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생로병사(270호)

만족이 명약이다.

태어나서 죽는 과정에 반드시 나타나는 것이 질병이다. 어쩌면 늙는 것도 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병이 언제 심하게 나타나느냐, 그 질병이 생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는 돌잔치를 앞두고 고열로 소아마비에 걸렸으니 세상에 태어나서 건강했던 시절은 단 1년뿐이었다. 60년을 중증의 장애를 갖고 살고 있는 나는 이것이 ‘나’이려니 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불행하지 않다. 하지만 돌아가신 지 15년이 되는 엄마는 딸을 온전하지 못한 몸으로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죄인처럼 사셨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장애인 부모로 살아야 했던 아버지와 어머니한테 너무 미안하다. 병든 몸을 갖게 되는 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그저 받아들여야 할 삶이다. 그래서 〈보왕삼매론〉에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고 하였다. 병은 크던 작던 중생 누구나 감내해야 할 몫이다.

청소년기에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장애인 봉사 활동을 하러 왔던 사람들이 ‘나는 장애인들을 보면서 이렇게 멀쩡한 몸을 가진 것에 감사하게 되었어요. 장애인을 도우며 기쁨을 느낍니다.’라며 장애인을 보며 위안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상처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장애인이 중생에게 주는 기쁨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진다.

〈법구경〉에 “무병은 더 없는 이로움이고 만족은 더 없는 보배”라는 경구를 보면서 깨달았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갖고 있어도, 아무리 높은 권력을 갖고 있어도, 병이 들면 그 모든 것을 놓아야 한다. 그렇다고 병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건강이 큰 혜택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마음이라는 부처님 가르침에 큰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엄마는 딸의 장애 때문에 죄인처럼 사셨지만 나는 장애인 당사자일지라도 불행하지도 않았고 내 삶에 당당할 수 있었다. 바로 ‘만족’이라는 명약 때문이었다.

진정한 건강

2015년 늦가을 인사동에서 알렉상드르 졸리앙이란 그리스 철학자를 만났다. 그는 뇌성마비장애를 갖고 있었는데 한국 불교에 심취하여 부인과 자녀 3명을 데리고 한국에 와서 살며 불교 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가 쓴 책 〈왜냐고 묻지 않는 삶〉을 읽고 취재를 하게 되었다.

그의 책에 진정한 건강에 대해 이런 설명이 있다. “진정한 건강은 자신의 허약함, 질병, 온갖 상처들을 버텨나가는 가운데 얻어진다. 그런 와중에 싸우고, 참여하고, 연대해나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내용인데 졸리앙은 철학자답게 건강을 의료적 차원이 아니라 정신적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진정한 건강은 모든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고, 그러면서 공동체 일들이 가능해진다고 하였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적으로 불안한 조현병(調絃病), 장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 심지어 몸이 약한 사람들을 차별하고 배제시키고 있다. 그래서 병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인생 끝이란 생각을 한다. 이것이 아픈 사람들을 더 아프게 만든다. 병들었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야 한다.

졸리앙은 “나를 치유해주는 것은 치유되려는 생각으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치유되는 것”이라고 하여 치유하는 방법도 가르쳐주었다. 모든 병은 다 치유될 수 있다. 불치병으로 곧 세상을 떠날 것이란 진단을 받았을지라도 질병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치유가 된다는 것이다. 병을 대하는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건강한가?

요즘은 건강보험으로 건강검진을 받기 때문에 건강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건강검진을 받지 못한다. 의료기구들이 장애인에게 맞지 않아서 피검사 정도나 할 수 있고, 좀 더 편한 방식으로 검진을 하려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고급 검사를 해야 한다.

2015년 장애인실태조사에 의하면 장애인의 성인병 발병률은 비장애인의 두 배 가까이 된다. 이 조사결과는 장애인의 건강권이 침해당하고 있는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건강하다.’고 믿고 있다. 한 번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지 않아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 동기인 사문유관(四門遊觀)은 생로병사의 현장을 보고,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 고통임을 알고 왕관을 버리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을 선택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만큼 병든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눈에 드러나는 지체장애를 갖고 있지만 장애에도 시각 · 청각 · 지적장애 등 여러 가지 유형이 있고, 눈에 드러나지 않는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사람은 전 인구의 20%에 이른다고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병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다면, 병을 갖고 또 다른 방식의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

건강은 건강해지려고 노력하는 자세에 달려있다. 그래서 건강을 염려하는 안부를 물을 때 나는 항상 씩씩하게 “네, 건강히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방귀희

1957년생. 지체장애(1급)를 앓고 있으며, 사단법인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를 맡고 있다. 숭실사이버대학교 방송문예창작학과 특임교수이자 숭실대학교 사회복지복지대학원 겸임교수. 동국대 불교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 사회복지 박사학위를 받았다. 〈솟대문학〉 발행인을 역임했으며, 국민훈장 석류장 · 한국방송작가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