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269호)

‘산장의 여인’이란 노래로 유명가수가 된 권혜경, 그러나 그녀는 이십대의 젊은 나이에 심장판막증, 관절염, 악성 빈혈 등을 앓아야 했다. 오랜 치료를 받았으나, 마침내 병원으로부터 ‘더 올 필요가 없다.’는 통고를 받았다. 그녀는 실망하여 다섯 번이나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죽지 말라는 팔자인가보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살아봐야지.’

‘산장의 여인’을 부르게 된 사연

그녀는 어느 해 추위가 한창이던 2월, 전방위문 때 잠시 본 적 있는 ‘만월사’란 절을 찾아 강원도 화천군 사창리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겨우 광덕고개(일명 카멜고개)를 넘고 있을 때,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개울을 뒤덮은 얼음 위로 뭔가 삐죽이 올라와 있었다. 그때 한 생각이 번개같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래 버들강아지다. 버들강아지야.’

순간 몽둥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충격이다. ‘그렇다, 살아야 한다. 나는 살 수 있다. 살아야 한다는 한 인간의 생명력이 저 버들강아지보다 못할 수 있을까? 마음만 먹으면 나는 살아날 수 있어.’

그녀는 버스에서 너무 탈진해서 기절했다. 옆에 앉았던 할머니가 자기 집에 데려다 깨죽을 쑤어주었고, 할머니의 외손자라는 청년이 그녀를 만월사까지 데려다 주었다. 스님으로부터 요양허가를 겨우 받아냈다. 첫날 밤, 스님은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백 가지 병의 근본이 우리 맘속에 있느니라. 부처님께 귀의하여 그 정성과 진심이 하늘에 닿을 때, 생로병사의 고뇌로부터 벗어가는 거야. 조바심 하지 말고, 자기 맘 속 한가운데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언젠가는 깨칠 날이 오는 법이야.”

‘그래 만 가지 병의 근원이 맘속에 있는 거야.’

그녀는 스님이 하는 것처럼 단정하게 앉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기 맘속을 들여다보았다. 그 어려운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법당에 들어가 마룻바닥에 담요 한 장 깔고 난생 처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부처님, 당신이 정말 부처님이시라면, 이 불쌍한 인생 하나 살려주세요.’

그런데 하루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날따라 진눈깨비를 동반한 매서운 북풍이 골짜기를 흔들고 있었다. 그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부처님 앞에 담요를 뒤집어쓰고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냉기를 참으면서 기도하다가 지친 것이다. 그 옆에서 스님은 〈천수경〉을 읽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에 기적이 일어났다. 눈을 감은 채 가물가물 멀어져가는 정신으로 〈천수경〉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의 귀에 대포소리 같은 커다란 목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그것은 스님이 치는 목탁소리였다. 스님은 갑자기 부처님을 보고 외쳤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님이 그리워 맘에 병이 들고 눈이 어두워 병고에 시달리는 이 불쌍한 중생을 굽어 살피소서.”

순간 무시무시한 공포가 그녀의 등줄기를 내리쳤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이거나 한 것처럼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죽을 힘을 다해 소리쳤다.

“스님, 이제 살았어요. 땀이 나요. 땀이 나요. 부처님 감사합니다. 전 이제 살았습니다.”

- 가수 권혜경의 자서전 〈산장의 여인〉,

김재영 법사 〈은혜 속의 주인일세〉 중 일부 각색.

연민은 생겨난 것이 아닌 깨닫는 것이다

불멸의 자비, 구원의 빛. 눈물 가득 살려내는 따뜻한 연민. 그러나 이것은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깨달아서 또는 깨달아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생겨난 것이 아니라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자연발로(自然發露)다. 저절로 솟아나는 것이다.

‘내 잘났다’, ‘날 따르라’, ‘내 앞에 절해라’. 이 뿌리 깊은 ‘내 고집(我相, 我執, atta-sañña)’에서 벗어날 때 무위자연으로 문득 솟아나는 것이다. ‘무아가 진리다’, ‘공이 진리다’, ‘자성이 진리다’.

이 끝없는 ‘진리 고집(法相, 法執, dhamma-sañña)’에서 벗어날 때 문득 저절로 그렇게 빛나는 것이다. 모든 곳에서, 모든 생명을 향하여 문득 그렇게 조건 없이 빛나는 것이다. 두꺼운 얼음장을 뚫고 죽어가는 가수 권혜경을 향하여 문득 그렇게 다가온 것이다. 그래서 ‘무연자비(無緣慈悲)’, 이렇게 일컫는다. ‘부처님의 자비는 조건 없는 것이다.’ 이렇게 일컫는다.

이 자비, 이 연민, 이 조건 없는 사랑. 지금 우리 맘속에 화산의 용암처럼 잠재해있다. 무서운 에너지로 잠잠히 흐르고 있다.

‘하이, 안녕하세요. 건강하시지요.’

지나가는 할머니 보고 손을 번쩍 들고 이렇게 외칠 때 이 연민은 뜨거운 에너지로 분출한다. 활화산처럼 분출한다.

‘친구들, 함께 가세.’

거리의 무심한 동포들 향하여 이렇게 오칠 때 이 연민 에너지는 불끈 솟아올라, 우리 인생을 바꾸고 이 세상을 바꾼다.

연민이 먼저다. 이 연민이 모든 것에 앞서간다. 이 연민이 깨달음·견성·해탈 · 불국토, 가능하게 하는 동력(動力)이다. ‘깨달은 뒤에’, ‘내가 먼저 깨닫고’ 이제 이 허망한 몽상에서 깨어날 것이다.

깨닫는다는 것. 앉아 있는 이는 영원히 앉아 있다

부처님의 자비는 불멸(不滅)이다

죽어가던 가수 권혜경. 정성을 기울여 부처님 앞에 올린 기도. 얼음장을 뚫고 솟아오르는 버들강아지. 땀을 쏟아내며 살아난 한 여인.

이것은 무엇일까? 미신일까? 우연일까? 행운일까? 기적일까?

기적이라면, 이 기적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행운이라면, 이 행운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하늘에서 오는 것일까? 신(神)에게서 오는 것일까?

이것은 인간 붓다에게서 오는 것이다. 인간 붓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랑에서 오는 것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피땀 흘리며 보여주신 인간 붓다의 절절한 사랑에서 오는 것이다.

손수 피고름을 가득 묻히며 간병하시고, 목숨을 던져 중생들을 구제하시고, 피땀 쏟으며 궁핍한 동포들 찾아 걸으시고, 죽어 뼛조각까지 우리들을 위해 남기셨다. 이것이 자비(慈悲)다. 자비는 곧 연민(憐愍, karunā)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동포들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며 흘리는 뜨거운 눈물이다. 이 자비, 이 연민은 불멸(不滅)이다.

부처님의 이 사랑은 영원불멸하다. 결코 소멸되지 아니한다. 부처님 육신은 죽어 한줌 재로 돌아가도, 이 사랑은 영원불멸하다. 지금 이 순간 우리를 감싸 안고 있다. 우리가 부르면 곧 달려오신다. 우리 고통 감싸 안고 눈물 가득 다 살려내신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손잡으시고 불사(不死)로 이끌고 계신다. 이것이 대비(大悲, maha–karunā)다. 불멸의 연민이다.

이것은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구원(久遠)의 사랑, 구원(救援)의 사랑, 그리고 구원의 빛이다.

 

김재영
서울대 사범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동국대 불교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불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4년 이후 현재까지 30여 년간 동방불교대학 교수로 ‘현대포교론’ 등을 강의해 왔다. 1970년도에 서울 동덕여고 불교학생회를 창립한 이후, 현재까지 50년 가까이 ‘우리도 부처님같이’라는 기치를 내세우며 청소년, 청년, 대학생 중심의 ‘청보리운동’을 전개 중이다. 저서로 〈룸비니에서 구시나가라까지〉, 〈은혜 속의 주인일세〉, 〈우리도 부처님같이〉, 〈초기불교개척사〉, 〈붓다의 대중견성운동〉, 〈초기불교의 사회적 실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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