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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리뷰, 명강연(272호)

“인류의 ‘하나 됨’ 깨달으면 보편적 책임감 저절로 생겨”

2017년 3월 12일 인도 다람살라에서 열린 티베트계 유민들의 신년 축제에 참석한 달라이라마가 법문을 하고 있다.

달라이라마(Dalai-Lama)는?

라마교 4대 종파의 하나인 게룩파의 수장인 법왕이자, 티베트의 국왕이다. 몽골어로 큰 바다를 뜻하는 ‘달라이’와 티베트어로 영적인 스승을 뜻하는 ‘라마’가 합쳐진 단어다. 이 칭호는 제3세로 꼽을 수 있는 소남 갸초(1543∼1588)가 몽골 토메토의 알탄 칸의 초청을 받고 1578년 칭하이[靑海] 지방에 갔을 때 받았다. ‘갸초’가 곧 ‘달라이’이다.

달라이라마는 자신이 입적하기 전에 환생할 장소를 예시하거나 신탁에 의해 환생할 달라이라마에 대해 예시한다고 전해진다. 전대 달라이라마가 환생했다고 여겨지는 아이는 여러 시험을 거쳐 선택된다. 현재 달라이라마인 텐진 갸초(Tenzin Gyatso, 1935~)는 제14세다. 그는 1959년 중국에서 탈출, 인도 다람살라(Dharamsala)에 망명정권을 수립했다.

이후 눈부신 지도력과 놀라운 인내심으로 티베트 난민의 희망이 되었고, 티베트 불교를 세계에 널리 전파했으며, 마하트마 간디 이후 다시 한 번 비폭력 평화정신을 구현한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다음은 2013년 5월 미국 포틀랜드대학교에서 ‘인류의 보편적 책임과 책임의식’을 주제로 강연한 내용의 요지다.

저는 항상 인류의 ‘하나 됨’을 강조합니다. 인류 역사상 과거에도 현재에도 많은 갈등이 있어 왔고, 아마 미래에도 많은 갈등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갈등의 대부분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국적·인종·종교와 같이 부차적인 요소일 뿐인 ‘다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점에 있습니다. 심지어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회적 배경에 따라 교육을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 가난한지 부유한지, 영향력이 있는지 없는지 등을 따지며 차이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70억 인류는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동등한 존재입니다.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만 달리해보면 서로를 죽일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하와이 원주민 속담에 “네 피는 내 피, 네 뼈는 내 뼈.” 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당신의 고통이 내 고통이라는 말이지요. 우리에게는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덧붙여 우리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개미나 벌을 생각해 봅시다. 이 생명체들은 법적 제도나 경찰 없이도 더불어 살아갑니다. 생존을 위해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사회적 동물입니다. 우리의 생존은 외부 세상(사회)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궁극적으로 동등한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만나러 올 때 ‘나는 불자야. 나는 심지어 신성한 달라이라마지.’ 하는 강한 감정을 가지고 여러분을 만난다면 어떻겠습니까? 이런 태도는 거리감을 만들어 냅니다. 누군가를 다르다고 여기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에는 불편한 감정이 싹틉니다.

만약, 언젠가 다른 행성에서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게 된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와 겉모습은 좀 다르겠지만 외계인도 똑같은 유정(有情, sentient beings)입니다. 혹시 우리를 찾아온 외계인들에게 손이 있으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면 됩니다.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순간, 두려움과 불안감이 생길 뿐입니다.

인류의 ‘하나 됨’을 깨달으면 보편적 책임감 역시 저절로 생기게 됩니다. 세계 경제는 이미 종교적 신념의 문제나 국경을 뛰어넘었습니다. 환경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인류가 함께 직면한 문제이지요. 이와 같이 지금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과 모든 실제는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이 문제에 대처하고 행동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도 불리는 달라이라마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이를 바탕으로 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강조한다.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티베트 수행자의 모습.

20세기는 인류 역사에 큰 의의를 가진 시대였습니다. 인류는 20세기에 과학적 지식을 축적하고 그에 기반을 둔 각종 기술을 개발하였지요. 하지만 동시에 20세기는 폭력의 세기이기도 했습니다.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20세기에 핵무기 등 폭력에 의해 사망한 사람의 수는 무려 2억 명이나 됩니다. 21세기 초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는데, 이는 과거 20세기에 우리가 저지른 잘못의 여파 내지 결과로써 일어난 일입니다. 하지만 폭력은 몸을 지배할 수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지휘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은 애정과 용서, 긍정적인 정신적 태도들에 의해 변하는 것입니다. 무기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무기를 사용하면 분노와 원망을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저는 일본인 친구가 많은데요, 제 친구들에게 미국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미국은 일본에 두 개의 핵폭탄을 터트린 나라이니까요. 그런데 대답은 ‘아니오.’ 였습니다. 또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에도, 제 독일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예전에는 두 나라가 서로 원수지간이었지만 이제 그런 태도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이처럼 사람의 마음은 변합니다. 20세기는 우리에게 새롭고 행복한 세상을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이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왜 20세기가 새롭고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없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발견한 문제들을 차분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21세기는 평화의 세기여야 합니다. 물론 이때 말하는 평화가 앞으로 우리에게 아무런 갈등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가지는 한 우리는 항상 새로운 문제에 당면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끝없이 갈등이 존재하는 세상을 어떻게 평화롭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일까요? 모든 문제와 갈등은 대화를 통해 비폭적력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동등한 존재라는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말이지요. 바로 이러한 신념이 의미 있는 대화의 근본입니다. 평화의 세기를 이룩하기 위해서 이번 세기는 무기의 세기가 아닌 대화의 세기여야만 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무렵부터 갈등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 대화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가령, 가정 내에서 부모 간, 형제자매 간에 문제가 생기면 대화로 해결을 하지요? 이런 태도를 전 세계로 확장시켜야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이 ‘다름’을 대화로 극복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이런 교육은 아주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비폭력에 대한 확고한 태도와 의지를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류의 ‘하나 됨’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다른 존재에 대한 애정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와 마음을 가지고 나면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고, 타인을 괴롭히고, 심지어 죽이고, 각종 해가 되는 일을 할 만한 여지가 없습니다. 타인을 존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비폭력의 정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타인에 대한 존중입니다.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나 다른 존재에 대한 애정은 종교적 신념과 반드시 관련이 있지는 않습니다. 다른 존재에 대한 애정은 오히려 생물학적인 요소입니다. 동물들만 해도 어미가 새끼에게 무한한 애정[母性]을 보입니다. 동물들의 이런 애정이 종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미의 애정과 돌봄 없이 새끼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도 동물의 범주에 속합니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을 통해 우리는 다른 존재에 애정을 느끼고 표현할 잠재력을 가집니다. 이러한 이유로 타인에 대한 애정을 앞서 생물학적인 요소라고 했습니다. 애정이라는 감정은 어린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또렷하고 신선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생물학적 특성은 지성 같은 인간의 다른 특성이 드러나면서 가려지고, 희미해집니다. 또 사회의 영향으로 아이들의 마음은 공격성을 띄게 되어 애정과 같은 좋은 특성들은 점점 더 묻혀버립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인류의 소중한 가치들을 잃고 각종 갈등을 스스로 만들어 냅니다.

교육제도는 근본적인 인류의 가치를 다루어야 합니다. 저는 근본적인 인류의 가치를 ‘도덕 윤리(moral ethics)’라고 부릅니다. 윤리는 전 인류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하며 종교인과 비종교인 모두에게 호소력이 있어야 합니다. 인도에는 지난 2000~3000년 간 세속 윤리(secular ethics)라는 것이 존재했습니다. 인도에서 ‘세속’은 종교에 대한 불신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모든 종교를 존중하는 태도와 비종교인에 대한 존중을 의미합니다. 즉, 세속 윤리는 인류에 대한 존중입니다.

현존하는 종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애(慈愛)는 모든 종교의 근원입니다. 어떤 종교이든 ‘타인을 보살펴라’, ‘타인을 용서하라’ 등의 교리가 있습니다. 이는 세속 윤리에 기반을 둔 가르침입니다. 최근 종교계와 뇌과학자들이 공동 연구를 하는데요. 연구의 결론은 인간의 기본 가치를 키워내는데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기본 가치 신장(伸張)은 교육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교육을 통해서 우리는 자비심이 더 많은 세대를 키워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평화로운 대화의 세기, 자비의 세기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기도가 아니라 교육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평화로운 대화의 세기를 이룩하기 위한 보편적 책임의식의 근본적 정수(精髓, essence)는 마음에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의 세계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인도 고대 신념체계인 불교나 자이나교를 보면 마음을 살피는 훈련을 강조하는데 이러한 훈련은 매우 중요합니다. 훈련을 통해 마음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속 윤리에서 마음과 감정의 지도를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종교와 관련된 글에는 마음과 감정에 대한 정보가 많이 담겨있는데요. 따라서 경전을 종교와 무관하게, 학문적 대상으로 여기고 공부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몸의 위생(衛生)과 마음의 위생은 똑같이 중요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마음의 위생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신체의 건강과 정신의 건강은 아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신적 건강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병이 나면 의사에게 가면서, 정신적 문제가 발생하면 술을 마시거나 안정제를 먹거나 심지어 마약을 하기도 합니다. 아주 잘못된 방법입니다. 정신적 문제가 생기면 외부 수단이 아니라 정신의 수련을 통해서 문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마음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마음의 세계는 ‘감정위생’과 같은 과목을 만들어서라도 현대 교육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할 주제입니다.

 

이혜인

부산외국어고등학교, 서울교육대학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영어 · 교육학 · 한국불교를 공부했다. 2013년 초 인도에서 열린 샤카디타 세계불교여성대회에서 통 · 번역을 했던 것을 계기로 불교 번역에 입문했다. 

 

번역·이혜인  ggbn@ggbn.co.kr

행복을 일구는 도량, 격월간 금강(金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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