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는 ‘정보 홍수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내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만 열면 필요한 정보를 언제든 취합할 수 있고 내가 궁금하지 않은 일까지도 들을 수 있게 된 현실이다 보니 세상이 참 좁고 가까워졌다는 느낌입니다. 만일 정보를 계량화(計量化)한다면 실로 그 양의 방대함과 그 영향력 또한 엄청나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랄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전화를 하지 않더라도 지인들과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밴드 등 SNS를 통해 무한정 대화가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고 속이는 세상의 현상엔 변화가 없습니다. 정보가 부재한 과거에 속고 속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하지만 정보 홍수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에도 속고 속이는 일은 부지기수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11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통일에 대한 기대가 높아짐에 따라 이런 저런 수혜주(受惠株)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황당무계한 테마주까지 등장하면서 적지 않은 주식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치고 있다는 소식은 참으로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보 홍수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정보에 속는 이유는 다름 아닙니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누리려 하는 욕심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절제하지 못하는 인간의 심리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욕심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려 하는 자들이 정보를 왜곡하고 미래를 어설프게 예단합니다.

과학과 문명이 첨단시대를 걷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점집이 성행하고 있는 걸 보더라도 인간의 어긋난 욕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수능을 앞두고 자식이 어느 대학에 갈 수 있는지 점을 보거나,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의 인연까지도 무당에 물어보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혹세무민(惑世誣民)이란 이같은 인간의 어긋난 욕심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불운한 사건들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한없이 나약해지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사술(邪術)을 동원하는 이들의 농간에 넘어가는 것은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부처님 재세(在世) 당시에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초기경전인 〈상응부경전〉에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부처님이 나란다 마을의 파바리캄바라는 숲 속에 머물던 때의 일이다. 이웃마을의 촌장인 안반다카풋타가 부처님의 명성을 듣고 찾아와 물었다.

“부처님이시여! 서쪽에서 온 바라문들은 물병을 높이 쳐들든지, 화환을 달든지, 물에 들어가 목욕하든지, 화신(火神)에게 공양을 드리든지 함으로써 죽은 사람을 천상에 태어나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시는 성자라고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역시 그런 일을 하실 수 있습니까?”

부처님은 촌장의 말에 이렇게 반문하셨다.

“촌장이여, 내가 묻겠으니 생각나는대로 답하시오. 어떤 사람이 깊은 호수에 바위를 던졌다고 합시다. 그때 여러 사람이 몰려가서 ‘바위야, 떠올라라. 바위야, 떠올라라’하며 기도하면 과연 그 바위는 기도의 힘으로 떠오를 수 있겠소?”

촌장은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부처님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촌장이여, 여기에 남을 죽이고, 도둑질을 하고, 거짓말을 하는 따위, 온갖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죽었을 때, 또 여러 사람이 몰려와서 ‘이 사람을 천상에 태어나게 해주소서’하고 합장하며 기도한다면 과연 그 사람은 천상에 태어나게 되겠습니까?” 이 물음에 촌장은 역시 ‘아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대답하는 동안에 그를 가리고 있던 낡은 의식이 벗겨져 나가고 그의 마음에는 밝은 광명이 비쳐왔다. 그는 그 자리에서 부처님의 지혜와 덕을 찬탄하고 부처님께 귀의했다. 〈상응부경전〉 42-6

부처님은 촌장 안반다카풋다에게 현실적으로 증험(證驗)되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종교에서 신비를 찾으려는 잘못된 생각에 경각심을 일깨운 이러한 부처님의 설법은 경전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증험되는 것’이란 상식을 말하며 정도를 걷는 것을 뜻합니다.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란 없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智慧)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아니라 당대에 갈고 닦아 성취하는 노력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음에 빠지게 되고 헛된 욕심에 물들게 된다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부자들 중에서도 지혜로운 사람은 가난을 벗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처럼 노력하고 땀 흘린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이들이 일확천금을 노리거나 헛된 망상을 부릴 뿐, 설령 어쩌다 복권에 당첨됐다 하더라도 이를 지켜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정직한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요행을 기대했다간 패가망신 당하기 일쑤입니다. 정직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절대 잘못된 정보에 현혹되거나 이용당해 손해를 보는 일이 없습니다.

정보 홍수시대라 하지만 상식을 지키고 정도를 걸을 때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는 교훈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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