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란 같은 공감대 지니고
마음 터놓을 수 있는 상대
친구와 같다면 최고의 관계

우리는 나와 연결된 무수한 이들과 함께 살아간다. 부모와 자식, 형제와 벗, 부부와 연인, 스승과 제자, 상사와 동료, 선배와 후배. 나를 둘러싼 주변에 무수한 이들이 여러 갈래의 인간관계로 포진해있다. 나이나 지위에 있어서 동등한 사이보다는 상하관계가 더욱 많게 마련이다.

그런데 상하관계의 누군가를 떠올릴 때 ‘친구 같은 사이’로 소개하고 싶은 이가 있다. 예의범절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라면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대개 그 사람에 대한 찬사로 쓰는 말이다. 친구란, 나와 같은 공감대를 지녔기에 가장 이해의 폭이 넓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상대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인간관계로 맺어졌든 친구와 같을 수 있다면 최고의 관계이다.

명나라의 사상가 이탁오(李卓吾)는 “친구가 될 수 없는 자는 스승이 될 수 없고, 스승이 될 수 없는 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가르치고 배우는 사제관계란 전통적으로 가장 엄격한 위계질서가 필요한 영역이라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스승과 제자라 하더라도 사제(師弟)보다는 사우(師友)가 될 때 참된 인간관계가 이루어지고, 그 위에서 참된 교육 또한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친구 같은 사이를 지향한다는 말은, 인간관계에서 ‘입장의 동일함’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뜻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부모자식 간에도 아버지는 아버지의 말만 하고, 아들은 아들의 말만 한다. 상사가 하는 말은 으레 정해져 있고, 부하의 대응 또한 그러하다. ‘입장의 차이’가 소통의 부재를 가져오고, 서로 평행선을 달리다가 관계의 단절을 불러온다.

우리는 억울하거나 답답할 때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는 말을 하게 된다. 입장(立場)이란 말 그대로 ‘서 있는[立] 곳[場]’이어서 처해 있는 형편과 위치를 말한다. 어떤 사람을 비난하기 전에 ‘만약 내가 저 상황에 놓여 있다면’ 하고 생각해보면, 마주볼 때 미처 생각지 못했던 변수들이 떠오르면서 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신영복 선생은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고 했다. 동정(同情)이란 ‘정(情)이 같다(同)’는 뜻이다. 그런데 정이 같지 않고 처지가 같지 않은 이의 동정은 참된 도움이 되지 못한다. 물질적으로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자신이 동정 받는 처지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하여 상심이 되기도 한다.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조차도 ‘입장의 동일함’이 가장 소중하다는 뜻이다. 그러한 마음으로 다가서면 그 상황에 맞는 방법은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을 나눠본 적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글 때문에 감동을 받곤 한다. 아득한 과거사람들로 인해 웃고 울기도 한다. 글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그 사람이 남긴 흔적을 매개로 마음이 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로의 감정을 가장 많이 접하는 가까운 이와 마음이 통하지 않는다고 괴로워한다. 어쩌면 친구같은 ‘입장의 동일함’이 빠져있고, 가까울수록 이해하려는 마음보다 이해받으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 아닐까.

한 해의 시작은 정월이지만 새봄과 함께 우리네 삶도 본격적으로 깨어난다.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는가하면, 모든 만남 또한 새롭게 시작될 수 있다. 예측할 수 없는 하루하루가 펼쳐져 있으니 인생은 참으로 살만한 것이고, ‘관계’는 그것을 좌우하는 가장 놀라운 변수이다. 그가 누구이든 참된 벗과 같은 관계로 나란히 서서 더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