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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시론> 욕망의 끝은 파멸
  • 윤창화 민족사 대표, 당송시대 선원 연구자
  • 승인 2017.09.2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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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끝은 파멸
권력 무상이 보여줘
욕망에 구속되지 않아야

기원정사의 종소리/
제행무상의 울림이 있나니/
사라쌍수의 꽃 색(色)/
성자필쇠(盛者必衰)의 이치를
나타낸다.

교만한 자 오래 가지 못하고/
그저 봄밤의 꿈과 같으니,
용맹한 자도 결국 사라지고 /
모두 바람 앞의 티끌과 같나니...

유명한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 고전문학 소설의 하나인 〈헤이케 모노가타리(平家物語)〉 첫 장에 나오는 서시(序詩)로, 찰나적 부귀영화에 대한 불교적 무상관이 깊게 깔려 있는 시구이다.

〈헤이케 모노가타리(平家物語)〉는 1240년 경 지어진 작품이다. 일본 중세 영웅 서사시로서, 무사(武士) 타이라 키요모리(平淸盛)와 그 가문, 25년 동안 일본 천하를 쥐락펴락했던 헤이케[平家] 일족의 흥망성쇠를 그린 작품이다.

헤이케(平家) 가문을 일으킨 타이라 키요모리는 그저 중급 무사에 불과한 인물이다. 그는 당시 천황가의 권력 다툼을 계기로 급속 출세하여 태정대신에 올랐다. 이어 고시라카와 천황을 무력화시키고 모든 실권을 장악했는데, “나는 태정대신에까지 오르고 내 자손들의 지위는 용이 구름 위에 오르는 것보다 빠르다.”라고 공언할 정도로 권력과 영화를 지겹도록 누렸다.

또 그는 자신의 딸을 다카쿠라 천황에게 시집을 보내서 안토쿠 천황을 낳았다. 한 천황은 사위이고 한 천황은 외손자, 그는 그야말로 절대적인 권력자였다.

그는 일개 무사로서 출세가도를 달렸다. 25년 동안 일본 천하를 마음대로 했지만, 결국 욕망이 지나쳐서 민심을 잃게 되었고, 이어 겐지(源氏:미나모토 씨)와 미나모토 요시쓰네(源義經)에게 밀려서 수도인 교토에서 쫓겨서 고베로, 고베에서 히로시마로, 히로시마에서 다시 혼슈(本州, 本土)의 끝인 시모노세키까지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육지의 끝자락 시모노세키, 이제는 더 이상 쫓겨 갈 곳도 없었다.

타이라 키요모리 군(平氏軍)은 총집결하여 시모노세키 부근인 탄노우라[壇の浦] 앞바다에서 미나모토 요시쓰네 군과 최후의 해전(海戰)을 벌였다. 전투는 하루 종일 이어졌다. 그러나 타이라 군은 대패했다. 일족은 남녀 노소할 것 없이 모두 바다에 투신했다.

8세의 어린 안토쿠 천황도 할머니 타이라노 토키코의 가슴에 안겨서 푸른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전멸했고, 살아남은 사람은 여자 몇몇에 불과했다. 일족은 탄노우라[壇の浦] 앞바다의 귀신이 되었다.

이것을 ‘겐페이 전쟁(源平合爭, 1180~1185)’이라고 한다. 결국 욕망의 끝은 일족의 전멸, 파멸로 끝났다. 그들의 죽은 영혼을 달래고 있는 신사(神社)가 시모노세키에 있는 아카마진구(赤間神宮)이다. 이 신사는 ‘권력은 너무나 무상하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신사(神社)이다. 이와 비슷한 성격의 작품으로 서양의 〈일리아스(Ilias)〉가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과제는 ‘욕망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인격’이라고 할 수 있다. 파멸로 끝나지 않은 욕망은 없다. 욕망의 끝은 언제나 아쉽게도 파멸이었다.

윤창화 민족사 대표, 당송시대 선원 연구자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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