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 2년 째 ‘순항’…전체 7권 중 4권 완성
올해 말 완성 목표, 외장본·인경이 관건

◇안준영 각수는 “글자를 새기는 게 아니라 얻는다.”고 말한다.

고려 대장경 판각 맥 이어

국토를 침입한 거란을 물리치기 위해 고려인들은 부처님의 힘을 빌린다. 대장경 판각의 시작이었다. 고려는 약 100년에 걸쳐 판각한 고려대장경(초조본) 목판을 대구 부인사에 보관했지만, 1232년 몽고군의 침입으로 전소되는 비운을 겪는다.

재조대장경 조성 이후 고려·조선시대에 각 경전과 고승 문집 등이 부분적으로 판각되긴 했지만, 초조대장경 인경본으로 복각(復刻)한 사례는 거의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천태종은 2016년부터 2019년 5월까지 3년 계획으로 고려대장경 초조본 〈첨품묘법연화경〉 판각을 시작했다.

이는 하나의 경전을 판각한다는 의미를 넘어 초조대장경 판각 정신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천태종은 〈첨품묘법연화경〉 판각불사를 회향한 뒤 순차적으로 초조본 고려대장경 판각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천태종은 종단 3대 지표의 하나로 ‘애국불교’를 내세울만큼 호국불교의 성격이 강한 종단으로, 고려가 국난극복을 위해 대장경을 조성했듯, 부처님의 힘으로 국가의 어려움을 타개하고자 하는 호국불교 정신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수년 간 불사 철저히 준비

천태종은 〈첨품묘법연화경〉 판각 불사를 수년간 준비해 왔다. 2015년 당시 총무원장 춘광 스님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구인사 개산 70주년을 맞아 〈첨품묘법연화경〉 판각 불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천태종은 고려대장경연구소와의 업무협약을 통해 고려 초조대장경 인경본을 다량 소유하고 있는 일본 남선사(南禪寺)와 교류하며 2016년 4월 완질로 남아있는 〈첨품묘법연화경〉의 데이터베이스 사용을 승인받고 판각 불사에 들어갔다.

천태종은 2016년 8월 13일 〈첨품묘법연화경〉 각성 불사 고불법회를 봉행, 본격적으로 판각 불사를 시작했음을 알렸다. 9월 9일에는 자문위원을 위촉했고, 11월 30일에는 ‘〈첨품묘법연화경〉 조성불사와 그 의의’를 주제로 한 학술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판각 불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다.

〈첨품묘법연화경〉 판각은 초조대장경과 재조대장경,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부모은중경〉 등 다수의 불경 목판을 복원한 대장경 판각 전문가인 안준영 대장경문화학교 교장이 맡았다. 안준영 각수(刻手)가 〈첨품묘법연화경〉을 판각하고 있는 곳은 경남 함양 이산책판박물관 인근의 작업장이다. 박물관 1층에는 교육장과 수장고가 있다.

수장고 안에는 완성한 〈첨품묘법연화경〉 목판이 보관돼 있다. 〈첨품묘법연화경〉은 권1 30장, 권2 33장, 권3 38장, 권4 36장, 권5 34장, 권6 36장, 권7 26장 등 총 7권 233장으로 이뤄져 있다. 안준영 각수는 보조 각수 2명과 함께 지금까지 1~4권 137장을 완성했다. 현재 5권을 판각 중이다.

판각 절차는 복잡하다. 우선 산벚나무처럼 재질이 단단한 목판용 나무를 구해 치목(治木) 과정을 거친다. 치목은 나무가 뒤틀리거나 상하지 않기 위해 건조하는 과정이다. 치목 과정이 끝나면 나무를 다듬어 경판 크기에 맞게 자른다.

경판이 완성되면 판각 작업에 들어간다. 먼저 경판에 검증을 거친 글을 쓴 판하본(版下本)을 붙인다. 판하본을 붙일 때는 5년 이상 숙성한 밀가루풀을 사용한다. 이 풀은 밀가루를 장독에 넣어 수년간 자연 숙성시켜 만드는데, 접착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잘 떼어진다.

판하본에 안준영 각수가 글자를 새기면, 두 명의 보조 각수는 경판의 바닥을 다듬은 뒤 사진 촬영을 한다. 보조 각수의 작업이 끝나면 인경을 한 뒤 안준영 각수가 검증하고, 이를 다시 천태종으로 보내 최종 확인 작업을 거친다. 경전 원본과 대조해 오탈자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다음 경판에 마구리와 장석을 달고 방자못으로 고정시킨다. 경판이 완성되면 인경 후 제본을 해 권자본(두루마리)으로 만든다.

안준영 각수는 “판각 불사는 2019년 5월 완료 예정이지만, 빠르면 올해 말에도 완성이 가능하다. 인경에 필요한 한지 수급 문제와 발문(跋文) 등 외장본 수량이 얼마나 될지에 따라 완성 시기가 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안준영 대장경문화학교 교장이 이산책판박물관 수장고에 보관해놓은 〈첨품묘법연화경〉 권1~4 경판을 소개하고 있다.
◇보조 각수 2명이 〈첨품묘법연화경〉을 인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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