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도란도란(269호)

구인사 가는 길
김성례 / 서울 성북구 삼선1가

희망도 없고 길도 보이지 않는 시간이다. 하늘과 땅이 묻혀버려 캄캄하고 어두운 밤 같은 시간들이다. 다단계란 곳은 이렇게 나를 버려둔다. 집도 모든 것도 사라졌다. 자식 둘을 데리고 거리로 나왔지만 누구 하나 믿을 사람 없이 그저 헤매고만 있다. 아무런 해답이 없어 방황하고만 있다.

방을 월세로 옮기고 무엇이든 해보려고 했지만 아무 일도 찾지 못해 속상해하던 중에, 누군가 내게 구인사에 가보라고 말했다. 함께 가자던 보살님이 끝내 오지 않아 용기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마음 의지할 곳 없어 그저 하늘만 바라보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그래도 자식의 눈물을 보니 더는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엄마라는 마음으로 용기 내보자’ 하고 구인사로 출발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구인사로 가는 차를 타는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눈물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한참을 가다보니 큰 강줄기를 만났다. 강을 바라보는 순간 내 눈물이 멈추었다. 밖에 보이는 강물은 어디로 가는 걸까. 끝없는 내 눈물 같았다.

산중턱으로 올라가는데 솜처럼 깨끗하고 새하얀 구름이 내게 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그 구름 사이에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 왜 나처럼 보일까. 외로이 홀로 막막하게 서 있는 기분. 모든 것 버리라고 하는 것 같다. 버려야 사는 일이다. 너무나도 무거운 짐을 스스로 붙들고 있는 나는 아직 완전히 버리는 것을 배우지 못했구나. 무엇을 위해 그렇게 다 짐 지고 있는가. 버리자, 버리자.

버스에서 내려 길을 몰라 물어물어 구인사로 올라갔다. 짐을 풀고 앉으니, 이곳에 오면 구봉팔문 산봉우리를 보아야 한단다. 산을 오르는 길이 왜 그리도 멀리 느껴지는지, 바위 한 덩이를 내 몸에 지고 오르는 것 같았다. 산에 올라 앉아 또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다시 산을 내려 왔다.

공양을 하고 커피 한잔 들고 서 있는데 어떤 보살님이 내게 다가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두렵기도 했지만 들어보고도 싶었다. 그 보살님은 남편이 돌아간 지 이제 한 달이 되었다고 했다. 남편만 살아 돌아올 수 있다면 모든 재산을 전부 잃어도 좋다며 내 앞에 눈물을 보였다.

세상의 보물은 곁에 있지만, 보지 못하고 살 때가 많다. 잃은 뒤에 ‘소중했구나!’ 그제야 깨닫는다. 그때는 이미 늦은 뒤다. 나는 보살님의 모습을 보며 아무 말 못했다. 그저 말문이 막혔다. 그래도 내게 아직 남아 있다! 희망의 빛이 보였다.

‘집에 돌아가 내 잘못을 빌고 시댁에 가 남편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겠습니다. 행복을 위해 가정만은 다시 찾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가정을 지키게 해 주십시오. 매일 108배를 하겠습니다.’

부처님께 맹세하고 관음수행 4박5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와 있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미안한 마음에 오히려 화를 내고 말았다. 다시는 똑같은 실수 하지 말자고 맹세하고 또 맹세했다.

부처님, 가정이라는 소중한 보물을 제 곁에 머무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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