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 봉축 특집(272호)

| 선종과 차의 융합

차와 불교의 융합에 단초를 연 이는 아마도 달마대사일 것이다. 그의 좌선 수행법이 6조 혜능(慧能, 638~713) 스님에게 이어진 후, 남선종(南禪宗) 승단에서는 차를 마시며 수행하는 사원의 규범이 점차 확립되었다.

차를 마시며 수행하는 승단의 풍토가 북방으로 확산된 것은 당나라 때이다. 이런 사실은 봉연(封演)의 〈봉씨견문록(封氏見聞錄)〉에 ‘개원(開元, 713~741) 연간에 태산의 영암사에 항마사가 있어서 선교가 크게 일어났다. 선 수행을 하는데 잠을 자지 않는 것에 힘썼고, 또한 저녁을 먹지 않았으나 차를 마시는 것은 허락하였다.’고 한 것에서 드러난다. 바로 차를 마시며 수행하는 승단의 일면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차가 수행승의 필수 음료인 동시에 선림(禪林)에서 수행력이 높은 수행승과 객승이 본질에 대한 의문을 묻고 답할 때 상대의 그릇된 논단(論斷)을 끊는 방편으로 차가 등장한 것은 조주선사(778~897)의 ‘끽다거(喫茶去)’가 대표적일 것이다. 이처럼 선림의 독특한 수행 풍토는 차가 불교문화에 깊숙하게 자리매김하는 일면을 보여준다.

특히 백장(百丈, 749~814) 선사가 선원의 규범을 성문화한 〈청규(淸規)〉를 만든 이후 차와 불교의 융합은 더욱 공고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수행자가 산문을 나갈 때, 필히 지참해야할 세 가지 물품 중의 하나가 차였다는 사실은 이를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승단에서는 차의 효능이 극대화된 제다법과 탕법이 더욱 개량될 수 있었으니, 이를 주도한 것은 수행승들이었다.

그렇다면 차가 선종의 수행 생활 속으로 침윤(浸潤)되어 독특한 불교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그 연유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미래 사회가 수용하고 활용할 차의 가치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달마대사는 남인도 출신이다. 중국으로 건너와 양무제와 만났다. 이때 달마는 수많은 선행을 쌓는 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하여 무제를 무색하게 하였다. 달마가 양나라를 떠나 소림사로 가게 된 인연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전해진다. 아무튼 소림사에서 9년 간 면벽 수행하던 달마에게 최대 장애는 졸음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차를 마셨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달마의 눈꺼풀이 차나무가 되었다는 설화는 졸음을 해결하기 위해 차를 마셨던 연유를 회화화한 것이라 하겠다. 물론 이 설화는 후인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설이 지배적이지만, 좌선수행 중 졸음이라는 장애요소를 차로 해결했던 상징성만은 지금도 유효한 차의 효능적 가치이다.

한편 차를 마시며 수행하는 풍토는 선종 승단의 수행생활 규범이다. 달마가 40여 년 동안 제자를 길렀던 남방의 조계산은 차의 주요 산지였다. 그러므로 차를 쉽게 얻을 수 있었던 지리적인 여건을 갖췄다. 선종에서 차를 마시며 수행을 원활하게 할 수 있었던 지리적 조건은 중요한 요소였다. 무엇보다 차가 심신을 맑게 하고 잠을 적게 한다는 점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이보다 앞서 머리를 맑게 하고 응체된 심신을 풀어주는 차의 효능을 양생에 응용한 것은 도가(道家)이다. 이들은 차를 마시며 불로장생을 꿈꿨다. 그러므로 차를 즐긴 이들이 남긴 고사(故事)에는 도가와 관련된 내용이 풍부하게 전해진다.

초의선사의 〈동다송(東茶頌)〉에 “우홍(虞洪)이 산에 들어가 차를 따다가 세 마리의 푸른 소를 끌고 오는 어떤 도인을 만났다. …… 나는 단구자(丹丘子)이다. 그대가 차를 잘 만들어 마신다고 하니 늘 은혜를 입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한 것이나, 노동(盧同)의 〈칠완다가(七碗茶歌)〉에 “여섯째 잔을 마시니 신령한 신선과 통하네.”라고 한 것은 차 문화의 저변을 연 계층이 도가였음을 상징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차 문화를 융성하게 발전시킨 것은 불교였다. 특히 불교와 차의 융합은 차 문화 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을 뿐 아니라 차가 정신음료로 격상되는 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 차와 미래 사회

차가 한국에 소개된 것은 대략 7세기 무렵이다. 이 무렵 새로운 수행법에 관심을 가졌던 구법승들은 당나라로 건너가 마조계(馬祖系)의 문하에서 수행법을 익혔다. 이미 승단의 수행생활에 침윤된 차는 선원 생활의 일부였기에 수행과 융합된 차 생활에 익숙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므로 이들이 귀국하면서 수행생활에 필요한 차와 다구를 가져왔으니 이는 새롭고 획기적인 신문화를 수용한 것이다.

초기에 유입된 차는 상류 문화로서 격조를 갖춘 최고의 문화로 인식됐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쉽게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화적 속성은 차 유입 초기에도 드러난 현상이었다. 바로 차를 마시며 수행하는 새로운 수행법을 익히고 돌아왔던 구법승들이었지만, 교종의 득세로 이들이 익혀 온 수행법을 확산시킬 수 있는 사회적인 여건이 마련되지 못했다. 따라서 이들이 들여온 신문화였던 차는 부처나 보살에게 올리는 공양물로 사용하는데 그쳤을 뿐이다.

〈삼국유사〉 ‘탑상(塔像)’편에 ‘태화 원년(647) 8월 5일에 형제가 오대산에 들어가 숨었다. …… 두 태자가 함께 배례하고 매일 이른 아침에 우통수(于筒水)를 길어다 차를 달여 일만진신(一萬眞身) 문수에게 공양하였다.’고 한 것이나, 경덕왕 때(764)에 충담이 중삼중구일(重三重九日)에 차를 달여 남산 삼화령의 미륵세존께 올렸던 것은 바로 이를 반증한다.

이런 문화현상은 과거의 역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래 사회로 향하는 현재에도 사람들은 새로움에 대한 수용 능력이 협소하다. 그러므로 과거의 역사는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만하다. 더구나 차는 심신의 응체를 풀어 주는 효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생태적인 환경, 긴장과 소통이 부재한 현실에 더욱 가치를 발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력 자체가 경쟁력이 될 수 없는 미래 사회에서는 아름다운 차의 향기로 심신이 안정시킬 여유로운 시대가 될 것이다. 비로소 인간은 노동으로부터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래 사회의 경쟁력은 소통과 유연성, 그리고 평화로운 사회를 구현할 지혜일 것이다. 바로 차가 지닌 긍정적 가치인 맑고 투명한 색과 순수한 차의 향기, 그리고 심폐를 시원하게 하는 차의 통기성(通氣性)이야말로 미래 사회에서 필요한 덕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차의 가치는 더욱더 미래 사회에서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과거 차를 무한한 소통의 매개물로 삼았던 사람들의 지혜는 미래사회에서도 유용할 것이다.

특히 불교문화의 중요한 축인 차는 명상이라는 미래 불교의 지향점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매개물이 될 것이다. 명상은 결국 참선 수행과 마음 수련이라는 의미에서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수행법이라는 점이 유사하다. 그렇다면 초기 선종의 좌선 수행법에 최대 장애 요소였던 졸음, 즉 수마를 해결하기 위해 차를 활용했던 지혜는 미래 불교에서 활용될 명상, 즉 나의 내면을 관찰하고 안정시켜 가는 과정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조력하는 매개물로서 차의 쓰임새는 더욱 커질 것이다.

더구나 따뜻하고 자비롭고, 성숙된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수행의 필요성은 미래 불교가 지향할 방향이다. 이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이 차인 셈이다. 실제 순진무구한 세계를 실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맑고 시원한 차일 것이다. 그러므로 옛 사람들은 차를 군자에 비유하였다.

그리고 차의 현묘함은 삼매(三昧)의 경지에서 현현되는 세계라 하였다. 그러므로 차의 고결한 격조는 미래 불교가 더욱 활용해야할 차의 세계인 것이다. 특히 차와 삼매는 동일한 경지라는 의미를, 추사 김정희는 ‘다삼매(茶三昧)’라 표현한 바 있다. 이는 미래 사회에서 차의 활용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담고 있다.

차는 맑아야 하고 따뜻해야 한다는 정의는 미래 불교를 더욱 값지게 할 토대가 될 것이다. 그만큼 불교가 응용할 차의 가치는 무한대로 확산될 수 있는 시대적 흐름이 도래하고 있는 셈이다. 

박동춘

(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성균관대 겸임교수.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1985년 응송 스님에게 ‘다도전수게’를 받았고, 2000년부터 동 연구소를 설립해 차에 대한 연구 및 교육을 하고 있다. 제2회 화봉학술문화상 · 제22회 행원문화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초의선사 차문화연구〉, 〈우리시대 동다송〉, 〈추사와 초의〉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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