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생각하는 두뇌
무의식 통해 쉬게 하면
지친 몸과 마음 치유돼

꿈은 강하고 아름답다. 무게를 딛고 오르는 비상의 힘이 꿈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상승의 꿈은 현실의 무더기를 주렁주렁 매달고도 꽃을 피우는 이른 봄꽃의 강한 의지와 같다. 봄 담장에 기댄 산수유가 지난 계절의 붉은 열매를 매단 채 노란 몽환의 꽃망울을 터트려 지상의 아름다움을 직조한다.

아련함 속에는 애틋함이 있다.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봄볕의 망중한 속 버들강아지와 담벼락에 늘어진 영춘화의 꽃줄기, 길고양이의 느린 걸음에서 은근한 여백의 미학이 전해진다. 여유와 안정, 쉼의 여백은 반전의 메타포와 같다.

‘블랙 스완(black swan)’이론은 전혀 예상할 없던 일이 실제로 나타난 경우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는 순환에 대한 반전과 전환의 의미가 담겼다. 미학에서 키치(kitsch)적 상상력과도 통하며, 시공간을 넘어서 하나의 원인이 또 다른 결과를 일으키며 사소한 사건이 나중에 엄청난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의 의미와도 상통한다. 전환과 반전은 인식의 변화를 가져온다. ‘초연결 사회’라고 불리는 4차 산업혁명시대로 이동하며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 3D,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의 융합과 연결은 새로운 창조성을 암시한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사람의 노동을 대신해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지만, ‘블랙 스완’의 효과를 일으켜서 새로운 활동을 창출할 수 있다는 낙관도 존재한다. 성장을 대신해서 나눔과 공존이 부각된다. 우리는 그동안 행위와 소유에 의해 가치를 평가했다. 무엇을 소유하는지, 어떤 직업과 지위를 갖는지에 따라서 서로를 평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해부터 한 이벤트 기획사의 ‘멍 때리기 대회’가 세간의 이목을 모았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한낮 볕 아래에서 두 시간여 동안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쉬는 놀이이다. 멍한 상태는 명상과 다르다. 명상이 집중하는 정신 훈련의 과정이라면 멍 때리기는 목적 없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한다. 무의식의 자연스런 치유과정일 수 있다.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난다.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뇌 영역인 배내측전전두피질에 존재하는 ‘디폴트모드 네트워크(default-mode network)’를 발견해, 끊임없이 일어나는 마음의 방황을 조명했다. 불안과 우울, 감정에 압도당하거나 정신적 상흔으로 자신의 삶을 끔찍하게 여기는 환상에 머물러있는 사람 등 생각의 질주를 지금 현재에 머물도록 안내한다. 모든 치유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비난을 놓아버리고 자기비난과 자기혐오, 걱정과 불안, 슬픔 등 부정적인 감정을 놓는 욕망의 방하착(放下着)에서 시작된다. 방하착은 ‘온갖 번뇌, 갈등, 집착, 원망을 비우고. 마음을 내려놓아라.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그 생각조차 내려놓으라.’는 뜻이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과학적 발견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사과나무 아래에서 쉼의 여백을 열었기 때문이다. 아르키메데스는 욕조에 몸을 담그며 휴식하는 속에서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아하! (유레카)’라며 통찰력을 얻었다. 통찰력은 강박에서 벗어나 인식을 전환하는 데서 꽃핀다.

얼마 후면 부처님오신날이다. 욕망과 윤회의 환(幻)을 벗어던진 대자유인의 꿈이 눈부시다. 눈부신 꿈은 새싹을 상징한다. 언 땅을 뚫고 나온 보리의 새순을 밟으며 무심히 봄볕 만행을 결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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