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만의 이달의 찬불가(271호)

요사 벽면에 적힌 글귀에
가락 덧씌워 태어난 명곡

음악은 목소리나 악기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예술이다. 특히 교향곡 · 협주곡 · 기악곡 등 연주곡과 달리 가사에 곡조를 붙여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희로애락이 담긴 하나의 이야기다. 노래만큼 쉽고 편하게 감정과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장르가 또 어디에 있을까 싶다.

그렇기에 오늘날 찬불가의 의미와 중요성은 더욱 크다. 거창하게 불교음악의 역사와 필요성, 찬불가의 나아갈 길 등을 설명하지 않더라도 찬불가 한 곡 한 곡을 통해 불자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실로 대단하다.

사찰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초하루 등 여러 법회에서 불리는 찬불가, 더욱이 합창단이 있는 사찰에서의 음성공양은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에게 향기로운 법문 한 자락에 버금하는 감동을 선사한다. 이런 향기법문, 찬불가의 명곡(名曲) 중의 한 곡이 ‘얼마나 닦아야 거울 마음 닮을까’이다.

얼마나 울어야 마음이 희어지고
얼마나 울어야 가슴이 열릴까
얼마나 사무쳐야 하늘이 열리고
얼마나 미워해야 사랑이 싹이 트나

조영근 선생(1940~)은 불교음악계의 큰 어른이다. 한마디로 찬불가의 살아있는 레전드로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다. 일찍이 작곡가이며, 연주자로 대중음악계에서 활동한 조영근 선생은 뜻하는 바가 있어 불교음악에 귀의했다. 어린이 찬불가의 제작과 보급은 물론 불교합창단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으며, 지금까지도 왕성한 활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자랑스러운 불교음악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노래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보니 한 곡의 노래가 만들어지기까지 재미난 사연들이 많다. 이 곡 역시 소중한 인연이 숨어 있다. 한 곡의 노래가 완성되기까지는 다양한 과정을 거치는데, 무엇보다 작사가와 작곡가의 합(合)이 중요하다. 감정의 교류라고 할까? 공동작업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인데, 이 곡의 경우는 매우 특이하게도 ‘골방 벽면’이 이런 과정을 대신했다.

그 인연은 이렇다. 30년이 훨씬 지난 이야기다. 1980년대 중후반 불교합창단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여러 사찰에서 창단 열기가 치솟을 때다. 찬불가 보급과 합창단 창단을 위해 애를 쓰던 조영근 선생이 강원도 동해시의 한 사찰을 방문했다.

조 선생에게 전해들은 내용에 따르면, 그 사찰은 동해 삼화사다. 평소 지역사회 포교에 힘을 쓰시던 주지 스님은 불교합창단 창단의 원력을 세우시고, 조 선생을 초대했다. 그리고 합창단 지휘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두 분은 금세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당시는 교통수단이 여의치 않은 시절이라 조 선생은 절에서 하루밤을 묵게 되었다.

주지 스님 배려로 절에서 저녁공양을 하고 호젓한 요사(寮舍)에 들어가 하룻밤 머무는데, 밤이 깊어갈수록 이 생각 저 생각에 쉬이 잠이 오지를 않았다. 스님의 부탁에 합창단 지휘를 맡기는 했지만 서울에서 동해시까지 매주 왕복을 하는 문제는 만만치 않았다. 그 외에도 불교음악과 찬불가 보급을 위해 전국을 누비던 때라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무심코 두리번거리다 벽면에 쓰인 문구 한 구절에 눈길을 붙잡았다. 벽면에 써진 글은 바로 ‘얼마나 닦아야 거울 마음 닮을까’였다. 운명 같은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얼마나 울어야’로 시작하는 글귀는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았다. 언제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었지만, 또 누구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마음 한 편에서 시작된 떨림의 파동에 계속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벌떡 일어나 앉아 다시 몇 번이고 읽어 내려갔다. 조 선생은 결국 메모지를 꺼내 옮겨 적었고, 작자미상의 이 글귀를 가슴에 품은 채 몇 달 며칠을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글귀를 노랫말 삼아 간절한 신심을 덧씌운 명곡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노랫말의 주인공은 백방으로 수소문해도 찾을 길이 없었다. 조 선생은 일단 노래를 발표했고, 이 노래는 불교합창단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퍼져나가 많은 불자님들의 애창곡이 되었다. 이런 사연은 이 노래가 널리 퍼지면서 노랫말의 주인공 대우 스님과의 조우로 이어진다. 두 분의 진중한 인연은 거듭 발전해 많은 찬불가를 창작하는 아름다운 인연으로 이어진다. 노래가 발표된 지 30여 년. 아직도 여기저기 울려 퍼지는 불교합창단의 단골 레퍼토리 ‘얼마나 닦아야 거울마음 닮을까’는 시대를 넘어서는 명곡이요, 노래법문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중생들은 얼마나 닦아야 거울 마음을 닮을까?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종만

싱어송 라이터로 노래와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1995년 찬불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좋은 벗 풍경소리’를 창단해 현재까지 찬불가 제작 및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불교음악인이다. 현재 좋은 벗 풍경소리 대표, 뉴트리팝스 오케스트라 음악감독과 지휘, 조계사 회화나무 합창단을 지휘하고 있다. 대표곡 ‘음악이 생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장돌뱅이’, ‘오늘은 좋은날’, ‘길 떠나자’, ‘좋은 인연’, ‘너와 나’를 비롯해 많은 곡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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