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도란도란(2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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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주는 행복

김해규 / 충북 단양군읍 별곡 5길

여행을 좋아하는 저는 주말마다 전국을 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곤 합니다.

전라도로 여행을 갔을 땐 버스를 놓쳐 히치하이킹을 했고, 마음 좋은 지역주민을 만나서 지역의 멋진 곳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기차역에서는 맛있는 뻥튀기를 옆에 앉아계셨던 할머니와 나누어 먹었고, 서울 광장시장으로 놀러갔을 땐 빈대떡 집에서 옆 테이블에 앉아계셨던 할아버지들이 주시는 막걸리 한 잔을 받아 친구와 나누어 먹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저는 사람이 주는 정과 행복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저의 직업은 사회복지사입니다. 제가 다니는 곳은 노인 · 장애인복지관으로 어르신들도 장애인들도 만나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저는 하루를 만들어 갑니다.

따뜻한 밥 한 그릇에 행복을 느끼거나, ‘함께’라는 울타리 안에서 평온함을 느끼는 분,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우며 다른 이에게도 배움을 널리 알리는 분 등 복지관은 많은 분들이 이용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 분들을 통해서 저는 인생을 배우기도 하고, 여행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많은 곳을 여행하며 느꼈던 기쁨과 하루하루 쌓여가는 정 속에서 오늘 하루도 사람이 주는 행복과 삶을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업장 녹인 티베트 수미산(須彌山) 순례

무설심 / 서울 서초구 방배동

나는 어릴 때부터 수행처를 찾아 영원히 마르지 않을 나의 내면을 불법(佛法)으로 충전하고 싶었다. 그런 나를 이끈 곳은 경전과 불교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수미산[티베트 서쪽 카일라스 산]이었다. 수소문 끝에 오래 전 절판된 책 〈티베트의 영혼 카일라스〉를 손에 넣고는 환희심이 일어 잠 못 이루었고, 책을 읽다가 아시아에서 가장 성스럽고 신령한 산이란 걸 알고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겠다.’고 발원했다.

내가 좋아하는 ‘구하고자 하면 반드시 얻어진다[有求必應]’는 말처럼, 2016년 6월 경 그토록 염원하던 수미산 순례의 기회를 얻었다. 16박 17일 간의 수미산 순례길을 동행한 이들의 대부분은 트레킹 전문가였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나는 오직 신심 하나만 믿고 순례길에 올랐다.

카일라스 산 순례길은 멀고도 험했지만, 신심이 더욱 굳건해지는 순례였다. 목욕을 하고 씻기만 해도 전생의 업이 사라지고, 호숫가를 돌면 업장이 소멸된다는 전설이 깃든 마나사로바 호수, 다리북 사원,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아웃코라 될마라(5668m, 일명 업장고개)를 걸으면서 신비한 에너지가 전해 오는 걸 느꼈을 때, 내 몸과 마음은 환희심으로 가득했다.

특히 업장고개를 넘을 때, 나 자신과 힘든 싸움을 벌였다. 그나마 고산병을 겪지 않아 다행이었다.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알게 모르게 쌓은 업장이 녹아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힘들어 주저앉고 싶었지만, 오랜 염원이었기에 멈출 수 없었다. 순례길에서 나를 새롭게 탄생시킨 곳은 ‘조장(鳥葬)터’였다. 순례자들은 이곳에 자신의 머리카락 · 발톱 · 손톱 · 옷 등을 묻는다. 이번 생을 마감하고 고개를 넘으면 다시 태어난다는 믿음 때문이다. 나도 손톱을 묻었다. 이전의 나는 죽었고, 고개를 넘은 나는 새로운 나로 태어난 것이다.

환생한 몸을 이끌고 오방색(五方色) 깃발인 타르초가 뒤덮인 카일라스 산 정상에 올랐다. 모진 고통을 견디고 정상에 선 순간, 해냈다는 기쁨과 함께 불자로서의 내 모습을 뒤돌아보게 됐다. 옛 고승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실크로드를 걸어서 인도 구법여행을 가는 이유를, 수미산 성지순례를 통해 깨달았다.

순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이번 생에서 꼭 마쳐야 할 어려운 숙제를 끝낸 듯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순례 후 집에 돌아와 3일 동안 죽은 듯이 잠만 잤다. 눈을 뜨니 16박 17일 간의 성지순례가 꿈을 꾼 것만 같았다. 수미산은 내가 불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쳐 준 큰 스승이었다. 수미산 순례의 기회가 다시 한 번 주어지길 또 염원해본다.

 

내 고향 안동이 그립다

안동 거사 /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부흥로

“할매이껴!” 하고 들리는 투박한 말로 인해, 마음속으로부터 정겹다는 생각이 든다. 엄청 독특한 억양에다 간단하고 축약된 말씨로 인해, 주위에서 금방 알 수 있는 내 고향 안동 말씨.

우리나라에서 가장 편안한 동쪽이 ‘안동(安東)’이라던가. 나라의 골격인 태백산맥 끝자락에 소백산맥의 오른쪽, 낙동강 상류에 위치하여 풍부한 수자원을 바탕으로 예로부터 역사에 기록된 찬란한 문화와 학문이 가장 발달한 고장.

‘안동’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꼿꼿하고 의리 있는 선비정신으로 무장된 양반고을, 역사와 전통을 굳세게 지켜온 이름난 문중과 집성촌을 간직한 고장이다. 심신수양을 통해 성인(聖人)으로 나아가야 할 가장 큰 덕목인 ‘인(仁)’을 실천하고자 하는 선비정신으로 무장한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산재해 있는 문화재들, 어른들께 깊이 고개 숙여 마음속으로부터 인사드리는 행동을 어릴 때부터 뼈 속 깊이 가르치는 밥상머리 교육의 고장 안동.

고등학교를 마치고 떠난 지 벌써 45년이 넘는 이 시점에 돌이켜보니, 삶의 일선에서 정신없고 숨 막히도록 바쁘게 살아오면서, 휘몰아치는 생존의 소용돌이 속에서 필사적으로 경쟁하면서도 뜨거운 열정의 그 근원은 양반·선비정신이 아니었을까?

지내고 보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는 한순간이었으나, 남은 세월은 고향을 찾아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본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 고향 안동의 주산인 영남산, 이 산의 동쪽 자락에 고요히 앉아 있는 해동사(海東寺)에서 스님의 찬연한 염불소리 듣고 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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