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명론(269호)

<한국고대불교사상사> 고익진 지음

 

사상에 대한 사적(史的) 연구

대개 학자는 ‘논문’과 ‘저서’를 통해 자신의 살림살이를 마련해 간다. 한 학자의 살림살이는 번역서도 있지만 주로 논문과 저서의 완성도로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한 학자후보가 대학의 학사와 대학원의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치는 동안, 끊고 닦고 쪼고 갈은[切磋琢磨] 성과는 박사논문으로 여물게 된다. ‘좁고 깊게 쓰는’ 석사논문과 달리 ‘넓고 깊게 쓰는’ 박사논문은 한 권의 책을 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해서 한 학자의 박사논문은 그 학자의 학문적 절정이 된다. 그의 박사논문은 자신의 전공성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그의 학문적 가능성과 지형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종래의 학계에서는 이러한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변하여 박사논문의 의미와 가치가 엷어지고 있다. 박사논문을 쓰는 시간도 단축되고 그 내용도 간략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박사논문은 해당학문에서 강의하고 연구할 수 있는 학문적 면허증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사학위논문은 물리적 시간과 심리적 공간의 축적이 요청된다는 점에서 종래의 학위논문에서 요청되던 것과 다르다고만 할 수도 없다. 논문 제출 마감기간이 입학 이후 10년(20학기)이든 5년(10학기)이든 말이다. 그 이유는 ‘박사’라는 이름이 비록 엷어졌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박사’는 ‘박사’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으로서 ‘불교학’과 ‘불교사’ 연구가 본격화된 지난 세기 이래 한국의 불교연구는 양과 질에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어왔다. 동국대학교 전신인 명진학교(1906)의 개교 이래 중앙불전(1930)과 혜화전문(1940)에서 이루어진 국내의 불교연구는 일본인학자와 한국인학자의 성과가 공존하였다. 동국대학(1946)과 동국대학교(1953)를 구심으로 한 한국인학자의 한국불교 연구저술은 전 시대와 비교해 한층 다양해지고 심화되어 왔다. 김동화의 〈삼국시대의 불교사상〉, 조명기의 〈신라불교의 이념과 역사〉를 필두로 하여 이기영의 〈원효사상〉, 김영태의 〈신라불교연구〉, 이기백의 〈신라사상사연구〉는 한국학으로서 불교학 연구의 성과였다.

이러한 흐름을 잇는 또 하나의 저술이 병고(丙古) 고익진(高翊晉, 11934~1988)의 박사논문인 〈한국고대불교사상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저술은 종래에 불교사상과 불교신앙을 단순한 교리사나 교단사 그리고 사회적 성격에 관심을 집중한 사학계의 연구와 달리 한국 고대불교의 전체적인 흐름을 사상사적 관점에서 비춰본 저작이다.

이것은 ‘해당 시대에 어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당시 사상가들이 시대적 문제에 대해 어떤 해결의 노력을 베풀고 있는가를 찾아내려는’ 사상사적 관점을 일관되게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저술은 한국고대의 불교사상사를 사상의 사적 연구라고 할 사상사적 관점에서 주제 중심의 계통적 고찰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학분야의 명저와 명론의 반열에 올라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제 중심의 계통적 고찰

저자는 한국고대의 불교사상을 ‘삼국의 불교전래와 정착’, ‘대승교학의 발생과 교학사조(敎學思潮)’, ‘신라 중대 화엄사상의 전개와 그 영향’, ‘초기밀교의 발전과 순밀(純密)의 수용’, ‘신라 하대의 선 전래’의 주제를 계통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그는 ‘삼국의 불교전래와 정착’에서 한국 초기 전법승들이 전한 불교는 소승적 업설인 ‘인과화복지설(因果禍福之說)’로서 종래의 무교적 세계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고 하였다. 저자는 당시 귀족세력의 무교적 사상기반을 해소하는 데에 불교의 업설은 매우 유용한 것이었으며, 이 때문에 왕실에서는 새로 등장하는 이계(異系) 왕권의 절대화와 부합하였기에 왕실 측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고 보았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불교의 업설과 긴밀한 관련 속에서 설해지는 전륜성왕사상과 미륵신앙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삼국의 왕실이 적극적인 흥불책을 썼던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에 부응하여 당시의 승려들은 국가의 흥불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전통적 무속신앙을 불교로 포섭하고 교화하는[攝化] 일에 비상한 노력과 창의력을 발휘하였다고 파악하였다. ‘대승교학의 발생과 교학사조’에서는 삼국시대의 교학사조를 고구려 승랑(僧朗)의 삼론학, 신라 원측의 유식학으로 종합 정리하면서 승랑의 삼론학이 지닌 독자성과 원측의 유식학이 지닌 화쟁성에 대해 자세히 구명하고 있다.

‘신라 중대 화엄사상의 전개와 그 영향’은 이 저술(본문 540면)의 3분의 1(IV장 167~381면)을 차지할 정도로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전개하였다. 저자는 삼국통일 전후의 시대적 전환기에 불교 화엄사상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던 것은 원효의 독창적인 철학사상과 의상의 실천적인 교단운동이 크게 기여하였다고 보았다. 특히 원효는 기신학과 화엄학을 통하여 중관과 유식의 오랜 대립과 쟁론을 해소시킬 수 있는 이론을 발견하였으며, 삼매론에서는 그러한 이론에 입각한 강력한 실천원리를 발견함으로써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조화로운 사상체계를 구축하였다고 보았다.

또한 저자는 의상(義湘)의 화엄학은 지엄(智儼)의 화엄교학을 요약하고 체계화한 것일 뿐만 아니라 거기에 강력한 실천적 성격을 부여하여 전체적으로 수행의 구조로 귀착시키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신라의 화엄학통은 크게 원효계와 의상계로 이루어졌으며 원효계는 황룡사를 중심으로 표원(表員), 명효(明曉), 견등(見登) 등에 의해 줄기차게 계승되었으며 중국과 신라 화엄학의 융합, 유가사상과의 교섭 등 교학면에서 의상계보다 눈부신 바가 있다고 보았다. 아울러 신라 중대의 전제왕권과 화엄종이 직접적인 연관을 맺는 것은 불국사가 창건되는 경덕왕 때부터이며, 하대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왕실에 수용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초기밀교의 발전과 순밀의 수용’에서는 신라밀교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뒤에 밀교의 선구적 사상가로 원광(圓光)과 안함(安含), 밀본(密本), 명랑(明朗), 혜통(惠通)으로 보았다. 저자는 특히 명랑의 문두루법(文豆婁法, Mudra)은 〈관정경(灌頂經)〉의 주술의례에 「금광명경」과 「십륜경」 등의 호국사상을 추가한 뒤 다시 유가(瑜伽)사상을 곁들인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였다.

혜통의 밀교는 무외(無畏)삼장으로 받아온 것이 아니라 아지구다(阿地瞿多)일 것으로 보면서 〈다라니집경〉을 중심으로 종래의 잡밀(雜密)을 계승하고 종합하면서 순수밀교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보았다. 금강지와 선무와 및 불공 등에 의한 순밀(純密) 즉 새로운 밀교는 신라에 곧바로 전해졌고, 선무외(善無畏) 아래서는 의림(義林)과 현초(玄超)와 불가사의(不可思議)가, 금강지 아래서는 혜초(慧超)와 같은 쟁쟁한 신라승이 있었으며, 불공 아래의 혜과(惠果) 계통에서는 혜일(惠日)과 오진(悟眞)과 균량(均亮) 등이 있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의림(義琳)과 불가사의(不可思議)는 태장계(胎藏界) 밀교를, 혜일(慧日)은 금강계를 신라에 전하였다고 보았다.

‘신라 하대의 선(禪) 전래’에서는 ‘구산문’이라는 명칭은 한국선의 독특한 성격을 보여주는 특색 있는 개념이며, 국내에서 법을 전해 받음이 없이 입당(入唐) 전법하여 사자상승(師資相承)한 선사만을 개산조(開山祖)로 치고 있다는 점에서 인적(人的)인 사사(師事)를 중시한 것으로 보았다.

또 구산문 대부분이 마조 도일(馬祖道一, 709~788)의 홍주종(洪州宗)을 전해온 것은 신라 하대의 선사들이 대부분 화엄을 수학한 경력이 있어 우선 화엄과 근본원리가 통하는 홍주종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고 보았다. 그러면서도 마조선이 일체의 관념적인 허식을 부정하고 있으므로 신라 하대의 현학적이고 사제적인 교학을 부정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고 보았다.

나아가 선승들은 지방호족 뿐 아니라 왕실에서 열심히 선지(禪旨)를 설명하였으며, 왕실 또한 새로운 선(禪)사상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산문개창을 지원하였다고 하였다. 그 결과 선의 전래로 종래의 화엄교학이 타격을 받기는 했지만 선의 근본원리가 교학의 존재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선 자체의 사상적 한계성으로 인해 신라 하대의 불교는 선교병립(禪敎竝立)이라는 현상을 띠게 되었다고 파악하였다.

성과와 특징 그리고 한계

이 저술은 사상사 즉 ‘사상에 대한 사적(史的) 연구’의 관점 아래 ‘주제 중심의 계통적 고찰’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 성과와 특징이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미처 살피지 못한 아쉬움은 한계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성과와 특징은,

첫째, 역사학의 방법론을 불교학의 방법론으로 끌어들여 전개했다는 점,

둘째, 한국 고대불교의 현존 자료를 총망라하여 분석하고 구명하고 있다는 점,

셋째, 종래에 미처 다루지 못한 불교의 새로운 사실을 다수 밝혀내고 있다는 점,

넷째, 통일기 신라의 교학을 화엄과 유가와 밀교로 파악하여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쉬움 혹은 한계는,

첫째, 신라 중대의 유식사상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를 위해 별도의 장을 시설하여 논구하지 않았다는 점,

둘째, 고대사회가 엄격한 신분제사회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사상과 시대를 좀더 연결시켜 보지 않았다는 점,

셋째, 학계의 종래 연구 성과를 인용하고 밝혀주는데 좀 인색했다는 점,

넷째, 저자의 오랜 연찬을 집대성한 박사학위를 보여줌으로써 후학들에게 그 전범(典範)의 버거움과 분발심을 주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름과 실상이 서로 꼭 맞는[名實相符] 한국학 분야의 명저이자 명론이라 할 만하다.

 

고영섭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와 同 대학원 석 ·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원효, 한국사상의 새벽〉, 〈원효탐색〉, 〈한국의 사상가 원효〉(편저), 〈분황 원효〉 등 다수가 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