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더 이상 종교나 철학이란
서구 틀에 갇힐 필요가 없다

불교(佛敎)는 종교이다. 그리고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고 불교에 대한 가장 간단한 자리매김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종교이어야만 하는가?” 라고 되물어 보자. 당연한 이야기를 되짚어 질문하면 오히려 전혀 새로운 답변도 가능하지 않을까? 적어도 질문의 형태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우리가 ‘종교’라고 할 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독교가 종교이고, 이슬람이 종교이고 도교가 그렇고 심지어 동양인의 일상생활과 삶의 지표를 마련해 주었던 유교마저 종교로 여긴다. 그러니까 종교란 이 모든 개별 종교들이 담길 수 있는 큰 바구니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실제의 모습은 어떤가?

흔히 어떤 것은 종교에 속하고, 또 어떤 현상은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언필칭 사이비 종교라거나, 혹은 신흥종교, 혼성종교라고 말할 때 이미 종교라는 말에는 그 가운데 담길 수 있는 것과 담길 수 없는 것, 또는 반쯤 걸쳐있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곧 우리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종교라는 확고한 틀이 있으며, 우리는 그것에 의해 종교란 가치판단을 내리고 있다. 많은 이들이 불교가 종교라는 규범 안에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불교는 ‘신 없는’ 종교, ‘초월 없는’ 종교라고 하여 불교의 독특한 특징을 부각시킨다. 그래서 ‘특수한 종교’로서의 불교라는 주제로 학술발표회나 국제학술대회도 열린 적이 있다. 말하자면 불교에 특별한 위치를 부여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왜 불교는 특수한 종교라고 주장하는가? 결국 이 ‘특수’라는 주장은 혹시 불교가 무엇인가 표준에서 벗어난 것은 아닌지 하는 자기 불안의식의 표출은 아닌 것인가? 왜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달라야하고 특수한 것이어야 했고, 그 이면에 불안 의식까지 지녀야 했는가?

오늘날 종교라는 어휘와 개념이 기독교적인 틀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점은 학계가 공인하고 있다. 그동안 이 틀이 규정하는 범주 내에 들어가기 위해 여타의 종교들은 기독교를 기준으로 자체 정비하고, 재단해 왔다. 불교의 경우, 무상(無常)과 공(空)을 기독교적인 절대자와 동일시하거나 열반(涅槃)을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심지어 천국으로까지 비약시켰다. 이런 비교·대조가 정당한지는 계속 학자들의 연구에 맡겨 둘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교가 과연 숙명처럼 기독교라는 틀을 따라 재단되고 규격을 따라야만 하는가? 불교 교설을 이해하고 불교신행을 한다는 일이 기독교와 같은 다른 무엇에 따라 해석되고 이해되어야만하는 것인가?

이렇게 서구적인 기준에 의해 불교를 단순히 종교라고 정의할 때 나타나는 문제는 불교가 지닌 다른 요인들을 담아 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얼마 전 중론학의 대가이고, 세계불교학회장을 지낸 뤼에그는 자신의 취임연설에서 불교는 종교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 철학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 철학이자 종교인 것만도 아니고, ‘삶의 양식’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그렇게 광범위하게 열려진 영역이라고 말했다. 곧 불교는 미래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무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가 불교를 종교라는 좁다란 곳에 가두어 놓을 하등의 이유는 없다.

불교는 더 이상 종교나 철학이라는 서구중심의 틀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으며, 서구를 포용하며 넘어서는 영역 그리고 종교를 벗어난 새 시대의 새 세계관을 요구하는 또 다른 영역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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