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손끝에서 피어나는 마음(267호)

시집간 딸에게 보내는 편지

 

시집간 지 한 달이 되는구나.

결혼하기 한 달 전쯤, 출장을 다녀오니 네가 엄마와 함께 쓰는 침대로 여느 때처럼 뛰어 들어와 이내 잠들더구나. 코까지 골면서. 이달 말이면 이런 일도 없겠구나 생각하니 속상하더라. 사돈댁엔 모두 흉이 될 텐데, 일찍 가르치지 못한 게 후회도 되고.

서른여섯에 결혼해 마흔이 다 돼 얻은 딸인데 딴 집으로 보낸다니 무척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너를 늦게 얻은 뒤 주변에서 “언제 키울 거야?”는 얘기를 참 많이 들었다. 키우며 한 번도 속 썩을 일 없었다. 하루하루 자라는 네 모습이 우리에겐 큰 선물이었다. 그래서 사위만 믿고 따라가는 네가 내 딸인가 싶었고, 밉기까지 했다.

인류가 뭐 이렇게 불합리한 제도를 만들어 놨나 싶었다. 생판 모르는 집 여식 애를 데려오는 저 사돈댁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속 타들어가는 심정을 알기나 할까. 이런 어려운 일들을 다들 어떻게 해왔는지 그저 야속하기만 했다. 돌아보니 너의 엄마 또한 이랬을 거 아닌가 싶었다. 나만 믿고 따라나섰을 네 어미가 마냥 예뻤다.

이 만남을 우리는 존중했다. 네가 좋아서 처음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하고 싶지 않을 일을 많이 하게 했다. 하기 싫은 공부 뿐 아니라, ‘하지 말라’는 말만 했던 것 같다. 이렇게 일찍 시집 갈 줄 알았다면 많은 가르침을 줄 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 이 집을 떠나 시집으로 들어가는 네게 선물을 주어야겠다. 평생 살아가며 너를 지켜 줄 무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시집의 ‘시(媤)’자는 중국어 사전에 올라 있지는 않은 걸 보면 중국어는 아니다. 아마 우리네 선인들이 오랜 경험을 토대로 만든 말인 듯싶다. 파자하면, 계집 녀(女), 밭 전(田), 마음 심(心)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랑에게 쓰는 ‘장가든다.’ 는 말은 장인장모가 사는 집에 데릴사위처럼 들어가 함께 사는 유목민의 풍습에서 비롯되었을 것 같다.

‘시집간다.’는 시댁으로 딸이 들어가 살게 된 농경사회에서 시작한 것 같다. 온갖 풍속이 다르기만 한 시댁에 들어가서 낯설기만 한 생활을 해야 하기에 그 고초를 ‘여자가 마음의 밭을 가는 일’이라고 표현한 거로 보인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음을 강조한 말이다.

일본 다도(茶道)에서 즐겨 쓰는 말 중에 ‘일기일회(一期一會)’가 있다. ‘당신과 마주한 이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일생에 단 한 번 뿐인 시간이다. 최고로 당신을 모신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 말은 일본 전국시대 말기, 다실(茶室)에 웃으며 마주 앉은 사무라이와 손님이 차를 마신 후 어느 칼날에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기에, 이 만남을 최후인 양 정성을 다한다는 데서 시작되었다.

첫 번째 선물은 진심(眞心)이다. 일생에 다시 만나지 못할 일기일회의 인연을 만났다. 매사에 진심을 다해야 한다. 마음이 앞서면 몸이 따른다.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마지막 만남이라고 마음먹으면 남는 것은 오직 진심 밖에 없다. 한 치도 거짓이 있을 수 없다. 진심을 다하면 손해 볼 일도 없다.

일기일회, 이 말은 불가에서도 자주 쓴다. 법정 스님은 ‘내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이 이루어진 시간이므로 최선을 다 하라.’고 그의 법문집을 통해 설파했다. 수석(壽石)하는 이들은 ‘일생일석(一生一石)’이라고 쓴다. ‘평생을 살아도 좋은 돌 하나 가지기 어렵다거나, 일생을 통해 숱하게 많은 돌을 만나지만, 진정 좋아하는 돌은 하나 밖에 없다.’는 뜻으로 말이다. 허튼 마음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정심(正心)이 두 번째 선물이다. 내가 하려는 이 일이 바른 일일까를 생각해야 한다. 세상 모든 것에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름은 그 업의 본질을 나타낸다. 이름에 맞는(正名) 언행을 하면 그게 바른 일이 된다. 며느리는 며느리답게, 엄마는 엄마답게 살면 된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도 했다. 당장에는 그게 불편해도 결국 바른 마음을 가지고 살면 모든 일이 바르게 된다. 바르면 후회가 없다. 그게 마음 편하게 사는 길이다.

톨스토이는 여행 중 농부를 만나 세 가지 질문을 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냐? 답은 ‘바로 이 순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함께 만나고 있는 바로 이 사람’,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만나는 이 사람에게 최선을 다 하는 일’이라고 했다.

세 번째 선물은 일심(一心)이다. 사람이 살아가며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일이 처음 가졌던 마음(初心)이다. 온통 사랑으로 감싸 안았을 첫 만남을 기억해라. 그리고 그때 가졌을 그 마음을 평생 동안 그때 그 마음처럼 간직하려고 애써야 한다. 살다보면 마음을 흩트리려고 온갖 시험이 다가온다. 사람은 한결같음에서 빛난다.

 

조성권

현재 아주경제 논설위원. 경제신문 이투데이 선임위원, 예쓰저축은행장, 국민대 겸임교수, 우리은행 홍보실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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