신령스러운 열, 곧 ‘영열(靈熱)’이라고 불린다. 역대 수많은 티베트 고승들은 차디찬 히말라야의 설산에서 수행하면서도 몸의 건강을 지키고 생명력을 유지했는데, 이 뚬모 수행법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고 한다.

또한 문헌에서 흔히 그림으로 볼 수 있는 티베트의 위대한 성자 밀라레파(Milalepa) 존자나 다른 성자들이 눈 덮인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활동하면서도 가벼운 옷을 걸치고 몸의 맨살을 거의 드러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옷차림이 가능한 것도 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뚬모 명상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티베트 불교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처음 뚬모 명상을 설하셨고, 그 가르침은 구전으로 전해졌다. 12세기에 이르러서야 나로파(Naropa) 존자가 문자로 기술해 문헌으로 그의 제자 마르파(Marpa) 존자에게 전해졌고, 마르파 존자가 그의 제자 밀라레파 존자에게 전해 그가 위대한 뚬모 수행자가 되게 했다.

벤슨 교수 연구팀은 실험에서 신비로운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섭씨 4℃의 추운 기온 속에서 수행자들은 얼음물이 줄줄 떨어지는 길이 180cm, 너비 90cm의 천을 몸에 두르고 명상에 들었는데, 3분 내지 5분이 지나자 천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45분이 지날 때쯤에는 천이 완전히 말라버리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날이 샐 때까지 그와 같은 실험을 몇 차례 더 반복했다.

연구팀은 또 뚬모 수행자 세 명이 명상을 하는 동안 수행자들의 신체적 변화를 현대 의학적 방법으로 측정했다. 실험은 세 단계로 나눠 진행됐다. 제1단계는 명상에 들어가기 직전인 평상시 상태에서 5분간, 제2단계는 뚬모 명상을 수행하는 5분간, 제3단계는 명상을 마치고 본래의 상태로 회복하는 5분을 각각 측정했다.

그 결과 체내의 산소 소비량이 늘어났고, 직장(直腸)을 통해 측정한 체내 온도는 변함이 없었음에도 손가락의 온도는 3.5~7.5℃, 그리고 발가락의 온도는 3.9~8.3℃만큼 뚜렷이 올라가는 놀라운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다. 명상을 끝마치자, 손가락의 온도는 명상 전의 온도로 급격히 돌아왔으나 발가락의 온도는 조금 느리게 원래의 온도로 회복되었다. 이와 같이 명상수행으로 자신의 말단 부위 체온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실험 결과는 기존 서양 의학계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현상이었다. 마음과 몸의 상호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이다.

허버트 벤슨 교수와 그의 저서 〈The Mind/Body Effect〉. 우리나라에는 번역되지 않았다.

| 뚬모 명상의 의학적 효능

서양의 의학적 관점으로 볼 때 온혈동물은 추운 환경에 처하면 생명의 유지에 필요한 열을 몸 안에 오랜 시간 유지하기 위해 비순환적 요소와 순환적 요소의 효율적인 방법을 몸이 자발적으로 강구한다. 즉, ‘열 손실을 줄이는 비순환적 요소’란 동물의 경우에는 털을 세워 열의 절연층(絕緣層)을 보강하는 행위이고, 사람이라면 옷을 껴입어 열의 방출을 막는 행위이다.

반면 ‘열 손실을 줄이는 순환적 요소’는 신체가 스스로 피부에 가까운 말초 혈관을 수축시킴으로써 혈액의 순환을 느리게 해, 심장을 포함한 체내 중심 기관의 온도가 내려가는 것을 억제하는 작용이다. 그러나 이때 혈액 순환이 느려진 말초 부위는 온도가 빨리 내려가기 마련이어서 발가락, 손가락 또는 귀와 같은 부위는 차가워지고 추위에 오래 노출될 경우는 동상에 걸릴 수 있다. 그런데 뚬모 명상에서는 이런 서양 의학계의 관점인 열 순환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티베트 수행자들이 뚬모 명상을 하는 이유는 매우 높은 영적인 성취일 뿐, 단순히 손이나 발의 체온을 올리기 위함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체온의 상승은 수행의 부수적 산물일 뿐이므로 수행자들은 서양의 현대 의학자들이 체온의 상승을 크게 놀라워하는 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벤슨 교수는 왜 뚬모 명상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였을까? 서양의학계의 입장에서 마음의 작용을 통해 추운 환경 속에서 몸의 말단 부위인 손가락이나 발가락의 온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 즉 자연현상과 생리적 현상을 마음의 작용을 통해 정반대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여러 종류의 환자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상당한 가능성을 의미한다.

벤슨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뚬모 명상에서 일어나는 그와 같은 변화는 스트레스로 유발된 장애나 악화된 만성 장애의 치유에 직접 활용할 수 있다. 또한 티베트 명상에 기반을 둔 심리적 수련으로 여러 종류의 만성병 치료의 가능성이 기대되고 있다. 티베트 불교공동체와 하버드 의과대학 간에 진행되고 있는 마음과학에 대한 상호교류 및 연구는 이른바 ‘마음-몸 의학(Mind-Body Medicine)’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탄생하게 했고, 이 분야는 현재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준

건국대 명예교수. 전북대 화공과를 나와 서울대 대학원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했다. 마흔에 불교에 입문, 봉선사 통신강원에 입교해 월운 스님 문하에서 수학하며 불교서울전문강당을 졸업했다. 1983년부터 퇴직 때까지 19년 간 건국대 불교학생회 지도교수를 맡았다. 교수불자연합회장과 참여불교재가연대 총회의장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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