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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전)황복사지서 대규모 유구 발견

통일신라시대 대석단ㆍ십이지신상 기단 확인
금동입불상ㆍ보살입상 등 유물 1천여 점도

발굴 조사지역 전경. <사진=문화재청>

왕실사찰이었던 경주 황복사(皇福寺)로 추정되는 사찰 터에서 통일신라시대 대석단(大石壇)ㆍ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 기단 건물지와 회랑(回廊, 지붕이 있는 긴 복도) 건물지가 발견됐다. 현재까지 경주지역에서 확인되지 않은 가람배치여서 주목된다.

성림문화재연구원(원장 박광열, 이하 연구원)은 경주 낭산 일원(사적 제163호)에서 발굴조사를 진행 중 신라 왕실사원의 규모를 짐작케하는 대석단 기단, 십이지신상 기단, 회랑 등의 건물지를 확인하고, 금동입불상, 보살입상 7점을 비롯한 1,000여 점의 유물을 발구했다고 1월 31일 밝혔다.

연구원은 2017년 8월부터 (전)황복사 터의 삼층석탑에서 동쪽으로 약 30m 떨어진 경작지(4,670㎡)를 대상으로 2차 발굴을 시작, 통일신라시대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 대석단 기단 건물지와 부속 건물지, 회랑 터, 담장 터, 배수로, 도로, 연못 등 신라왕실 사찰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규모의 유구를 확인했다.

발견된 유구 중 주목되는 건물지는 대석단 기단 건물지다. 서쪽의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에 덧붙여 조성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동ㆍ남쪽 면에는 돌을 다듬은 장대석(長臺石)을, 북쪽 면에는 자연석을 쌓아 약 60m에 이르는 대석단을 구축한 후 전면 중앙부 북쪽에 돌계단을 설치했다. 대석단 기단 건물지는 내부를 회랑으로 돌린 독특한 구조인데, 이는 현재까지 경주지역에서는 확인된 바 없는 가람배치 방식이다. 연구원은 이같은 가람배치 형식을 감안, 이 대석단 건물지에 특수한 용도의 건물이나 (전)황복사지의 중심 전각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는 묘(卯, 토끼), 사(巳, 뱀), 오(午, 말), 미(未, 양) 등 네 동물이 조각된 석재가 불규칙한 간격으로 놓여 있으며, 대석단 건물지와 함께 (전)황복사지의 중요 전각지로 보고 있다. 이 십이지신상의 도상(圖像)은 김유신장군묘와 헌덕왕릉(809~826)의 십이지신상보다 앞서며, 제작 연대는 8세기 중후반으로 추정한다.

이밖에 출토된 1,000여 점이 넘은 유물의 대부분은 토기와 기와다. 7∼9세기 경의 장식이 화려한 신장상 화상석, 치미, 기와 등을 통해 당시 격조 높은 건축물이 들어서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연구원은 금동불입상과 금동보살입상 등 7점의 불상은 (전)황복사지가 7~10세기까지 신라 왕실사원으로 유지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황복사는 654년(진덕여왕 8년)에 의상(義湘)대사(625~702)가 29세에 출가한 사찰이다. 1942년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을 해체 수리할 때 나온 황복사탑 사리함(舍利函)에서 확인된 명문 ‘종묘성령선원가람(宗廟聖靈禪院伽藍)’을 통해 신라 왕실의 종묘적 기능을 한 왕실사원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삼층석탑의 해체수리 과정에서 금제여래입상(국보 제79호), 금제여래좌상(국보 제80호)이 출토돼 주목을 받았다.

한편 문화재청은 (전)황복사지의 실체 규명과 유적의 보존정비를 위해 2016년 6월부터 2017년 4월까지 경주시 구황동 100번지 일대의 과수원과 경작지(4,628㎡)를 대상으로 1차 발굴을 진행, 효성왕(재위 737~742)을 위한 미완성 왕릉과 통일신라시대 건물지, 도로 등을 확인한 바 있다.

대석단 건물지 석축 세부. <사진=문화재청>
12지 건물지 및 방형 연못 내부 출토 금동입불상 및 보살상. <사진=문화재청>
십이지 중 토끼. <사진=문화재청>
방형 연못. <사진=문화재청>
조사지역 출토 유물. <사진=문화재청>
조사지역 출토 유물. <사진=문화재청>
발굴 모습. <사진=문화재청>

 

이강식 기자  lks971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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