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서 환수식

‘봉은사 시왕도’.

해외로 유출됐던 ‘봉은사 시왕도’가 원 봉안처인 서울 봉은사로 돌아왔다.

조계종(총무원장 설정 스님)은 5월 16일 오전 10시 30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1층 로비에서 해외로 유출됐던 ‘봉은사 시왕도(奉恩寺 十王圖)’ 환수 공개식을 진행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지건길)은 지난 4월 국외경매시장 모니터링 중 미국 경매시장에 나온 ‘시왕도’ 1점을 발견했다. 발견된 ‘시왕도’는 1폭에 2존의 대왕(제2ㆍ4 대왕)이 표현돼 있으며, 장황(粧䌙)과 화기(畵記) 부분이 절취돼 있었다. 이에 조계종은 동 시기로 추정되는 시왕도들을 비교 조사했다. 그 결과 이 불화가 18세기에 조성된 ‘봉은사 시왕도’ 4폭 중 1폭임이 확인됐다. ‘봉은사 시왕도’의 국외로의 유출 시기는 한국사회 혼란기였던 1950~60년대로 추정된다.

서울 봉은사(주지 원명 스님)와 조계종 문화부(부장 종민 스님), 문화재청(청장 김종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해당 성보의 정밀 조사 및 환수를 위해 환수추진단을 구성해 현지에 파견했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봉은사 시왕도’는 4월 24일(현지시간 오전 10시)에 미국에서 진행된 경매에서 낙찰 받았으며, 원래의 봉안처인 봉은사로 돌아왔다.

봉은사는 ‘봉은사 시왕도’ 환수공개식을 진행한 후 ‘시왕도’를 봉은사로 이운했으며, 오후 2시 귀환고불식을 봉행했다.

<이하 봉은사 시왕도 개요>

이번에 환수된 ‘봉은사 시왕도’는 4폭에 나누어 그려진 시왕도 중 1점이다. 화기가 절취돼 있으나, 화풍 상 18세기 후반 서울ㆍ경기 지역에서 활동했던 화승 인종(印宗)ㆍ영인(永印)ㆍ도준(道俊) 스님 등의 불화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불화의 크기, 구도, 형식, 양식 등으로 보아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봉은사 시왕도’ 2점 및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시왕도’ 1점과 일습으로 추정할 수 있다.

보통 시왕도의 경우 위에는 시왕이 판관과 사자, 옥졸 등을 거느리고 재판을 받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아래쪽에는 시왕이 주재하는 지옥에서 망자가 벌을 받는 장면이 각각 1폭 씩 분리돼 그려져 있다. 반면 ‘봉은사 시왕도’는 칸을 분리하지 않고 위에는 2존 혹은 3존의 대왕이 심판하는 모습을 나란히 그리고 아래쪽에는 각각의 지옥장면을 그리는 독특한 구도를 취하고 있다. 이런 구도는 우리나라에서는 ‘봉은사 시왕도’와 ‘화엄사 시왕도’(1862)에만 보이는 매우 독창적인 구도다.

이번에 환수된 ‘봉은사 시왕도’는 한 폭에 2존의 대왕(제2ㆍ4대왕)이 표현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소장 ‘시왕도’는 환수 성보와 동일한 형식으로 한 폭에 2존의 대왕(제1ㆍ3대왕)을 배치했다.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봉은사 시왕도’는 한 폭에 각각 3존의 대왕(제5ㆍ7ㆍ9대왕, 제6ㆍ8ㆍ10대왕)이 표현돼 있으며, 화기가 남아있어 이번 환수 성보의 원봉안처를 찾는 기준이 됐다.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봉은사 시왕도’의 화기에는 건륭 42년(1777)에 인종(印宗)ㆍ수밀(守密)ㆍ영인(永印)ㆍ도준(道俊)ㆍ상훈(尙訓) 스님 등 경기도 지역 화승들이 주축이 돼 ‘삼장보살도’, 2점의 ‘사자도’와 함께 봉은사에서 조성하였음이 기록돼 있다.

이번 미국 경매에서 제2ㆍ4대왕을 그린 시왕도가 환수됨으로써 1777년에 봉은사에서 조성된 4폭의 ‘시왕도’와 10존의 대왕이 반세기만에 국내에 온전히 갖추어지게 됐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