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도란도란(2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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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김종진 / 천안 동남구 문화동

나는 딸부자입니다. 큰딸은 가까운 곳에 살고 있고, 둘째는 부산에 살고, 셋째와 넷째는 경기도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둘째에게 많은 신세를 지고 살아온 날들이 정말 미안하고 면목이 없습니다. 큰 아이는 크다고, 어린 아이는 어리다고, 늘 둘째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집안일을 많이 시켰습니다. 학교 다닐 적부터 동생들을 데리고, 도시락까지 싸주며 알아서 다해서 나는 새벽밥 한 번 제대로 안한, 지금 생각하니 참 편한 엄마였습니다.

그런데, 그 야무지고 똑똑하던 둘째가 사위랑 같이 못살겠다고 합니다. 나는 심장이 ‘쿵  ’ 하고 떨어졌습니다. 누구보다 믿고 의지한 딸이었는데, 이혼을 하겠다고 하니 하늘이 내려앉습니다. 도대체 어쩌자고 삼십년을 참고 살아놓고 이 나이에 그러는지? 엄마인 나는 “지금껏 참고 살아온 거처럼 그냥 살아라.”고만 말했습니다. 딸의 사정은 조금도 생각 못해주고, 남의 눈이 무서워서, 남이 부끄러워서 딸 인생이 어찌 되든 상관없이 죽을 둥 살 둥 살아달라고 밀어붙였습니다.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같이 살 수 없다고 말하는 딸을 나무라기만 한 못난 엄마입니다. 이제 알고 보니 사위는 정말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인간이었습니다. 천하에 성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고, 책임감도 경제력도 없는데다가 성질은 자기 맘대로 이더군요. 내 딸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부처님이 보우하사 우리 딸이 마음 다치지 않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고 빌 뿐입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향림 언니에게
보리심 / 부산 수영구 수영동

우리 처음 만나던 날은 지난 5월, 하늘은 파랗고 초록이 눈부시게 곱던 날이었지요. 연초록 이파리들이 푸릇푸릇 자라 오른 걸 보니, 겨울산에 비해 예쁜 살이 포동포동 찐 오월의 산을 보며 힘든 줄도 모르고, 그날 참 많이 걸었지요.

언니와 만난 지 이제 겨우 100일 쯤 되었나 싶은데, 참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함안 저수지 오솔길을 걸었고, 여름휴가를 산골에서 함께 보내며 삶은 강냉이도 먹고, 생쑥으로 피운 모깃불 향기가 좋다며 마당에 앉아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았지요. 산골에서의 1박 2일 동안 따뜻한 집밥을 함께 먹으며, 더 빨리 정들어갔지요. 언니는 시골을 가면서 수박, 복숭아, 크고 맛있는 조기를 열 마리도 넘게 사오셨지요. 어른이 계신다니까 할머니들께서 좋아하시는 걸 많이도 사오셔서 우리 모두는 맛있게, 배부르게 먹고 즐거운 휴가를 행복하게 잘 보냈지요.

그리고 웅진 문학상 공모전에 글을 투고하기 위해 일부러 공주 여행도 했지요. 마산에서 출발하여 잠시 쉬러 들어간 금강휴게소. 뒤로 물이 흐르고 화단에는 천사의 나팔과 능소화가 다소곳이 피어있었고, 빗방울이 운치 있게 떨어지고 있었지요. 언니는 휴게소 뒤로 흘러가는 물을 보며 정말 멋있다고 감탄을 했지요. 물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떨어지고 있으니 황홀감에 빠졌지요. 다시 공주를 향해 달려가던 고속도로 곳곳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예쁜 꽃과 풀들이 곱게 수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날이었지요.

여행을 즐겁게 하고 와서 하루하루 미룬 글쓰기가 마감일이 임박하여 발을 동동거리며 겨우 원고를 보내기도 했구요. 언니 덕분에 좋은 공모전에 참여도 해 보는군요. 언니가 예고도 없이 찾아온 날, 얼마나 반갑고 좋았는지 모릅니다. 아무 준비도 없이 대접을 못해드렸지만 함께 할 수 있었음만으로 충분히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언니는 예순이 넘었고, 저는 곧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사람을 만나고, 기적처럼 우리가 만날 수 있었음은 전생의 좋은 인연공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사 만났으니 좋은 인연 소중하게 잘 이어가요. 우리 남은 생을 예전보다 더 보람 있는 날이 되게 만들어가요. 살아있는 가슴으로 죽는 날까지 아름다운 글을 쓰며 노년의 주름살을 곱게 그어가요.

 

소중한 친구
이미주 / 서울 노원구 상계동

내게는 소중한 친구가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이 학교를 다니며 친하게 지냈는데, 결혼을 하고도 가까이 살면서 서로 오가며 잘 지내고 살아간다. 나는 사업을 하는 남편을 만나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힘들었다. 친구는 직장 다니는 신랑이라서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알뜰하게 살림을 잘 살았다.

나는 젊은 날에 직장 다니면서 월급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정말 부러웠다. 힘들 때마다 친구에게 마음을 터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위안을 받았다. 신용 불량자가 되어 집이 법원에 넘어갈 지경이 되었을 때, 친구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우리의 인연은 오래 되었지만, 아직까지 마음 상하는 일없이 한결같이 잘 지낸다.

남편이 사업일로 정말 힘들어 할 때, 마음이 힘들어 기댈 곳이 없었다. 그때 친구는 힘들 때 일수록 부처님께 간절한 기도가 더 잘되니, 같이 가서 기도 하자며 내 손을 잡고 일부러 절에 가 주었다. 초파일이 다가오는 어느 무렵이었다. 친구가 등 하나 달자고 하여 33인등을 달았는데, 부처님의 가피인지 속을 썩이던 가게 일이 조금 풀리는 듯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졌다.

지금 나는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언제나 전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좋다. 우리는 가끔 만나서 차 한 잔을 할 때도 있고, 저녁식사를 하기도 한다. 좋은 인연의 오래된 친구가 있어서 감사한다. 언제나 나를 위로해 주는 친구와 함께 가을이 오면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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