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으로 여는 불교(269호)

전5식(前五識)과 긍정적인 자극작용[Anchoring]

그녀는 40대 후반이었다. 30대 후반에 이혼을 하고 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머니는 그녀의 어린 시절에 여러모로 힘이 되어 주시고 보통 어머니 이상의 사랑을 베풀어주신 존재였다. 주위에서 재혼 권유도 여러 번 있었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그녀는 마음이 크게 내키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재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약사로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 살고 있는 동네 가까이 여동생 가족이 살고 있어 그들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자주 국내외 여행 다니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고 있었다. 그런 때는 여동생 남편이 짐꾼 노릇을 했다. 여동생에게는 딸이 하나 있어 그녀는 그 조카를 매우 귀여워하였다. 여동생 가족에게 다른 일이 있으면 그녀는 어머니를 모시고 조카와 함께 셋이서 다니기도 했다. 어머니도 어린 조카를 보는 것을 좋아하셨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몇 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떤 면에서는 삶의 중심을 어머니의 행복에 맞추어 살아왔던 그녀에게는, 엄청난 대사건이고 충격이었다.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즐겁게 해 드릴까?’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기 때문에 그것을 할 수 없게 된 그녀의 삶은 상실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꽤 큰 단독주택에 살고 있었는데 어린 시절 부모님과 같이 살던 집이었다. 사업을 하시던 부친이 마련했던 집이었는데 거기서 어린 시절부터 살아 왔고, 대학교 졸업 무렵 부친이 돌아가신 후에도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집이다. 결혼 후에는 몇 년간 나가 있었지만 이혼 후 다시 들어와 살았기 때문에 그녀의 오랜 추억과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집이었다.

어머니도 돌아가신 지금은 그런 큰 주택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었지만, 처분한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 그 집은 그녀의 삶의 일부였고 무엇보다 어머니의 인생과 삶의 흔적이 그대로 소중하게 남아있어 물품, 집기 등을 볼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떠올랐다.

이러한 현상은 심리학적으로 ‘자극작용(Anchoring)’이라고 한다. 인간은 5감을 통하여 개체 생존, 유지를 위한 판단기준이 되는 모든 환경 정보를 받아들인다. 이 5감은 유식학(唯識學)에서 전오식(前五識)에 해당한다. 그런데 최신 심리학인 ‘신경언어프로그래밍’ 즉, NLP(Neuro- Linguistic Programming)에서는 5감을 모두 다루지 않고 시각(視覺), 청각(聽覺), 체각(體覺) 세 가지로만 구분하여 다루고 있다.

‘체각’이라는 개념은 다소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촉각, 후각, 미각을 모두 포함하고, 우리 몸 내부에서 일어나는 피부운동감각(닭살이 돋는다, 소름 끼친다, 근육이 실룩거린다 등), 내장감각(속이 더부룩하다. 께름칙하다. 배가 아프다 등), 평형감각(어지럽다, 현기증이 난다 등)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5감이란 모두 외부에 기인하는 감각임을 알 수 있다. 시각이나 청각은 모두 원천이 바깥에 존재하여 우리 감각기관에 접수될 때 일어나는 감각이고 촉각, 후각, 미각 역시 모두 외부의 것이 우리 몸에 접촉할 때 생기는 감각이다.

우리 몸의 감각기관(육근六根)이 외부환경정보(육경六境)을 대상으로 갖가지 감각(육식六識)을 인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감각정보를 바탕으로 개인 생명의 안전을 도모한다. 해일이 밀려오는 것을 보거나, 천둥이 치거나 총소리를 들으면 긴장하여 안전조치를 취하게 된다. 콜탈이나 피는 손에 묻히려 하지 않고, 뾰족한 것은 피하며, 독가스 등 역한 냄새는 맡지 않으려 하며, 부패한 음식은 먹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개체의 안정과 생명 유지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크게 세 가지 감각이 그때그때 자연스레 접수되고 이해되고 처리되면 되는데, 개인에 따라서는 어떤 특정 감각이 특정한 때에 특별한 의미로 그 순간의 느낌과 함께 저장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가 애당초 특별한 의미로 저장되었던 때의 물건이나 상황을 다시 만나면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는데 이것을 ‘자극작용刺戟作用’ 즉, ‘앵커링(Anchoring)’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 누구나 다양하게 경험하고 있다. 지금 60대는 7080 노래를 들으면 장발족 소리를 들으며 데모에 참가하던 때의 피 끓는 청춘의 정서를 느끼게 될 것이다. 청각이 앵커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사천왕문에 안치된 커다란 청동 사천왕상을 대할 때마다 근신(謹愼)과 참괴(慙愧)의 생각이 드는 것은 시각의 자극작용 덕분이다. 향을 사른 실내에서 차를 들 때마다 내면이 가라앉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불상, 십우도(十牛圖) 벽화, 풍경(風磬)과 그 소리 등 많은 것이 우리의 내면을 자극하여 특정한 느낌을 갖게 한다.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많은 것이 우리 내면상태를 바꾸게 한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삶의 기본이 감각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어차피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있어서 이 5감만 의식적으로 적절히 잘 통제해도 편안한 내면세계를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이를 자각하여 부정적인 자극작용과 긍정적인 앵커링을 식별하여 부정적인 것은 의도적으로 제거하고, 긍정적인 것은 그냥 두거나 의식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정적인 것을 의도적으로 제거하는 기법은 NLP에 다수 준비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특정 자극작용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형성된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자극 환기 작용이 부정적인 것이어서 떨쳐버리려고 해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 배어든 행동(습관)이므로 쉽게 떨쳐버리기도 어렵다. 그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물론 긍정적인 자극작용은 그냥 놔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아가 긍정적인 자극작용(앵커링)은 의식적으로 만들어 내 몸에 심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법구경〉의 한 구절을 휴대폰의 첫 화면에 올려두고 볼 때마다 그 의미를 되새기며 그것에 걸맞은 내면상태를 환기한다든가 하는.

어머니가 계셔서 같이 살 때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방안에 있는 가구, 집기 등에 시선이 갈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연상된다. 그것들 모두 어머니의 손때가 묻지 않은 것이 없었고 저마다 각각 어머니 혹은 어머니와 그녀 사이의 사연을 안고 있다. 정원의 화단도 어머니가 직접 가꾸셨고 비어 있는 빨랫줄을 보아도 어머니가 맑은 하늘 아래 빨래를 널며 만족해하시는 모습이 떠오른다. 마치 영화 ‘길’의 한 장면에 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빨래를 널던 여인과 같은.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것이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회상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머니가 쓰시던 물건에 시선이 갈 때마다, 그래서 어머니가 연상될 때마다 차오르는 상실감에 젖어 갑자기 눈물이 나 주체할 수 없다. 말하자면 부정적 자극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한동안 흐느끼고 나면 다소 마음이 안정되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거의 매일 같이 반복되니 큰일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나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어김없이 정해진 일과처럼 상실감의 눈물과 흐느낌이 반복된다. 그러나 그런 물품들을 처분하거나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사할 생각은 해 보지도 못한다.

그런데 눈물이 집안에서만 일어난다면 그래도 견딜 만하다. 진짜 문제는 외부에서 일어날 때이다. 그래서 어머니를 모시고 자주 가던 음식점이나 백화점 매장, 공원 등은 눈물이 나는 경험을 몇 번 한 후부터는 발길을 끊게 된다.

이것은 공간 자극작용(Spatial Anchoring) 때문인데 현상의 원인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셈이다. 그 작전은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그렇지만 피할 수 없는 곳이 하나 있다. 바로 공항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국내외 여행을 할 때마다 드나들었던 인천 혹은 김포공항이다. 거기를 지날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나고 지금은 함께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더 지켜드리지 못한 회한이 겹쳐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터져 나오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동생가족과 함께 연례행사처럼 해온 여행을 자기 때문에 중단하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답답함을 느낀 그녀가 상담을 청해 왔다. 처음에는 최면이 효과적이라는 말을 듣고 최면도 배우고 여러 번 경험해 보았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시술자가 서툴렀는지 그 방법이 그녀에게 적합하지 않았는지 별 효과가 없었다고 하였다.

NLP에도 무의식에 접근하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상실감 치유기법(Grief Work)’을 실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어머니와의 사이에 있었던 여러 추억들을 각각 여러 장의 그림 카드로 만들었고 그 그림카드 뭉치를 손에 들고 축복의 꽃가루처럼 두 손으로 자기 앞길에 흩뿌리며 자신의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카드 꽃비를 맞으며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처럼 즈려밟으며 미소를 짓다가 점차 밝게 웃는 얼굴이 되어 나아갔다.

그렇게 세션을 마친 후 불현듯 쏟아지는 눈물은 내면에 심어진 자극작용에 의해 일종의 자기정화, 치유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무의식적 행동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곁을 떠났다는 것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에서 그녀를 돌보고 지켜주시려는 의미라는 것도 깨달았다.

2개월 후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족여행으로 인천공항에 갔는데 이번에도 어머니 생각은 났지만 즐거운 추억으로였을 뿐 눈물은 나오지 않아 가볍게 오갈 수 있어서 신기하면서도 좋았노라고, 고맙다는 전언이었다.

 

심교준(한국NLP연구소장)

동국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일본 산노(産能)대학교 비즈니스스쿨 마케팅, 산업심리과정을 수료했다. 광운대학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남서울대 대학원 코칭학과 교수. NLP한국협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