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의 눈(270호)

 ‘생활의 모범, 그 자체가 선교’란 인식

가톨릭 신자들에게 가장 좋은 선교방법에 대해 물으면 ‘좋은 표양(表樣)’이라는 답을 들을 확률이 높다. 이때 ‘좋은 표양’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모범을 보인다는 뜻이다. 종교인으로서 좋은 생활의 모범을 보이면 그 자체로 선교가 된다는 생각이라 하겠다.

이런 생각의 일면은 신자 대상 의식조사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2016년 가톨릭신문사에서 창간 90주년 기념으로 실시한 ‘가톨릭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이라는 전국 조사결과를 들 수 있다. 이 조사에서 ‘최근 1년간 이웃 · 비신자들 선교 경험 빈도’를 물었는데 36.1%만 ‘선교 경험이 있다’고 답하였다. 이 정도면 높은 수치가 아닌가 싶지만, 이 조사 응답자들은 대부분 매주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들이었다. 가톨릭 신자의 20% 미만이 미사에 참례(參禮)하는 현실에 비춰볼 때, 이 비율은 전체 신자로 넓혀보았을 때 7% 정도만 선교를 해보았다는 뜻이다. 이들에게 다시 가장 좋은 선교방법을 물었을 때 ‘70%’ 가까이가 ‘좋은 표양’이라고 답하였다.

알다시피 개신교는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통해 성장하였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들은 방금 확인하였듯이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제 발로 찾아오는 신자들이 매년 새 신자 가운데 삼분의 이 정도를 차지하는 것이 일차 원인이었다. 전래 후 80여 년간 박해를 받았던 경험도 가톨릭 신자들의 소극적 태도와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드러내놓고 선교하기 어려웠던 경험이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것이다.

신자들의 의식도 영향이 큰 편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불교 신자 다음으로 다원적 의식이 크다. 이웃 종교에도 구원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따라서 신자들은 종교는 자신이 알아서 선택하는 것이지, 누가 권해서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외에도 개신교인의 적극적인 선교태도에 대하여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불편한 생각도 영향을 주었다. 이 때문에 가톨릭인들에게 가장 좋은 선교 방법은 ‘선교하지 않는 것’이라는 농담까지 생겼다.

김연아의 성호(聖號)와 선교 논의

가톨릭에도 ‘가두선교단’이라는 단체가 있다. 이들은 어깨에 띠를 두르고 거리에 나가 선교지를 돌리며 비신자들에게 입교를 권유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단체가 생긴 지 20여 년이 넘는데 필자가 보기엔 활동이 그리 활발하지 않다. 신자들도 이들의 활동에 대해 관심이 적다. 앞에서 말한 가톨릭 분위기가 영향을 주는 것일 터. 실제로 신자들 다수는 이들의 활동방법이 개신교식이지 가톨릭식이 아니라고 평가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가톨릭식이 무엇인가하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 ‘가톨릭식은 좋은 표양을 보이는 것’이라 답한다. 이런 생각이 교회 문화를 지배하다 보니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을 선교에 활용하려는 시도를 하기 힘들다. 스타들도 교회도 이런 일을 나서서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이 글에서 교회는 천주교회를 의미함)

김연아 선수는 가톨릭 신자다. 매 경기에 앞서 성호를 그으며 짧은 기도를 한다. 2010년 2월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 프리경기에서 경기장에 들어서며 기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런 현실에서 피겨 스타 김연아가 2008년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십자성호를 그으며, 경기에 나가는 모습은 신선했다. 이 경기에서 김연아는 우승했다. 그녀가 성호를 긋는 장면은 교회 언론에 신속히 보도됐다. 그리고 여러 교회 매체에서 그녀가 미사에 참례하는 장면을 취재했다. 이어 2010년 2월 26일 김연아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이때도 그녀는 성호를 그었다. 손에는 묵주반지를 끼고 있었다. 가톨릭 국가 선수들이 성호를 긋는 모습은 많이 보았지만 한국 선수로는 김연아가 처음이었다. 아마 그전에도 있었겠지만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성호를 그으며 경기장에 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신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당연히 이 행사 이후 교회 언론에서는 스포츠 선교에 대해 논의를 시도했다. 그러나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다. 그저 필요성에 공감하는 정도의 논의만 진행되었을 뿐 선교단체를 조직하거나 선수들에게 개별적으로 권장하는 시도는 없었다. 그리고 김연아 이후 이 논의는 교회 매체에서 사라졌다.

가톨릭이 스포츠 선교에 소극적인 이유

예측하기 어렵지만 그동안의 추세에 비춰보면 가톨릭회가 스포츠 선교에 적극성을 보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다수 신자들이 가진 생각에 비춰볼 때도 그렇다. 이를 테면 이런 생각이다.

연말이 되면 각 방송사마다 연예대상을 시상하는데 개신교 신자 연예인들이 가장 먼저 ‘이 자리에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일부 개신교 선수들은 골을 넣거나 자신의 시도가 성공했을 때 경기장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가톨릭 신자들은 이 모습을 대체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신앙은 사적 영역이기 때문에 공적으로 표출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다. 아마 이런 분위기가 지배적이어서 신자 선수들도 공개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길 꺼리게 되는 것일 터이다.

남미 축구를 보다보면 양 팀 선수들 모두 경기장에 들어갈 때 성호를 긋는다. 그래서 생긴 농담이다. ‘하느님은 어느 편을 드실까? 한 팀을 이기게 하면 반드시 진 팀에게는 원수가 될 터인데.’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축구팀은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 포르투갈, 이태리 팀을 모두 이겼다. 그러면 경기에서 진 나라들은 신이 저주를 내렸고, 이교도 국가(?)인 한국에게는 은총을 베푼 것일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런 행위들이 그리 신앙적인 의미를 갖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선수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고, 스포츠 정신에 따라 최선의 경기를 하도록 돕는 일은 필요하다. 선수들이 함께 모여 신앙생활을 하고, 이를 돈독히 하는 일은 당연히 권장할 일이다. 그러나 선교를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하고 공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도록 권하는 일은 과하다. 자신들이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이 순전히 자신들 덕인가? 특히나 국가대표는 모든 국민이 세금으로 지원해 준 자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공적인 신앙 표현은 자제하는 게 마땅하다.

박문수

가톨릭평신도영성연구소장. 연세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한 후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에서 가톨릭 신학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 한국 가톨릭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디지털 영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희망의 문턱을 넘어〉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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