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 기준으로 새해맞이
떡국·설빔 비슷한 풍습
세뱃돈으로 패스트푸드 먹기도

새해를 맞이하는 풍경은 바람이나 기원이 많다. 주로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나 소원이 대부분이지만 통일과 같은 큰 바람도 가질 수 있다. 불가에서 조석예불로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을 바라는 축원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반세기 넘게 체제와 삶의 방식을 달리해온 북녘의 새해 풍경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새해 인사법이나 음식, 새해에 바라는 내용이 비슷하다. 새해 첫날에 먹는 떡국은 정조 때의 실학자 유득공이 쓴 〈경도잡지〉에 세찬(歲饌)의 대표음식으로 꼽았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은 매우 오래됐으며 상고시대 이래 신년제사 때에 먹던 음복음식에서 유래된 것”이라 했으며, 최영년이 1921년에 쓴 〈해동죽지〉에는 ‘떡국차례’라 하였다. 속담에 나이를 물을 때 “떡국을 몇 그릇 먹었냐?”라고 물을 정도였으며, “설날 아침에 배불리 먹으면 일 년 내내 굶주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전설이 아닌 사실로 느낄 수 있다.

글자 그대로 ‘나이를 더해 주는 떡[添歲餠]’이란 떡국을 먹고 해마다 나이 드는 것을 싫어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을 싫어하는 남측과 달리 식량사정으로 말미암아 북녘에선 떡국 한 그릇이라도 더 먹을 수 있는 바람이 크다. 이런 세찬과 함께 새로움을 뜻하는 새로운 옷인 설빔[歲裝]도 조선옷(한복)을 이때 같이 장만하여 새해 첫날에 입는 풍습도 있다.

아무리 어려운 시절이라도 설은 설이다. 신정과 구정 등으로 구분하는 남측과 달리 북한에서는 양력을 기준으로 설을 쇤다. 1967년 3월부터 시작된 북한의 사회주의식 문화혁명 시기에 ‘봉건잔재의 청산’으로서 절기문화는 일상에서 거의 대부분 없어진 가운데 양력화로 인해 사라지게 되었다. 절기음식은 1980년대 초반에 “고유한 민족음식을 향토성에 맞게 개발시켜야 한다.”는 고 김일성 주석의 교시에 따라 다시 만들어 먹고 즐기고 있다.

정월 초하루에 먹던 떡국이든 흰 쌀밥이든 간에 북녘하늘 밑에서도 정초가 되면 개인적인 발원은 더 많아진다. 19세기 중반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에는 “정초에 백성들이 오행점(五行占) 등으로 한 해의 신수를 봤다.”고 적혀있을 만큼 오늘날 북한에서도 정초풍습이 전하고 있다. “어떤 동네에 어떤 이가 용하다.”고 소문이 나면 사찰의 노스님이든 아니면 무속신앙인이든 주민들이 정월 보름까지 치성을 올린다. ‘정초신수’를 보거나 절에서 정초기도 불공을 올리는 것도 다반사이다. 또 〈토정비결(土亭秘訣)〉과 같은 책을 통해 한 해의 운수를 알아보는 점복 풍속도 암암리 행해지고 있다.

이러한 북한주민들의 종교적 심성은 자녀의 결혼이나 진학, 남편의 진급 등 특별한 가정사가 있는 가정에서 흔히 나타난다. 이때 길흉화복을 점치는 기원의식을 행하는 것은 물론, 이를 신성시까지 하는 고전적인 종교의 형태를 엿볼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정초 때이다.

북녘의 설날에는 부모들에게 세배는 하지만 사직신(社稷神)과 조상에게 감사드리는 천신의식인 설 차례를 지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설날 세뱃돈을 마련한 평양시내의 아이들로 인해 햄버거와 와플, 호트도그(핫도그) 등 패스트푸드 가게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것은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2011년 11월 초부터 평양역과 천리마거리, 광복거리 등 6개소의 간이매점에서 외식으로 즐기고 있다.”고 일본의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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