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편지를(268호)

여름 오후를 한 뼘쯤 들어 올릴 듯 자지러지게 울고 있던 애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자판기를 두드리는 엄마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지금은 한시름 덜고 가장 행복한 순간이겠지?’

몇 날 몇 해이던가. 잠자리에 들 때는 벽을 쳐다보고 모로 누워 등만 보였던 네 모습을 오며가며 살짝 훔쳐보면서 세상에 나온 그 순간부터가 고뇌의 연속이라는 걸 느꼈단다.

이젠 사람의 생도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니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인간의 속성과 우리의 지난 삶에 또 한 번의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따가운 햇볕 아래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겠구나. 그렇게도 많은 잠자리들이 머리 위를 빙빙 돌며 가을을 재촉하는 심정을 하늘을 멀뚱히 바라보면서 주섬주섬 세어 본다.

네가 앞에 놓인 시간을 잘 견디면서 당당히 설 수 있는 기쁨을 주어 이렇게 고마운 마음을 글로 전한다.

지난봄부터 손을 대지 않은 빈 밭의 고구마순은 풀보다 약하더구나. 한 가지 일에 몰두한다는 게 사실상 얼마나 힘든 노역인지, 희로애락을 줄다리기하면서 건너온 시간은 풀이 숲을 이룬다는 명제를 발견한 생활이기도 했지.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고. 사람의 키보다 쑥쑥 자란 풀들을 예초기로 잘라 거름을 만들면서, 폭염을 견디며 땀을 비 오듯이 쏟던 지인들을 보면서도 가슴 뭉클 했단다. 낫으로는 벨 수 없는 어마어마한 큰 키의 풀은 뿌리내림도 30센티미터 이상으로 호미로 맬 수 없는 상황이었지. 예초기 칼날에 억세진 풀이 엉겨 붙어 3단계로 풀을 잘라 밭을 깨끗이 해준 분들 또한 네 걱정을 한결같이 했었지.

밭을 일구는 일에 지인들이 큰 힘이 되었듯이, 칠전팔기는 아니어도 취업을 위해 끝까지 버티고 잘 견뎌준 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공무원의 길로 들어서면 눈과 귀를 열어 탁상공론이 아닌 인간적인 마인드로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가고자 했던 길을 고집스럽게 선택한 것이 참으로 잘 했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나 또한 좋아서 선택했던 독서토론글쓰기논술 일을 삼십여 년 해왔어도 늘 즐겁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아들도 보았을 테니까.

그동안 시험 공부하느라 아주 힘들었겠지만 그 경험이 네 인생에 충분한 자양분으로 우렁차게 울어대던 애매미처럼, 꿈과 목표를 이루어 세상의 소리들을 귀 기울여 들으면서 잘 견뎌주길 바래. 선택의 원서접수, 1차 필기시험부터 2차 면접시험까지 합격통지서를 받은 속울음의 기쁨을 분명히 느꼈을 테고. 한 사람의 긍정성이 주위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지 알게 됐을 거야. 발령 받을 때까지 그 동안 마음 편히 쉬지 못했던 스스로에게,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했던 시간들을 잘 새겨보는 기회를 가져 보려무나.

사랑한다, 아들아! 이렇게 편지를 쓰게 해 줘서, 그리고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나영순

시인이자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증평지부장, 글바구니 도서관장을 지냈다. 현재 독서지도사로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지도강사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시집 〈쥐코밥상〉, 산문집 〈시간의 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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