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방의 한 농협이 수입바나나를 판매해 농민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국산농산물의 판로확대는 외면한 채 수익에만 급급한 나머지 농협이 농민들의 경제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탓입니다. 실제로 농협공판장에서 지난 5년간 수입농산물을 판매해 1조 1천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농민의 편에 서서 움직여야 할 농협이 오히려 국산농산물을 외면하게 만드는 이러한 수익위주의 판매행위는 농협의 본분을 저버린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농협은 성난 농민들의 항의를 듣고서야 자신들이 본분을 일탈했음을 시인하고 사과했습니다.

본분(本分)이란 사람들이 저마다의 직분에 따라 마땅히 의무적으로 지켜야 할 처신을 말합니다.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경제인은 경제인대로, 법조인은 법조인대로 지켜야 할 의무를 망각한 채 불법과 일탈을 일삼는다면 우리 사회는 크게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교사가 교사의 직분을 망각하고 학생이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저버린다면 올바른 사제관계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본분을 벗어나는 행위는 엄밀히 말해 일탈(逸脫)로 간주되기 마련입니다. 사회학에서 일탈은 범죄의 뜻보다 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탈은 사회로부터 적대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으로 취급됩니다. 다시 말해 본분을 벗어난 일탈에 대해 사람들은 관용적이지 않고 포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게 일반적 형태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본분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출가한 스님들은 오로지 깨달음과 전법(傳法)을 위해 매진하는 것을 본분사(本分事)로 삼습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방종(放縱)으로 여겨 매우 엄하게 다스리고 있는 것이 불교 전통입니다.

이와 관련해 사명대사의 입산기(入山記)는 출가승의 본분사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산길을 가다 보니, 웬 스님이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산길을 따라 헐레벌떡 뛰어내려오고 있었다. 어인 일인가 싶어 지켜보니, 그 스님은 계곡물에서 배춧잎 하나를 건져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스님의 뒤를 좇아 가보니 암자가 나왔다. 거기까진 무려 십리나 되는 길이었다. 그 스님에게 물었다. ‘십리나 되는 길을 고작 배춧잎 하나 주우려고 내려오셨습니까?’ 그러자 스님이 화를 내며 말했다. ‘세상이 내리는 모든 것이 시물(施物)이거늘, 스님들이란 무릇 공짜로 그것을 먹고 사는 자들이다. 어째 배춧잎 하나라도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단 말이더냐?’ 나는 그 말을 듣고 입산을 결정했다.”

사명대사가 말씀하시는 이 스님은 아마도 스님들의 대중공양을 책임졌던 분이었던 듯합니다. 배추를 씻다가 어찌하여 잎 하나가 계곡물에 떠내려가자 이를 건져내기 위해 십리나 되는 길을 뛰어와 결국 배춧잎 하나를 건졌습니다. 누가 지켜본 것도 아닐 터이고, 그깟 배춧잎 하나 떨어져 나갔다 해서 대중공양에 지장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러나 스님은 어떠한 시주일지언정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는 불가의 가르침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본분을 지킨 이 스님의 행동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가르침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본분을 지키는 사람의 향기는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논어(論語)>에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 난향백리(蘭香百里) 묵향천리(墨香千里) 덕향만리(德香萬里)라 하였습니다.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술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 난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묵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덕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덕이란 본분을 지킬 때 만들어지는 인품입니다. 본분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사람들이 만 가지 덕을 쌓다가도 단 한 번 본분을 저버렸을 때 그간 쌓아 놓은 인덕이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특히 우리 사회의 지도자를 포함해 공인일수록 본분을 망각하면 그 책임과 지탄이 엄청 따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본분을 잃지 않고 늘 자기 직분을 다한다면 그 삶은 더욱 빛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 이르길 “지혜로운 초발심수행자가 해야 할 일, 언제나 감관(感官)을 살펴 지킬 것, 있는 것으로 만족할 것, 계율을 청정하게 지킬 것, 맑고 늘 칭찬하는 도반을 가까이 할 것, 항상 자비로울 것, 자신의 본분사에 충실할 것, 이것을 실천해가면 늘 기쁨이 따르는 가운데 마침내 괴로움에서 벗어나리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언제 어디서나 본분에 충실하다면 누구와 다툴 일도 갈등을 겪을 일도 없습니다. 오히려 주위로부터 무한한 신뢰와 존경을 받게 됩니다. 역대 조사들은 이러한 이유로 후학을 제접(提接)할 때 절대로 분본사를 놓지 않도록 경책하였습니다. 종풍을 크게 떨쳤던 배경에는 본분사를 얼마나 잘 지켰느냐가 있었습니다. 나의 성공 여부도 본분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채 본분을 일탈하면 지탄을 받게 될 것이며, 어느 경우에라도 본분을 지키려 애쓴다면 사람들은 무한신뢰와 공경을 보내줄 것입니다. 본분 지키기를 화두로 삼아 더욱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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