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손끝에서 피어나는 마음(271호)

A군! 새 학기가 개강하고 첫 시간에 다시 만나서 매우 반가웠네.

‘선과 심리치유’ 수업에서 한 학기동안 함께 공부할 내용에 대해 먼저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질문을 받을 때, 자네는 심리치유가 무엇인지 질문하였지.

자네 또래들은 인간관계의 갈등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힘들어 하지 않나? 우리도 젊을 때 그랬고, 머리가 이렇게 희끗희끗해진 지금도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네. 심리치유는 누구나 속으로 간직하고 있는 인생의 숙제인 셈이지.

최근 뉴스에서 보니까 ‘방탄소년단’에 관한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더군. 벌써 다섯 곡이 유투브에서 2억 뷰를 돌파했다고 하고, 지난 연말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의 ‘베스트 소셜 뮤지션’으로 선정되어, 시상식에서 공연했다는 소식도 들었네. 자네도 같은 세대니까 잘 알고 있겠지?

방탄소년단이 기존의 K-Pop 그룹들을 뛰어넘어 전 세계 젊은이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그들의 음악을 찾아 들어보았네. 놀랍게도 이 그룹은 그들의 음악을 통해 ‘심리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더군.

그들은 노래 가사를 스스로 쓰고, 작곡과 프로듀싱에도 참여한다네.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내니까, 노래에 진정성이 깃들 수밖에 없지. 방탄소년단이 성공한 요인은 바로 젊은이들의 고민을 드러내고 공유하는 ‘사회적 메시지’인 것 같네. 그것이 국경을 넘어 동시대 젊은이들의 감동을 끌어내고 있는 것이지. 그래서 그 감동적인 메시지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집단적 동질성을 형성하고, 지금의 전 세계적인 팬덤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네.

그들의 이름 ‘방탄소년단’은 바로 기성세대의 억압과 강요로부터 자기네 세대의 가치를 지키고 싶다는 뜻을 담은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그들의 팬클럽 이름이 ‘아미(Army, 군대)’인 것도 우연이 아닌 것 같아.

방탄소년단의 메시지는 ‘누구나 감추고 있는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치유경험을 공유하자’는 것으로 보이네. 그런 음악을 들으면 집단적인 심리치유가 일어나게 마련이지. 아이돌의 생활도 알고 보면, 외부적으로 화려하면 할수록 내면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있는 법이야. 심리학자 융이 말한 것처럼, 얼굴에 페르소나(가면)를 쓰고 대중 앞에 나서지만, 갈채 뒤에는 그림자(내면의 우는 아이)가 있는 것이지.

이런 의미에서 방탄소년단의 한 멤버인 민윤기가 랩으로 부른 ‘마지막’을 함께 들어보지 않겠나? 그는 이 노래에서 3명의 분신을 말하고 있지. 먼저 본명인 ‘민윤기’로 불리는 자아가 있고, 화려한 아이돌인 ‘슈가(Suga)’가 있으며, 래퍼 ‘어그스트 디(Agust D)’가 있어. 민윤기는 슈가라는 페르소나로 활동하지만, 그의 뒤에는 어그스트 디라는 그림자가 버티고 있지. 이 노래는 방황하는 래퍼 어그스트 디가 지르는 고함 같이 들리네. 내면의 고통을 드러내는 것이 역설적으로 자신과 팬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신기한 일이야.

그는 이 랩에서 청소년기에 겪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와 갈등’ 그리고 ‘대인기피증과 자기혐오’를 솔직히 드러내지. 그리고 ‘자아인 민윤기를 죽이고, 나약한 자신을 숨기려 남에게 욕하며, 공연하던 날 사람들이 무서워 화장실에 숨고, 성공은 괴물이 되어 더 큰 부를 원하는’ 걸 지켜보지.

하지만 그는 용감하게 자신의 약점을 더욱 드러내지. ‘화장실 바닥에서 잠을 청하고, 배달 알바 중 사고로 박살난 어깨를 부여잡고 노래하는’ 등 온갖 고생을 다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자산이 되어 더욱 강한 인간이 되었다고 선언하지. 그 덕분에 ‘도쿄돔에서 공연하고 자신의 손짓에 수만 명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실’을 전하며 사람들에게 자신은 이제 괜찮다고, 이겨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지.

자네는 심리치유가 어떤 것인지 질문했지? 이 노래가 그 답이네. 우리 속에 숨어서 떨고 있는 우는 아이를 더 이상 억압하지 말고 용감하게 드러내어 온전히 껴안는 일, 더 이상 성공이라는 괴물을 좇아 내면의 상처를 부정하고 외면하지 않는 일.

마지막으로, 아마 자네도 보았을 월트 디즈니의 영화 ‘미녀와 야수’의 메시지를 들려주고 싶네. 영화의 첫 장면에 왕자가 야수로 변하는 대목이 나오지. 왕자는 자신의 화려한 파티에 못생긴 노파가 들어오는 것을 거절해. 그러자 그 노파는 마법사로 변해 왕자를 야수로 만들지. 너도 사람들에게 거절당하는 고통을 맛보라고. 우리가 내면의 그림자(노파)를 거절하면, 그림자는 우리를 야수로 만든다는 것이야. 따라서 심리치유는 ‘미녀의 사랑’으로서, 사랑이 야수를 다시 왕자로 회복시키는 약이지.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 곧 사랑이며, 그 사랑은 야수를 왕자로 돌이키는 묘약이네.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 젊은이들의 감동을 이끌어내는 비결은 아마도 여기에 있지 않겠나.

김홍근

동국대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나와 스페인 마드리드대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성천문화재단에서 20년 간 동서인문고전아카데미를 운영했다. 현재 한국간화선연구소 책임연구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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