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불교인의 삶과 신앙(272호)

전 국토가 불탑과 사원
탄생에서 죽음까지 
신행의 삶이자 수행의 삶

미얀마 바간의 아침은 자욱한 안개 때문에 신비한 느낌을 준다. 바간에는 수많은 불탑이 남아 있다. 불교 국가답게 불탑 하나 하나에 미얀마인들의 불심이 녹아 있다.

동남아시아의 불교국가 중에서도 불심이 돈독하기로 손꼽히는 이들이 미얀마인들이다. 그들의 조상은 미얀마 전역에 불탑과 사원을 세워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해왔다. 현대를 사는 이들도 마찬가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그들은 불교와 함께 산다. 단 하루도 불교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그들, 미얀마인들의 수행의 삶, 신행의 삶을 들여다봤다. 

미얀마의 중부도시 빠꼬꾸(Pakokku)에 살고 있는 7살 타니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엄마가 깨우지 않으면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타니가 이렇게 일찍 일어난 이유는 오늘이 그가 사미계를 받는 ‘신쀼(Shin Pyu)’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집 안에는 이미 많은 마을사람들이 그의 신쀼 의식을 축하해주려 모여들고 있었고, 그들은 평소에 보지 못했던 멋진 옷을 입고 있었다.

타니가 찬물로 세수를 하니 어른들이 모여들어 그의 얼굴에 향기 가득한 화장품을 발라주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세수 후에 다나까(나무줄기를 갈아서 만든 천연 화장품)를 갈아 볼에 바르는 것이 전부였지만, 오늘 그는 멋지게 화장을 하였다. 눈썹을 그리고 얼굴에 하얀 분도 바르고 입술을 빨간색으로 칠해주었다. 또 부모님이 몇 년 동안 모은 돈으로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고, 새 모자를 썼다. 평상시에는 만져보지도 못했을 부드러운 천으로 된 옷이었다.

신쀼 의식을 하는 모습. 화려하게 치장을 한 어린이가 말을 타고 바간의 한 사원으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니 더 많은 마을사람들이 손에 꽃과 보시물품을 들고 모여들었다. 또한 울타리 밖에는 그가 타고 갈 말도 멋지게 장식을 한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옆집 삼촌은 말고삐를 잡고 있었고, 옆마을에서 온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도 도착해서 연주를 하고 있었다.

사원으로 출발할 시간이 된 것이다. 맨 앞에는 악대와 광대로 분장한 형들이 가장 먼저 길잡이를 하고, 그 뒤에는 왕자가 된 타니가 말을 타고 뒤따랐다. 그 뒤로 마을사람들이 보시할 성물을 들고 한 줄로 길게 줄지어 섰다. 길 옆에 늘어선 많은 사람들이 타니의 신쀼 의식을 축하해주는 사이, 행렬은 마을 인근에 있는 사찰인 ‘욕 손 짜웅(Yoke Son Kyaung)’으로 향했다. 이 오래된 수도원은 많은 스님들이 공부하며 수행하는 사찰인데, 타니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형도 이곳에서 신쀼를 하였기에 타니도 자주 왔었던 곳이다.

신쀼 의식에서는 맨 먼저 자동차에 부처님을 모시고 출발한다. 이때 앞에서는 꽃가루를 뿌리며 간다. 스피커를 동원한 광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타니는 넓은 예불소에서 함께 온 마을사람들과 예불을 올렸고, 큰스님으로부터 덕담을 들었다. 그리고 뒷마당으로 가서 조용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큰스님이 소리 없이 타니의 머리카락을 자르자, 길게 자랐던 검은 머리카락이 땅에 떨어졌다. 옆에서 합장을 하고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졌다. 장한 아들의 모습, 완전한 가족과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서 열린 신쀼 의식.

어느덧 타니의 머리는 말끔해졌고, 찬물로 머리를 씻어내었다. 그리고는 스님 방으로 들어가 붉은색 승복을 입었다. 큰스님은 승복을 입는 법과 수도원에서 생활하면서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자세하게 알려주셨다. 타니가 밖으로 나오자 문밖에서 기다리던 부모는 합장을 하고 뒤돌아서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 타니는 이 수도원에서 일주일간의 승려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신쀼’는 미얀마 남자들이
처음 접하는 불교의식

미얀마에서 신쀼는 남자들이 가장 처음 접하는 불교의식 중 하나이다. 신쀼 의식은 단기출가라고 할 수 있기에 대부분 일주일 정도 체험하지만, 그대로 승려로 생활하는 이들도 많다. 신쀼는 가족의 일원이자 미얀마 불교신자로 인정받는 어른이 되는 첫 단계이기에 성년식도 포함된 의식이다. 미얀마 남자에게 신쀼 의식은 첫 돌보다도 더 중요하고, 결혼보다도 종교적으로는 더 중요한 의식이다. 그래서 미얀마 남자라면 화려함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신쀼를 안 해 본 사람은 거의 없다.

미얀마 사가잉 언덕 아래에 있는 야다나싱기(yadanasingi) 수도원은 원래 띨라(여승)만을 위한 수도원이었다. 현재는 학교와 고아원의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다.

가정형편에 따라 신쀼를 하는 시기는 조금 다르지만 대개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다. 신쀼가 있는 날, 의식은 한 사람의 일도 아니고 한 가정의 일도 아닌, 마을의 일이고 미얀마 남자의 일이 된다. 그래서 부유한 집안에서는 신쀼를 할 때 아들뿐만 아니라 마을의 가난한 집안 자녀들까지 함께 행한다. 물론 모든 경비는 부유한 집안에서 지불하는데, 자식의 신쀼와 더불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성스러운 보시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쀼의 모습은 석가모니의 출가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가장 화려하게 꾸미고 말을 타고 집을 나서지만, 사원에서는 삭발을 함으로써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행자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즉 석가모니의 출가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때부터 진정한 불교신자로 태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야다나싱기 사원에서 단기 출가체험을 하는 미얀마 어린이들.

신쀼 이후 타니가 커가면서 맞이하게 될 대부분의 명절과 축제는 다른 불교국가에는 없는 미얀마 고유의, 부처님 일생과 관련된 불교행사들이다. 매년 4월 혹은 5월에 벌어지는 ‘까손(Kason)’ 축제는 부처님의 탄생과 성도 · 열반을 기념하는 행사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악대를 앞세워 사원으로 가서 보리수와 불상에 성수를 뿌리며 예불하는 명절이다.

6월경에 열리는 ‘와소(Waso)’ 축제는 우안거를 기념하는 행사로, 수도원의 스님이 안거 기간 중 필요한 물품을 마을별로 보시는 하는 축제다. 안거가 끝나는 9월경에는 ‘따딘윳(Tadin gyut)’이라는 불의 축제가 대규모로 열린다. 이 축제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도솔천에 있는 마야부인에게 설법을 하고 내려온 날을 기념하는 행사로, 3일간 진행된다. 보름 전날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부처님을 환영한다는 의미로 미얀마의 모든 가정에서는 불을 환하게 밝힌다. 

미얀마 불자들이 양곤 쉐지곤 파야에서 자신의 소원을 빌며 관불의식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11월에 열리는 ‘따자웅몬(Tazaung Mon)’ 축제는 싯다르타 왕자가 출가하였을 때가 11월 보름이었고, 도솔천에 있던 마야부인이 출가한 아들을 위해 사문의 옷이 필요한 것을 알고 밤새 짜서 범천에게 내려 보낸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래서 이때 많은 신도들은 가사를 짜서 스님들에게 보시한다. 이 밖에도 미얀마에서는 많은 축제가 열리는데, 모두 부처님을 위한 예불의 형태이고, 대부분의 의식은 마을별로 수도원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명절 혹은 의식에 축제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미얀마 젊은이들, 사원서 데이트
자신의 띠 동물 찾아 성수 붓기도

그렇다고 미얀마 사람들이 축제 때만 사원을 찾는 것은 아니다. 아주 작은 일이 생겼을 때 도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사원이다. 슬픈 일이건 기쁜 일이건 그들은 항상 사원을 찾아 예불한다. 그렇다고 일이 생겼을 때만 사원을 찾는 것도 아니다. 미얀마 사람들의 발길은 항상 사원을 향해 열려있다. 젊은이들은 데이트할 때도 사원을 찾고, 학생들이 모여 스터디그룹 활동을 할 때도 사원을 찾는다. 멀리 있던 친지나 친구가 찾아와도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사원을 찾아 담소를 나눈다. 심지어 집에 있다가 너무 심심하면 사원을 찾아 낮잠을 즐기기도 한다.

바간 마누하 사원에서는 불자들의 보시금으로 쌀을 사서 인근의 가난한 가정에 나누어 준다.

이들이 사원을 찾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불탑을 돌면서 불탑 주변에 조성된 많은 동물들의 형상 중 자신이 태어난 해의 상징동물을 찾아 자신의 나이만큼 성수를 붓는 일이다. 그리고 탑돌이가 끝나면 불탑이 보이는 조용한 공간을 찾아 기도를 하고, 커다란 종을 세 번 치고 합장을 한다. 그런 다음 그늘에서 동행자와 이야기를 한다.

그늘이 있는 공간은 불탑 주변의 법당이어도 상관없고, 종루도 상관없다. 시원한 곳이면 어디든 대화의 판을 벌이게 되는데, 이때 분명하게 지키는 것은 발의 방향을 부처님을 향해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어렸을 적부터 찾아왔던 사원이기에 사원에서의 생활에 조금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모니와 탄보데 사원(Thanboddhay Paya)의 연못을 청소하는 모습. 사원에 일이 있을 때는 마을사람 모두 나와서 일을 한다.

그런데 미얀마에서 사원이라고 모두 다 같은 사원은 아니다. 보통 불탑을 제디(Zedi)라 부르고, 불탑의 내부에 법당이 있는 사원을 파토(Patho)라고 한다. 대부분 제디와 파토의 관리주체는 그 사원이 있는 마을이 된다. 그래서 그곳에는 스님이 보이지 않는다. 가끔 사원에서 스님을 볼 수 있는데, 그 스님들 역시 방문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얀마에 그 많은 스님들은 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스님들이 머물며 수행하고 공부하는 곳을 ‘짜웅(Kyaung)’이라 부른다.

영국 식민지 시절을 거치면서 교육의 많은 부분을 학교가 담당하게 됐지만, 아직도 사원이 교육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학교의 역할까지 하는 짜웅은 고아원 · 양육원 역할까지 하기에 사원의 존재는 미얀마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불탑이 있는 사원이 많다. 때로는 불탑 주변으로 법당이 형성된 사원들이 많은데, 이곳은 미얀마 사람들의 예불 장소이자 위에서 말한 소통 · 약속 · 휴식의 장소가 된다.

라카인주 신쀼 의식. 꽃을 머리에 이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사원을 관리하려면 많은 경제력이 필요하기에 잘사는 마을일수록 불탑의 관리도 잘 이루어진다. 마을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할 때, 자기의 재산을 사원에 보시하기에 사원의 경제력은 생각보다 탄탄하다. 이러한 보시금은 또다시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분배된다. 또한 경비가 필요한 부분이 발생하면 별도의 사용목적이 적힌 보시함을 설치하고 보시를 받는다. 그래서 미얀마 사원에는 용도별로 다양한 보시함이 있다.

미얀마 가정에도 별도의 불단을 모시고 가장 먼저 일어나 예불하는 가정들이 많은데, 미얀마 사람들은 언제부터 어떻게 ‘삶의 불교, 불교의 삶’을 실천하게 되었을까? 미얀마에 불교가 완전하게 뿌리를 내린 때는 바간(Bagan, 1044~1287) 시대 때인 11세기경이지만, 그들은 바간 시대 이전부터 불교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 미얀마의 옛 전설에 그대로 녹아 있다.

사가잉 야다나싱기 수도원에서 단기출가 체험을 하는 어린이들이 공양을 하기 전 손을 씻고 있다.

부처님 성지 미얀마 곳곳에
佛鉢 봉안한 쉐다곤 황금사원

무엇보다도 미얀마인들은 그들이 석가모니와 동일민족이라고 믿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기 이전인 B.C. 9세기경, 샤카족의 왕이었던 아비라자(Abhiraja)가 서쪽으로 이동해 산을 넘은 후 에야와디 강의 상류에 ‘따가웅(Tagaung)’ 왕국을 건설했고, 그들과 토착민이 결합된 사람들이 미얀마인이라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미얀마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성지가 많이 남아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45년의 유행 시에 미얀마 서부의 라카인과 중부의 뜨리께티야 · 만달레이 등 미얀마의 여러 곳을 방문했다고 믿고 있으며, 방문한 곳까지 지정되어 있다. 

바간 민난투 마을에서 스님들이 줄지어 탁발을 하고 있다.

또한 미얀마의 상인 형제가 막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을 만나 불교에 귀의한 후 8개의 불발(佛鉢)을 받아 미얀마로 돌아온 후 양곤 땅에 모셨는데, 이곳이 지금의 ‘쉐다곤(Shwedagon)’ 사원이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쉐다곤은 지금 미얀마의 3대 보물 중 하나인데, 나머지 두 개도 모두 부처님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성물들이다. 그러다보니 미얀마 사람들은 생활 속의 불심으로 힘들 때나 즐거울 때는 물론이고, 이렇게 명절까지도 모두 사원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것이 당연시 된 것이다.

타니가 신쀼 의식을 거친 뒤 바로 사원에서 승려생활을 시작한 그 다음날 새벽, 타니의 어머니는 일찍 일어나 불단에 향을 피운 후 부엌으로 향한다. 많은 쌀로 밥을 지어 조심스럽게 그릇에 담아 거리로 나선다. 이미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아침 공양보시물을 가지고 마을길 앞에 길게 앉아있다. 공양보시물 중에는 어머니처럼 밥을 지어온 이들이 가장 많지만, 마을 사람들은 다양한 음식으로 공양물을 준비하였다. 타니의 어머니도 그 줄 맨 끝에 앉아 공양물을 앞에 놓고 합장을 하였다.

동쪽 산자락에서부터 여명이 밝아올 때쯤 저 멀리서 아침 탁발을 하러 스님들이 걸어오고 있다. 머리를 조금 숙이고 발우를 옆에 끼고 맨발로 천천히 걸어온다. 불자들은 스님의 인원수에 맞게 조금씩 밥을 나누어 발우에 넣어 드린다. 모든 스님이 지나간 뒤 타니의 어머니는 한참을 합장한 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스님의 행렬 맨 마지막에서 커다란 발우를 들고 행렬을 따르는 막내아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간 전경. 초록의 나무들 사이로 불탑들이 우뚝 솟아 있다.

김성철

사진작가. 서울예술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서 문화재 전공 석사과정을 마쳤다. 전국 장승과 솟대, 옛 절터 등 문화유산을 촬영 · 출판했다. 직지사 성보박물관 도록 작업을 했다. 현재 해외 문화유산 전문 출판사 ‘두르가’ 대표로 〈몽골 인 몽골리아〉, 〈골든 미얀마〉등 세계의 문화유산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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