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 불교의 보은사상
가족사이 보은 실천하면
위기서도 가정 굳건

예전에는 가족이라고 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포함된 대가족이었다. 아직 결혼 전인 삼촌과 고모까지 함께 사는 집도 있어서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집에 살았다. 월남 가족인 우리집은 조부·조모는 안계셨지만 아버지는 동생 넷을 보살피셔야 해서 동생들을 결혼시키기 전까지는 함께 살았고 그 후에도 생활이 어려워진 작은집 사촌 형제들 한두 명이 우리집에서 살았던 기간이 꽤 길었다. 그래서 집안에는 항상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 나는 집에 오면 혼자이다. 이 변화가 어찌 나 혼자에게만 일어났으랴. 2015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인가구가 주된 가구 유형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에 따라 혼밥이니 혼술이니 하는, 혼자하는 생활 패턴이 우리 사회의 경제와 문화를 바꾸어가고 있다.

1인 가구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쪽방촌에 사는 독거노인이다. 사람들은 독거노인은 처음부터 그렇게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독거노인 가운데에는 한때 중산층으로 멋지게 살았던 분들이 많다. 예전에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다가 힘이 없어지면 일을 놓고 자식들의 봉양을 받으며 노년을 편안히 보냈다.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 사람들은 산업화 사회에서 큰 돈을 벌었지만 그것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노년기에 정작 자기 손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예전처럼 자식이 부모를 모시기 어려워진 사회 변화 속에서 독거노인으로 전락한 노인층은 온갖 회한을 가슴에 품고 하루 하루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비루한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불행한 사태가 OECD국가 가운데 노인자살율 1위라는 가슴 아픈 결과를 낳았다. 죽음조차 혼자 맞이하는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어떡하다 이 지경이 되었나 싶어 서글프다.

한국의 가족 관계가 효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전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마땅히 해야 할 의무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효는 대가족 시대의 풍습이고 가족 단위가 점점 축소되면서 효 정신도 희박해지고 있다. 효를 유교적 가족 관계에서 보면 가족 형태의 변화에 따른 결과라고 판단할 수 있지만 효를 불교의 보은사상으로 해석하면 효는 변해서는 안되는 인간의 본질이다.

보은은 은혜에 대한 보답인데 이 보은이야말로 인간이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은 타인에게 그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다. 보은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아낌없이 베풀면 내가 어려워졌을 때 그 사람에게 의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보은을 이어가게 한다.

가족 사이에 보은을 실천한다면 가정은 그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고 가족끼리 서로를 지켜주면서 가족을 버리는 패륜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늙으신 부모에게 보은하면 그로 인해 자신도 자녀에게 보은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우리의 부모님들을 독거노인으로 내몬 우리가 가족일까? 불자라면 적어도 부모님을 혼자 지내게 해서는 안된다. 불교는 보은 사상이라는 가장 안전하고 멋진 보험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가족을 위하여 헌신하고, 이웃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면서 보은이란 적금을 들면 우리의 노년은 외롭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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