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동화 싯다르타 이야기(269호)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지나가고 밤이 찾아왔어요. 보리수 위에 걸린 하얀 반달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어요. 싯다르타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천천히 내쉬며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꽁꽁 숨어있던 욕망 한 점까지 없어지자 깃털보다 가벼워졌어요. 마음이 구름을 타고 두둥실 날아갔어요. 아래를 내려다보았어요.

바닷물이 밀려들었다 나갑니다.
해가 떴다 해가 집니다.
달이 찼다 조금씩 이지러집니다.

따뜻한 햇살이 가득한 숲으로 들어가 보았어요.

눈이 녹은 자리에 새싹이 돋아납니다.
작은 나무가 되고, 큰 나무로 자랍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큰 나무는 쓰러져 썩은 통나무가 되었다
마침내 흙이 됩니다. 열매가 떨어진 자리에
다시 새싹이 돋아납니다.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일어나 보였어요. 싯다르타는 생각했습니다.

‘자연 현상은 끝없이 되풀이된다. 생기고 사라지는 자연 법칙대로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살아있는 모든 것이 태어나고 죽는다. 그렇다면 단단한 바위는 어떤가. 영원할 것 같지만 햇빛, 공기, 물, 바람에 깎이고 깎여 모래알만큼 작아져 바람 부는 대로 날아가고 만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화한다.’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깜깜한 하늘에 별들이 쏟아졌어요. 그때 싯다르타의 눈앞에 전생의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저곳에 태어났을 때 이름이 범지였구나.
범지처럼 수행자였을 때도 있었고, 상인이었을 때도 있었어.
왕이었을 때는 얼마나 살았으며, 이런저런 즐거움과 괴로움을 겪었어.
황금사슴이었던 적도 있었고, 원숭이, 앵무새, 비둘기, 코끼리로 태어나기도 했구나.’

싯다르타는 갖가지 모습으로 살았던 지난 삶을 기억해내었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모습도 기억했습니다.

‘그래, 나는 하나의 삶에서 시작해 천의 삶을 사는 동안 수많은 선행을 쌓았고 도솔천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부처가 되어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하늘눈을 얻게 된 싯다르타는 다른 사람들의 지난 삶까지 들여다보았어요.

그들도 다시 태어나고 있었어요. 어떤 이는 과거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어떤 이는 못난 모습으로, 어떤 이는 과거보다 부유한 집에서 어떤 이는 가난한 집에서, 저마다 살면서 했던 행동에 따라 새로운 운명을 갖고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모든 삶에는 결과가 있다. 저 사람은 못된 마음씨로 나쁜 일만 하고 살아 힘든 삶을 받았고, 저 사람은 바르고 착하게 살아 좋은 삶을 받는구나.’

싯다르타는 세상일들이 무척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원인과 결과는 늘 함께 다니며, 모든 것이 서로 연결돼 있어 서로 의지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열두 개의 단계(12연기법)를 통해 밝혀내었어요.

새벽을 알리는 샛별이 반짝였어요. 싯다르타는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질문하고 답을 찾아나갔습니다.

‘늙음과 죽음의 원인이 무엇일까?
태어남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인해 태어날까?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데도 있다고 집착하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그 어리석음 때문에 한 번의 삶으로 끝나지 않고 태어남을 되풀이 한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태어나지 않으면 된다.
태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바른 깨달음을 얻어 열반하는 길이다.’

싯다르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괴로움을 겪는 것은 어리석음 때문이고, 올바른 수행으로 어리석음을 없애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모든 사람들이 깨닫게 되면 고통도 없고 다툼도 사라질 거예요. 큰 나무와 작은 나무들이 어울려 아름다운 숲을 만들듯 사람들도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싯다르타가 천천히 눈을 떴어요.

“어리석음은 없어졌다. 나는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마침내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

싯다르타는 나이 서른다섯에 ‘깨달은 자’, 붓다가 되었어요. 어느덧 동녘 하늘에서 붉은 빛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명상을 하는 세 친구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어요. 붓다의 생각을 쫓아가고 있었거든요. 살짝 눈을 뜬 꽁이가 친구들에게 물었어요.

“우리도 깨달을 수 있을까?”

천천히 눈을 뜨며 참이가 말했어요.

“바른 수행을 하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고 하시잖아.”

맹이가 한숨을 쉬었어요.

“휴! 게으르면 어렵겠지? 난 늘 잠이 부족한데.”

꽁이가 손가락으로 머리를 짚으며 말했어요.

“바른 수행은 어떻게 해? 생각을 많이 해서 머리가 핑핑 돌아.”

참이가 말했어요.

“나중에 부처님이 알려주시겠지. 지금은 여기 부다가야만 기억하자. 부처님이 깨달은 곳이라고 우루벨라를 부다가야라고 부른대.”

맹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성을 질렀어요.

“와, 무지개다!”

보리수 아래로 하늘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쁨에 겨워 꽃을 뿌리고 노래를 불렀어요. 세 친구는 더덩실 어깨춤을 추었어요.

“부처님의 깨달음은 하늘 위 하늘 아래 가장 높다네. 세상을 치료할 최고의 가르침을 들읍시다. 부처님 광명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혀주시니 우리 모두 기뻐합니다~”

하늘사람들이 붓다께 머리 숙여 절하며 향나무로 만든 바리때와 몸에 두를 붉은색 가사를 드렸어요. 노랫말대로 세상을 밝히겠다는 약속이었을까요? 붓다의 이마 한 가운데에서 영롱한 빛이 온 누리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