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났다’ 교만심 털고
작은 일깨움에 감사하며 살자

어느 사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에 와 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시점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올 한 해, 숱한 사람들을 만났고, 여러 가지 일을 했고 이곳저곳을 다녔고, 작은 성과도 이뤘고 실패와 무산의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인생은 올 한 해도 내게 별 볼일 없는 이익과 엄청난 손실을 안겨주었다. 이런 인생을 나는 내년에도 살아내야 하거늘, 인생이란 이러한데 계속 살아갈 의미가 있을까?

〈보왕삼매론〉은 말한다. 인생이란 그렇기 때문에 살아갈 의미가 있다.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말인가. 하지만 그 내용을 음미해보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첫째,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고 오히려 병을 몸에 좋은 약으로 삼으라고 한다. 둘째, 세상을 살아가는 데 힘든 일 없기를 바라지 말고 걱정스럽고 힘든 일을 벗하며 살아가라고 한다. 셋째, 마음 공부하는 데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고 오히려 장애 속에서 자유로워지라고 한다. 넷째, 수행하는 데에 걸림돌(魔)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오히려 온갖 걸림돌인 마가 내 수행을 돕는다 여기라고 한다. 다섯째는 어떤 일을 하려 할 때 쉽게 이뤄지기를 바라지 말고 일이 어려울수록 즐겁게 여기라고 한다. 여섯째는 친구를 사귈 때 내 이익을 꾀하지 말고 인연 따라 맺고 끊어지는 이치를 잘 살펴서 친구와의 순결한 우정으로 오래도록 교제를 이어가라고 한다.

일곱째는 사람들이 내게 고분고분하기를 바라지 말고 오히려 나를 치받고 거스르는 사람들로 주변을 가득 채우라고 한다. 여덟째는 이웃에 덕을 베풀되 보답을 바라지 말며, 오히려 덕 베푼 것을 헌신짝 버리듯 하라고 한다. 아홉째는 혹시나 이익을 봤거든 분에 넘치지는 않은지 살필 것이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익을 좇기 보다는 이익을 멀리하는 것을 부귀로 삼으라고 한다. 열째는 억울한 일을 당했거든 결백을 구태여 밝히려고 애쓰지 말고, 억울함을 받아들여 그것을 수행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삼으라고 한다.

열 가지 사항 가운데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항목도 있다. 병을 약으로 삼으라는 첫 번째 역설도 그렇고, 살아내기 힘들어 누군가 “힘내”라며 내 어깨를 다독여주었으면 싶은데, 구태여 내 주변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로 가득 채우라는 일곱째 항목이 그렇고, 열 번째 항목은 더 심하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밝혀내어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하거늘, 〈보왕삼매론〉은 그러지 말라고 한다. 이 메시지로 살아가면 그른 것은 치성하고 바른 것은 숨어들 게 빤해 보인다. 올해의 사자성어인 파사현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듯하다.

대체 〈보왕삼매론〉은 우리에게 어떤 삶을 요구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내 속에 숨어 있는 오만함을 제대로 보라는 것이다. 나 혼자 잘났다는 교만심을 털어내고 세상이 관계 속에 얽히고설켜 있음을 보라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판단이 옳지만 세상은 꼭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이치를 받아들이라고 한다. 무림의 고수들이 얼마나 많은지 잊지 말라는 당부다.

문제는, 이런 이치를 쉽게 잊어버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올 한해가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니, 나라는 중생, 참 어지간하기도 하다. 그러니 잘 풀리지 않아 힘들었다면 다행이라고 여겨야겠다. 세상 무서운 줄 일깨워줘서 고맙다고 마장으로 가득 찬 세상을 향해 감사의 합장이라도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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