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편지를(268호)

잘 지내는지요? 저는 요즘 자크 프레베르의 시집을 읽고 있어요. 저는 점점 자크 프레베르에게 매료되는 느낌이에요. 그는 샹송 ‘고엽’의 작사가로 잘 알려져 있지요. ‘고엽’에서 이렇게 노래해요.

“오!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네 / 우리가 다정했던 그 행복한 시절을 / 그때 인생은 지금보다 더 아름다웠고 / 태양은 지금보다 더 뜨거웠지 / …… / 그러나 인생이 사랑하는 연인들을 헤어지게 했지 / 아주 슬그머니 / 소리도 없이 / 그리고 바다는 모래 위에 남긴 / 헤어진 연인들의 발자국을 지워버리지.”

연인들은 바다의 모래사장을 걸어갔겠지요. 담소를 나누면서. 푸른 바다의 싱싱한 파도를 맞이하면서. 모래밭에는 나란히 발자국이 남았을 테지요. 그러나 그 연인들은 헤어졌고 태양보다 뜨거웠던 사랑은 식었겠지요. 그리고 그들이 남긴 지난 계절의 발자국을 바다가 슬그머니 지워버렸겠지요. 이 시에서 얘기하는 것이 사랑의 끝남만은 아닐 거예요. 변화라는 도도한 흐름 같은 것을 말하려고 한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의 기억이나 우리가 살았던 지난 계절도 흐르는 물의 일부이겠지요. 시간은 끊임없이 멀리 흘러가니까요.

이제 아침저녁이 좀 선선해진 것 같아요. 프레베르는 이렇게 노래했어요.

“가을은 겨울을 기다렸고 / 봄은 여름을 기다렸고 / 밤은 낮을 기다렸고 / 차(茶)는 우유를 기다렸고 / 사랑은 사랑을 기다렸고 / 나는 외로워 울었지.”

라고요. 프레베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들의 여름은 가을을 기다렸고, 우리들의 가슴은 사랑을 열렬하게 바랐던 것이지요. 이제 그런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아요. 허공에 가득 찬 풀벌레 소리, 밤하늘을 끝까지 깨끗하게 가는 달을 우리는 곧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내친 김에 오늘은 프레베르 얘길 더 하고 싶어요. 프레베르는 “시인이란 사람들이 꿈꾸고, 상상하고, 마음 속 깊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해요. 그래서 그는 아름답고,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것, 아이, 새, 꽃과 나무, 사랑과 자유를 제일로 쳤지요. 반대로 그는 위선적이고, 계산이 빠르고, 독선적인 어른들을 싫어했다고 해요. “나는 여자이고, 남자이고, 모든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만큼 나는 여자 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한다.”라고 프레베르는 말했지요.

프레베르의 사진첩을 보니 화가 호안 미로, 화가 피카소와 즐거운 표정으로 찍은 사진들이 있었어요. 호안 미로는 동심을 표현한 그림들을 많이 그렸고, 프레베르도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여러 편의 시에서 썼으니까 호안 미로와 프레베르 이 둘은 잘 통하는 마음들이 있었던 것이지요. 호안 미로전에 서 그의 그림들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나는 호안 미로가 쓴 문장이 무척 인상 깊었어요.

“그들(곤충들)은 마치 기호와 같다. 곤충들, 그들은 땅의 기호이다. 더듬이의 미스터리, 그 모든 것은 너무 이상한 나머지 그들 자신으로부터 떨어져나가 버린다. …… 그리고 새들, 이 동물들은 굉장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우리도 아이처럼 순수한 생각으로 못된 생각 없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새와 꽃을 아끼면서. 사랑과 자유를 바라면서. 더구나 가을이니까요. 평안하시길 빌어요.

문태준(文泰俊)

1970년 김천에서 출생했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처서(處暑)’ 외 9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등이 있다. 유심 작품상, 노작문학상,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서정시학작품상, 애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BBS 불교방송에서 PD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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