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불교인의 삶과 신앙(270호)

가난하지만 행복하다고 믿는
부탄인의 만년설 닮은 순백의 미소
 

부탄 최고의 성지로 불리는 탁상 곰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국민들이 산다는 부탄. 국민들 대부분이 불교를 신앙한다는 부탄. 불교국가인 부탄 국민들은 정말 행복할까?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부탄이란 말은 정말 사실일까? 그게 궁금해서 부탄으로 떠났다.

부탄의 정식 명칭은 부탄왕국이다. 부탄은 입헌군주국으로, 국왕은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다. 부탄의 면적은 38,394㎢이며 한반도의 약 1/6이다. 북쪽으로 중국 티베트, 나머지는 인도로 둘러싸인 바다와 접하지 않은 내륙국이다. 북부 고산지대는 만년설에 덮인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이다. 중간지대는 기후가 온화하고 농경에 적합해 부탄 인구의 대다수가 거주하고 있다.

2012년 기준으로 부탄의 인구는 71만 6896명이며, 수도는 팀푸로 해발 2,320m에 자리 잡고 있다. 부탄의 공식어는 종카어이며, 네팔어와 영어가 통용된다. 그리고 부탄 국민의 75%가 둑빠 라마교를 신봉한다. 부탄의 국가수반은 ‘용왕’(龍王)이라는 의미의 ‘드룩 잘포’이다. 종교의 최고 권위자는 제켄포라고 부르는 승왕으로 자문을 담당하는 왕의 최측근이다.

분탕 한 사원 축제에서 가파른 언덕위에서 휴식을 취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승려들.

부탄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은 부탄의 유일한 국제공항인 파로 공항이다. 부처님이나 승려 라마보다도 국왕을 더 존경한다는 태국과 비슷한 느낌으로 왕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 용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국왕. 우리 신라시대의 전륜성왕을 칭한 진흥왕 등과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다. 불보살과 동일시되는 라마의 지위의 최정상에 승왕을 두고, 그와 동등하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더욱 높은 용왕의 존재 자체가 특이하다. 신정국가의 왕으로서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북한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부탄에서 만난 사람들은 입만 열면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그 모습이 어색했다. 그 어색함이 여행 내내 필자를 혼란스럽게 했다. 점심이 없어서 물로 배를 채우면서도 부탄 정부가 말하듯이 행복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며 힘없는 얼굴로 자신은 행복하다고 한다. 어쩌면 부탄 인들은 정부가 홍보하는 행복마케팅에 세뇌된 것은 아닐까, 주체사상으로 세뇌된 북한주민보다도 더 불행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다른 점은 부탄 인들의 삶의 중심엔 1인 독재체제가 아닌, 자비로운 부처님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동부 부탄 쵸르덴 코라에서는 매년 2월 성스러운 탑돌이 행사가 열린다. 탑돌이 후에는 법회가 진행된다. (사진=김성철)

파로 공항에서 수도인 팀푸를 구경하고 유명한 계곡인 트롱사를 지나 동쪽으로 가다보면 마치 스위스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분탕’이라는 곳이 있다. 중동부 지역의 문화 ·정치의 중심지로 부탄에서 가장 일찍부터 불교문화가 자리잡은 지역이다. 부탄 불교 사상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인 뻬마린빠의 출신지로 무수한 불교 성지와 사찰이 존재하고 있다.

고속도로라 불리는 비포장도로가 포함된 꼬불꼬불한 길을 1박2일 이상 달려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중간에 포장공사와 산사태 등에 의한 보수공사로 일방통행이 많아 길은 더 멀게 느껴진다. 분탕지역은 한랭한 기후로 벼농사가 정착하지 않고 메밀과 보리 만들기, 야크와 소의 방목 등 목축이 중심인 곳이다.

분탕사원의 축제에서 부탄인들이 부탄의 전통춤인 ‘참’을 추고 있다.

유목민들의 일상은 고달프기 짝이 없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며 가는 고난의 길. 그런 역경 속에서도 거꾸로 부처님에 대한 신앙은 더욱 깊어만 간다. 작은 함에 부처님과 불교 경전 등을 넣고 호신불로 삼고 있다. 이동시에는 목에 매거나 대부분 소중한 상자에 넣어 모시고 다닌다. 일상 가운데 틈틈이 깨끗한 곳에 내어 모시고 기도도 드리고 예경도 드린다. 모든 일상을 그렇게 부처님과 함께 한다.

분탕사원의 축제에서 신도들이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있다.

가끔 산이나 들에 핀 아름다운 꽃을 조심스럽게 가지고 온다. 웬만해서는 꺾지 않지만 부처님께 올리겠다는 선한 의도로 꽃을 모시듯 가져와서 불상 앞에 올린다. 불당이나 불단이 따로 없기에 호신불함 앞에 모시고 짧게 기도를 하고 식사를 시작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도시에 나간 기회에 구하거나 린포체나 라마에게 어렵게 받은 향이 있으면 잠시 피우면서 하루를 무사히 마치게 해준 감사함을 부처님께 전한다. 부처님의 가피를 구하는 간절한 기도 가운데 일상화된 의례 가운데 향(香) · 등(燈) · 꽃[花] ·  차[茶] · 쌀[米] · 과일[果]의 여섯 가지를 불전에 공양하는 육법공양(六法供養)을 볼 수 있다.

부탄의 한 사원에 있는 사천왕도.

유목민들은 항상 이동한다. 계절별로 움직이는 것이 보통이지만, 야크나 소, 양, 염소 등이 먹는 풀이 사라지면 부득이하게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그런 환경에서 유목민들은 아이들의 교육이 걱정이다. 문맹률이 53%나 되는 부탄은 국토의 72.5%가 산림지역이다. 이 지역에 사는 어린이들은 교육의 혜택을 거의 받을 수가 없다.

중동부 지역의 중심도시인 분탕의 가정집에는 친척 아이들이 많이 모여 함께 살고 있다. 유목민들의 자녀로 아는 가족, 친척, 친지들의 집에 맡겨져 산다. 우리 70년대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어려운 살림에 아이들에게 잘 먹고 좋은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 아이를 맡기던 우리네 부모님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분탕의 가정집들은 아이들에게 학교에 다니게 하는 한편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가사를 돕게 한다. 물론 월급은 주지 않는다. 대신 맡은 아이의 부모로부터 가끔 야크 치즈나 기타 필요한 물품을 선물로 받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네 70년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나라가 부탄이다. 그렇게 입양 비슷하게 된 아이들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일을 시작한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놀랍게도 정한수 공양이다. 원래 불교 신자들은 육법공양 중 하나인 차공양을 올리기도 하고 티베트 불교에서는 일곱 개의 잔에 물을 담아 올리기도 한다. 가난한 아이는 자신이 가진 작은 잔 하나에 감로수와 같이 깨끗한 물을 담아 부엌 한 곳에 모셔둔 불상 앞에 올린다. 어리고 가난한 아이조차도 일상의 시작과 끝은 그렇게 부처님이 항상 같이 한다.

분탕사원 축제에서 린포체가 고개를 숙인 불자들을 축복해주고 있다.

불교국가인 부탄에서도 ‘승려’의 신분은 매우 높다. 승왕도 있는 나라고 각 파마다 법왕이 있다. 그런 린포체가 아닌 라마만 되어도 보시와 존경을 받는 신분이 된다. 그런 이유로 가난한 농부나 유목민은 자식 특히 어린 아들 가운데 하나를 사원에 데려간다. 예비 출가를 하고 평생 절에서 굶지 않게 먹고 살게 한다. 장성하여 출가한 승려는 부모를 비롯한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당연하다. 가족을 버리고 출가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출가한다. 대부분의 스님들이 그런 이유로 어렸을 때 출가하여 ‘동승’이 된다.

법보시 즉 불법을 속세 즉 사바세계에 널리 퍼지게 한다면 그보다 더 수승한 보시는 없을 것이다. 그대로가 선한 업이 되는 불교 경전을 한번 읽는 공덕은 부탄 인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수행법이 아닐 수 없다. 삶이 수행이며, 종교로서의 불교 신앙이 한결같은 삶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은둔의 땅, 샹그릴라 부탄. 그 나라 가난한 사람들은 염주를 돌리는 손 이외에 또 다른 한 손에는 경전을 넣은 경통(經筒)인 마니차를 움켜지고 있다. 마니차 속에 들어 있는 경전을 돌리면서 선한 공덕을 쌓기를 부지런히 하고 있는 셈이다.

마니차를 돌리고 있는 부탄의 불교신자.부탄 불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살아서 효도를 다 못하거나 사랑하지 못한 안타까움과 아쉬움 그리고 슬픔을 표현하는 수행법으로써 망자를 추모하고, 축복을 기원하는 깃발인 ‘마니달’을 단다. 추도를 위한 흰 깃발로 흰색 천에 ‘옴마니빼메훔’ 육자진언을 인쇄한 것이다. 주로 49재가 끝나면 강이 보이는 높은 언덕이나 고개위에 108개를 설치한다. 망자가 가는 극락왕생의 길에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기원하는 이 깃발은 부탄의 특별한 신앙형태이다. 경전에 적힌 부처님 말씀이 바람에 타고 멀리 퍼지고 강으로 흘러가 더 널리 퍼지라는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

불화를 그리는 장인들. 예전에는 스님들이 불화를 그렸다. (사진=김성철)

이처럼 부탄의 전국을 순례하다 보면 곳곳에서 다양한 깃발을 만나게 된다. 부탄은 깃발 아니 바람의 나라가 아닐 수 없다. 부처님 말씀이 더욱 퍼지라는 뜻과 함께 사악하고 나쁜 기운이 다가오는 것을 방지하는 ‘파사현정’의 목적으로도 쓰인다. 이런 깃발을 보통 룽다(Lungdhar)라고 한다.

부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08개의 마니달.

룽다는 타르쵸라고도 하고 한자로 풍마(風馬)라고 한다. ‘바람의 말’, 참으로 멋진 말이다. 룽다가 펄럭일 때의 모습이 모진 바람을 향해서도 거침없이 앞발을 들고 선 천마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부처님의 경전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찰에 가서 기와에 쓰듯이 티베트 사람들은 소원을 적어 가족의 무병장수와 건강, 무사한 귀가 등을 빈다. 법 보시의 공덕을 가족들의 안녕으로 바꿔 달라고 비는 것이다.

밀교가 횡행했던 고려시대 후기의 팔관회와 연등제처럼, 체츄라 불리는 부탄의 불교 축제에는 수천 수만 명을 넘어선 인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수도인 팀푸의 종에 집결한 수만을 헤아리는 국민들은 모두 불교신자다. 신도들의 손에 들린 염주와 마니차야 말로 부처님을 향한 신심의 결정판이 아닐 수 없다.

새벽부터 나와야 하기에 모두들 전날부터 정성스레 도시락을 싸고, 새벽에 데운 수프 등을 보온통에 들고 나온다. 휴식이나 점심시간에 가족단위로 모여 출가한 가족 승려와 함께 식사를 하는 광경은 할머니의 신앙이 딸이나 며느리를 넘어 손자 손녀들의 신앙으로 전승되며 출가 가족이 가족들에게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주는 법의 대 물리기 등 ‘전등(傳燈)’의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 불교가 잃어버린 모습이지만, 불교의 미래를 위해 우리네 불자들의 본받아야 할 전승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행복을 찾으러 굳이 부탄에 갈 필요는 없을 듯하다. 부탄 정부가 말하고 당신이 착각할 수 있는 ‘부탄국민이 행복하다’는 말은 돈 많은 관광객을 끌기 위한 마케팅에 불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야 한다면, 그들이 행복하다고 보지 말고, 대신 힘들고 가난한 가운데서도 염주를 들고 마니차를 돌리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 부탄 불자들의 신심과 미소를 보면 될 듯하다.

팀푸에서 분탕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도촐라고개의 불탑들.

하도겸

시사위크 논설위원. 사단법인 나마스떼코리아 봉사단장과 불교닷컴 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 공저 · 공역 · 공편으로 〈나마스떼 초보 네팔어 회화〉, 〈티베트어기초문법〉, 〈일본신사에 모셔진 한국의 신〉, 〈동아시아의 종교와 문화〉, 〈동아시아 국제관계사〉, 〈동아시아 문화의 통섭과 역동성〉 등이 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