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제후령통 및 중수발원문, 고려시대 경전 확인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조계종(총무원장 자승 스님) 문화부(부장 정현 스님)는 10월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개금불사를 위해 지난 8월 합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삼존불상의 본존인 아미타불좌상의 복장을 확인하던 중 은제후령통과 중수발원문, 고려시대 경전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삼존불상은 조선전기 왕실 후원 불상으로 알려진 흑석사 아미타불좌상(1482년, 국보 제282호), 경주 왕룡사원 아미타불좌상(보물 제1615호)과 양식이 유사하다. 또 무위사 목조아미타삼존불상(보물 제1312호)처럼 아미타불의 협시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로 구성된 조선 전기에 유행했던 아미타삼존 형식으로, 조선전기 불교조각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는 불상이라 할 수 있다.

발견된 복장물 가운데 은제후령통은 학조 스님이 왕실 후원을 받아 1490년에 해인사 법보전과 대광명전에 모셨던 비로자나불상에 납입한 은제후령통과 유사한 형식이다. 조성 당시의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후령통의 형태로 미루어 볼 때 후령통이 발견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삼존불상 역시 학조 스님의 주도하에 조성된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추정된다.

15세기 해인사를 중수한 학조(學祖) 스님은 1488년 인수대비의 명으로 해인사를 중수했고, 해인사 원당암에서 <목우자수심결>(1499년), <현수제승법수>와 <선종유심결>(1500년), <고봉화상선요>(1501년) 등을 간행하는 등 원당암의 불사에도 깊이 관여했다.

또한 1694년에 기록된 <중수발원문>도 발견되었는데, 발원문에는 해인사의 숭열(崇悅)ㆍ종안(宗眼) 스님 등이 모연하여 상을 중수했다. 또 증사 탁근(卓根), 지전 일원(一元) 스님을 비롯해 많은 사중 승려들이 중수에 참여하고, 조각승으로 법능(法岑)ㆍ법종(法宗)ㆍ경천(敬天)ㆍ청담(淸湛)ㆍ지일(智日) 스님 등이 불상을 중수하였다는 내용이 밝혀져 있다.

이 외에도 목조아미타불좌상에서는 고려후기에 <고려대장경>에서 인출한 진본, 정원본의 <대방광불화엄경> 28책과 1375년에 간행한 <성불수구대다라니>가 불복장 전적으로 발견됐다.

<대방광불화엄경>은 <고려대장경>을 비롯해 고려시대 사찰간행 사간판(寺刊板)에 대한 불교 판본학적 연구에 중요한 자료며, 또한 수진본 <성불수구대다라니>는 국내에 전존본이 확인되지 않은 유일본이다. 특히 권수의 삼신불을 비롯한 마리지천 도상의 변상도를 비롯해 간행관련 기록이 분명해 향후 불교회화사 및 불교사상사, 서지학적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편 원당암 관음보살입상과 지장보살입상을 엑스레이(X-ray)로 촬영한 결과 보살상 내부에는 아미타불좌상에서 출토된 것과 동일한 후령통과 낱장의 경전이나 다라니로 추정되는 종이 뭉치, 경전 사이로 화려한 보상당초의 표지화와 6행 17자로 구성된 절첩본과 역시 17자로 구성된 족자형의 사경도 확인됐다.

특히 족자형 사경인 경우 사경축에 금속장식이 확인되는데 이는 현재 일본 금산사(金山寺)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 사경인 <불설대길상다라니경>(1324년 추정)의 사례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주목된다.

목조아미타불좌상이 개금불사를 위해 1983년에 일부 개봉된 것과 달리 관음보살입상과 지장보살입상은 지금까지 복장을 개봉한 적이 없다. 이에 해인사 원당암은 광학적 조사를 통한 복장물 확인에 의미를 두고, 향후 보존 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해인사 관계자는 “조계종 전 종정인 혜암 스님의 유지와 방장인 원각 스님의 뜻에 따라 사찰이 중창되던 당시의 신앙심을 간직하기로 했다.”며 “향후에도 두 보살상은 신성한 비불(祕佛)로 삼아 복장을 열지 않고 법당에 모실 예정”이라고 말했다.

엑스레이로 촬영한 지장보살입상.
아미타여래좌상에 납입된 <불상복장기문>.
아미타여래좌상 속 <성불수구대다라니>.
아미타여래 좌상 속의 후령통.
아미타여래 좌상 속의 보·사리호.
후령통 유물 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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