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명론(269호)

<원효사상> 이기영 지음

 

원효는 우리나라 최고의 불교사상가로 널리 알려져 있고,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원효 생존 당시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원효는 주류라고 하기는 곤란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먼저 그는 진골 귀족이 아니다. 그리고 서울인 경주 출신이 아닌 지방 출신이었다. 그리고 유학승 출신이 아닌 국내에서 수학한 사람이었으며, 나중에는 환속을 하여 승려도 아닌 거사의 신분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핸디캡에도 불국하고 우리나라 최고의 불교사상가로 널리 존경을 받는 것은 수많은 저술이 보여주는 그의 뛰어난 지혜와 여러 설화로도 잘 알려진 민중 속에서의 실천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당대에는 그렇게 높은 존경을 받지 못하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주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원효의 화쟁(和諍)이 주목을 받으면서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높은 존경을 받았고, 보조국사 지눌도 그를 높이 존경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서는 식민지 상태인 우리나라에도 아주 뛰어난 사상가가 있음을 말하려는 동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원효에 대해 말하였다. 최남선은 한국불교가 뛰어남을 강조하며, 그 대표자로 원효를 내세웠고, 이광수는 소설 <원효대사>(1942)를 써서 원효가 널리 알려지게 하였다. 그리고 원효의 사상도 연구되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연구는 별로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한 상태는 1960년대까지 계속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기영(1922 ~ 1996)의 <원효사상 1. 세계관>(원음각, 1967)은 원효 연구의 한 획을 긋는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원효 사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이 저술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찬탄을 받았다. 출간 다음 해인 1968년에는 서울시 문화상을 받기도 하였다.

원효의 사상을 연구하고 밝히고자 하는 뜻을 세운 이유를 이기영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이 달성할 수 있었던 가장 훌륭한 사상을 ‘불교유산’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원효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원효의 사상 속에서 저자는 세계와 인생에 관한 전고미답(前古未踏)의 보편적 진리를 발견하고, 그 참신성, 그 예리성, 그 현실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입니다. …… 원효, 그는 이 나라 이 민족의 위대한 새벽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인류의 위대한 새벽이 될 것입니다.”

원효야말로 가장 훌륭한 사상을 성취하고 있기에 그것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것을 밝혀서 새로운 학구적 발전을 위한 발판으로 삼자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었다.

원효는 많은 저술을 하였다. 100여 종 가까운 저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사상의 핵심은 한 마디로 말하기 쉽지 않고 그의 많은 저술들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그 사상의 핵심을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원효사상의 근본은 일심(一心)이라 하고, 그의 사상적 특색을 화쟁이라 하여 일심과 화쟁을 그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로 보고 있다. 많은 저술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저술로는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및 <별기(別記)>와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을 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승기신론소> 및 <별기>가 원효의 대표적 저술로 인정되어 온 것도 이 저서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기영의 <원효사상 1. 세계관>은 원효의 <대승기신론소> 및 <별기>를 그 기본 자료로 하여 원효의 사상을 해설하고 있다. 제목을 <원효사상 1. 세계관>이라고 한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권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권으로 할 예정이었다. 그리하여 첫 번째로 세계관이라고 하여 가장 기본이 되는 저술을 먼저 해설하기로 한 것이다.

원효의 사상을 밝히는 데에 <기신론>에 관한 원효의 저술이 중요한 근거가 됨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원효의 현존 저서들을 숙독하고 느끼는 인상은 그의 관점이 언제나 <기신론>의 논리로 굳건히 구축되어 있어, 어떠한 공박이나 유혹에도 동요하지 않으며, 어떠한 착잡한 회의에도 명쾌한 해명을 줄 수 있는 보편적 진리성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원효의 사상과 신념이 전체적으로 기신론의 원리로 총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감히 원효의 사상, 그의 생활원리의 위대성을 현대의 모든 뜻있는 이들과 더불어 같이 나누어 배우고자 하는 마당에 있어서 그의 <대승기신론>에 입각한 세계관 · 인생관을 먼저 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원효의 <대승기신론소> 및 <별기>를 현대적인 견지에서 해설하여 원효의 세계관을 설명하고자 한다. 전체적으로는 <기신론소>와 <별기>의 내용을 해설하는 것이지만 단순히 번역에 그치는 것은 아니고, 그 순서도 조정하고 중요한 부분을 중심으로 번역하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생략하면서 원효사상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통상적인 번역서와는 성격이 다르다.

전체 구조는 Ⅰ. 서설 Ⅱ. 목숨을 들어 돌아가고자 Ⅲ. 논의 구성과 그 취지 Ⅳ. 대승이란 무엇인가? Ⅴ. 유전(流轉)과 환멸(還滅) Ⅵ. 혁명적 실천 등의 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의 <기신론>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현대적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차례로 살펴보도록 하자.

‘I. 서설’에서는 <대승기신론>에 대해 해설한 다음 원효와 그가 본 <대승기신론>이라 하여 <기신론소>와 <별기>의 서론 부분을 해설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번역하여 소개하지 않고 순서를 달리하여 설명함으로써 이해를 쉽게 함과 동시에 단순한 번역서와는 다른 특색을 보여준다.

이기영은 먼저 원효의 <기신론소> 저술 의도를 설명하고, 다음으로 <대승기신론>의 이름을 해설하고 그 다음에 <대승기신론>의 근본 주장에 대해서 설명한다. 원효의 저술 의도에 대해 “원효의 소는 중국인들의 주관적이고 현학적인 주석학의 기풍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오직 <기신론>을 지은 원저자의 정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집필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원효의 <기신론> 이해에 대해서는 <기신론>이야말로 화쟁의 논서임을 주장하고 있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효는 <기신론>이 한편으로는 나가르쥬나(Nagarjuna, 龍樹)의 <중관론>·<십이문론> 등 반야중도사상과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상가(Asanga, 無着), 바수반두(Vasubandhu, 世親)의 <유가론>·<섭대승론> 등 유식사상과 이 양자의 두 가지 치우침을 극복한 논 중의 가장 본받을 만한 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뭇 쟁론의 허점을 찌르고 그 논쟁의 부당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서설을 마치고 ‘Ⅱ. 목숨을 들어 돌아가고자’에서는 원효의 <기신론소>와 <별기>의 순서에 따라 논의 최초 게송부터 차례로 해설한다. 이 게송은 <대승기신론>의 전체 서설이라 할 수 있는데 먼저 삼보를 찬양하고, 뭇 생명 있는 자들로 하여금 의혹을 없애고, 그릇된 고집을 버리게 하며, 대승에 대한 바른 믿음을 일으켜 깨닫는 자가 계속 나타나게 하기 위해 이 논을 짓는다는 내용이다. 중생을 뭇 생명 있는 자로 번역하는 등 현대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한 점이 눈에 띈다.

‘Ⅲ. 논의 구성과 그 취지’인데 여기부터 본문 해설이다. 먼저 <기신론> 원저의 구성에 대해 설명한다. 그것은 1)인연분(논을 짓는 이유) 2)입의분(立義分, 논지의 제시) 3)해석분(논지의 해명) 4)수행신심분(논지의 실천) 5)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 연구실천의 권고)이다. 그리고 첫째 인연분의 논을 지은 이유인 여덟 가지 인연에 대해 설명한다. 기본적인 이유는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고통을 여의고 궁극적인 즐거움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 한다.

‘Ⅳ. 대승이란 무엇인가?’는 입의분에 해당하는데 대승의 뜻을 해석한다고 한다.

이기영은 “마음 그 자체로 말하면 하나이고, 그 양상으로 말하면 둘이며, 그 위대성으로 말하면 셋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기신론의 설명을 ‘일심이문삼대(一心二門三大)’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문은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이고 삼대는 체대(體大) · 상대(相大) · 용대(用大)이다.

‘Ⅴ. 유전(流轉)과 환멸(還滅)’인데 이는 해석분에 해당한다. 이문과 삼대를 해설하고 잘못된 견해를 논파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Ⅵ. 혁명적 실천’은 구체적 실천에 대해 논한 부분인데 수행신심분이 이에 해당한다. 믿음을 가지고 다섯 완덕(完德)을 실천하라는 내용이다. 마지막에 권수이익분도 함께 배치하여 간단히 논의하고 있다.

이와 같이 원효의 핵심 사상을 보여주는 저서인 <대승기신론소> 및 <별기>의 내용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 이기영의 <원효사상 1. 세계관>이다. 출간한지 50년이 되었지만 원효의 사상을 밝히고 그것을 새로운 학구적 발전의 토대로 삼고자 했던 저자의 정신은 지금도 새롭다.

 

최유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졸업(철학박사). 일본 동경대학,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중국 청도대학 등에서 연구. 한국불교학회 부회장 역임. 현재 경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저서로 <원효사상연구>(경남대학교 출판부), <강좌 한국철학>(공저)(예문서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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