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를 빛낸 세계 불교유산(267호)

불교에서는 종소리에 청정의 깊은 의미를 담았다. 곧 범종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청정무구의 삼매에 들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산사의 종소리를 스치듯 그저 듣기만 해도 청정의 경지를 체험하게 되는 셈이다.

현전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범종은 725년에 만들어진 상원사 동종이다.

불자든 아니든 산사를 찾는 이는 누구나 종소리를 기억한다. 절에 가면 으레 종이 있고, 예경과 함께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어느 곳보다도 종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는 곳이 곧 절간이다. 그런데 왜 종을 치는 것일까? 해질녘 산사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그저 풍경 속의 낭만으로 지나치기에는 소홀함이 많다. 그 종소리에는 청정무구의 심오한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불교사찰에서 사용하는 종을 가리켜 범종(梵鍾)이라 한다. 범(梵)은 더러움이 없는 청정함을 의미한다. 범종소리는 곧 청정무구의 소리인 것이다. 청정(淸淨)이란 불교에서 파생된 용어이다. 맑고, 깨끗하고, 속됨이 없고, 허물이 없고, 집착하지 않고, 번뇌에 물들지 않음을 의미한다.

청정은 쉽게 이룰 수 없다. 여래의 해탈과 같은 큰 깨달음의 경지이기 때문이다. 이에 불교에서는 종소리에 청정의 깊은 의미를 담았다. 곧 범종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청정무구의 삼매에 들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산사의 종소리를 스치듯 그저 듣기만 해도 청정의 경지를 체험하게 되는 셈이다. 무심코 들은 청정의 묘음에 마음이 맑아지는 것은 결코 소홀할 수 없는 심오함 때문일 것이다.

범종의 출현과 전래

애초 불교의 종주국 인도에서는 범종이라는 의식구가 없었다. 그러나 종문화가 널리 퍼진 동북아국가에 불교가 전래되면서부터 사찰에서 범종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기 이전, 이미 은(殷)왕조부터 이른바 고동기종(古銅器鍾)이 사용되었다. 서주시대와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서한시대까지 다양한 고동기 악종(樂鍾) 문화가 발달했다. 요(鐃) · 정(鉦) · 박(鎛) · 용종(甬鍾) · 순우(錞于) 등의 다양한 고동기종들이 주연 악기나 제사 의식구로 이용되었다. 바로 이러한 환경은 불교의 전래와 더불어 불교의 범종이 출현할 수 있었던 비옥한 토양이 되었던 것이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기원을 전후한 시기가 유력하다. 동한(東漢) AD 67년에 인도의 승려 가섭마등(迦葉摩騰), 축법란(竺法蘭) 등이 명제(明帝)의 사신 채음(蔡愔)의 간청으로 불상과 경전을 흰 말에 싣고 뤄양에 들어왔다. 이에 명제가 불교를 신봉하여 8년 후에 절을 세워 백마사라 하였는 바 곧 중국 최초의 불교사원으로 전한다. 하지만 당시부터 범종이 즉시 사용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동한시대에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널리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 기록들이 전한다.

· 동한 최식(崔寔)의 〈정론〉(당대 이선이 인용),
“종소리 울리면 낙양성 안에 밤길 걷는 자 없도록 하라”

· 동한시대 〈문선〉권 28 방가행(放歌行),
  “해가 어찌 지지 않으리요 오히려 종소리 돌아오지 않았네”

이러한 기록은 불교전래 이후 중국의 불교사원에서 범종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는 단초이다.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범종은 현재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진태건(陳太建) 7년(A.D.575)명 종이다. 이 종은 양식과 명문의 추이로 보아 중국 범종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고 391mm의 소형크기인 이 종은 2개의 용두와 여의보주로 고리가 조형되었고, 몸체의 중심부에 연화당좌가 새겨졌다. 이외 다른 장식문양이 없어 고졸한 양식특성을 보여준다. 이 종이 언제 일본으로 전래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중국 남방지역의 양식특색이 다분한 이 종의 형태는 훗날 일본 범종의 양식적 시조가 되었음에 이견(異見)이 없다.

용울음과 범종의 기연

동아시아 국가 대부분 범종의 고리에는 용이 조각되었다. 하여 이를 한자로 용뉴(龍鈕)라고 한다. 즉 ‘용뉴’라 함은 종고리가 용의 형상으로 조형된 것을 말한다. 이렇게 용을 종에 장식한 까닭은 우렁찬 범종소리를 얻기 위함이었다. 그 연유를 동한시대 역사학자 반고(班固, AD, 32~92)가 지은 〈동도부(東都賦)〉를 양(梁)의 소명태자(昭明太子)가 주해한 〈문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용의 아홉 자식에 대하여 설하길…… “바다 속에는 큰 물고기가 있는데 고래(鯨魚)라 하고 또한 해변에는 짐승[용의 자식]이 있으니 포뢰(蒲牢)라 한다. 본디 포뢰는 고래를 두려워하여 고래가 나타나면 곧 큰소리를 내어 운다. 무릇 종은 소리가 커야 하므로 그 위에 포뢰를 만들고 경어 형상을 깎아 당봉(撞棒)으로 삼았다.”
〈문선〉, 권1, 동도부(東都賦)

위 내용은 용이 종고리에 조형된 연유를 명쾌하게 밝혀준다. 그런데 이와 같은 범종과 용(포뢰)의 필연관계는 〈삼국유사〉에도 기록되었다.

……앞에는 비구상 천여 구가 둘러서고, 아래에는 자금종 3구가 배열되었다. 모두 포뢰(용)를 종각에 두고, 고래 모양을 당(撞)으로 삼았다. 바람이 불면 종이 울리고, 선요승(旋遶僧)은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하며, 범음(法音)이 은은하게 들리는데 이 모든 관여가 종에 있으랴.
〈삼국유사〉, 제3권, 「사불산 · 굴불산 · 만불산」

이상의 내용에서 용의 아홉 자식 중 하나인 목청 좋은 포뢰(蒲牢)가 범종의 고리로서 영원한 임무를 부여 받게 된 인과의 필연스토리가 성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계의 범종들

아시아권역의 불교국가에서는 다양한 양식의 범종이 조성되었다. 범종의 공통된 양식이 있다 하더라도 각 나라의 미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저마다 색다른 형태로 발달했다. 특히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불교국가에서 범종양식의 두드러진 차이점을 보여준다. 불교가 전래된 각 나라별 특징과 주요 작품을 일별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범종

성덕대왕신종(771년), 일명 에밀레종은 조형미 · 주조기술 · 종소리의 삼박자가 우수한 천하제일의 명종이다.

오늘날에 전하는 가장 오랜 한국종은 세장한 조형과 뛰어난 주조 솜씨를 엿볼 수 있는 상원사동종(725년)이다. 또한 성덕대왕신종(771년)은 조형미 · 주조기술 · 종소리의 삼박자가 가장 우수한 천하제일의 명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의 전통범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8세기의 신라종이 가장 우수한 양식과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제작기술에서 그 이전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시행착오와 노하우가 축척된 결과임을 암시한다.

한국종의 창의적인 형상은 이미 신라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신라종의 절정이 곧 한국종의 전형양식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8세기 한중일 삼국종을 비교해보면 독창적인 조형감각은 단연 신라종이다. 오늘날 한국종이 세계적으로 “코리안 벨(Korean Bell)”이라는 학명을 얻게 된 것도 신라종의 독창적이며 예술성이 다분한 조형미 때문이다.

신라종의 고리(종 상부에 형성된 종고리)는 한 마리 용과 음통으로 조형되었다. 바로 이 점이 두 마리 용으로 형성된 동북아 국가의 범종들과 다른 점이다. 성덕대왕신종(771년)의 고리에 조형된 용의 모습은 사실주의 조각의 절정을 보여준다.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몸통을 구부린 채 힘차게 차오르는 생동감은 마치 상상이 아닌, 용의 실물을 보는 듯하다. 종을 매달기 위한 고리의 기능성을 고려하면서도 지극히 자연스런 동세표현에서 세계 어느 종과도 비교할 수 없는 조형미를 느낄 수 있다.

신라 범종의 몸체[鍾身]는 약간 불룩한 옹기 항아리를 거꾸로 세워 놓은 것과 같은 형상이다. 이러한 배흘림 형태의 종 몸체는 지구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양식이다.

한국범종 장식요소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것이 곧 당초문[덩굴무늬]이다. 보상화라 불리는 꽃과 이파리가 유연한 곡선의 줄기에서 돋아나 어우러진 덩굴무늬는 미려한 예술적 감각과 무시무종의 상징성을 보여준다.

한국 범종 장식의 클라이맥스는 비천상이다. 성덕대왕신종에는 허공에서 방금 날아온 자태의 천인상이 새겨졌다. 유려한 천의를 날리며 화려한 영락으로 치장한 모습에서 감출 수 없는 우아미를 느낄 수 있다. 손에 향로를 들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의 모습은 망자를 아미타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천인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중국의 범종

오늘날에 전하는 중국의 전통종은 용처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왕궁이나 관청에서 시각을 알리거나, 집회 또는 관례(官禮)를 위하여 만든 조종(朝鍾), 둘째는 불교사원에서 의식구로 사용한 범종, 셋째는 도교사원에서 사용한 도종(道鐘)을 말한다. 그러나 명칭은 용도상의 구분일 뿐, 실제 종의 외관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불교와 도교를 상징하는 장식문양의 소재가 약간 다를 뿐이다.

중국 서안 비림박물관에 있는 경운명 동종(711년).

전형적인 중국범종의 생김새는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종고리에 두 마리의 용이 조형되었다. 용두를 역방향으로 향하고 몸통이 서로 꼬인 조형으로 종고리가 형성된 모습이다. 그러나 한국종과 같이 음통이 장식된 사례는 전무하다. 종의 몸체는 상부가 둥글고 하부가 팔(八)자로 벌어져, 마치 서양종과 유사하다.

중국종의 가장 독창적인 특징이 곧 종신(鍾身) 하구에 형성된 파곡(波曲)이다. 여덟 개의 파곡으로 조형된 것이 보통이나 6개의 형태도 나타난다. 파곡의 깊이는 크지 않지만 마치 꽃잎이 벌어진 것과 같이 깊이가 심연한 사례도 있다. 바로 이것이 중국종의 독창적인 조형요소이다.

중국 북경 대종사 영락대종의 윗부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무거운 중량의 범종이 중국 북경 대종사의 영락대종이다. 15세기 초에 주조된 이 종은 높이 675cm, 구경 330cm, 무게 46.5톤의 거대 위용을 자랑한다.

이 종은 쿠데타로 왕위에 오른 명나라 3대 황제 주체가 수도를 북경으로 옮긴 후 만든 범종이다. 영락제는 정권찬탈과정에서 조카 건문제의 충신들을 숱하게 죽였다. 주체는 자신의 옥좌가 수많은 주검 위에 세워졌음에 큰 번뇌를 느꼈다. 이에 숙청한 모든 망령을 제도하기 위해 참회의 의미로 국사에게 감독을 명해 이 종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이 종은 문양이 없고 종신의 안팎으로 불교경문 100여 종 약 23만자가 양각으로 새겨졌다. 내부 하부에는 범자문이 빼곡히 장식되었다. 종고리에도 용이 조각되지 않고 오로지 경문만이 가득히 새겨졌다. 심지어 종을 건 고리까지도 범자와 경문의 돋을새김이 가득 찼다. 주체가 죽였던 숱한 영혼들만큼이나 가득 찬 경문의 장엄이다.

15세기 초에 주조된 중국 북경 대종사 영락대종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무거운 범종이다. 높이 675cm, 구경 330cm, 무게 46.5톤.

일본의 범종

오늘에 전하는 전통 일본범종은 삼국 중 가장 많다. 한국과 중국은 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종들이 파손되거나 녹여져 재활용되는 수난을 겪었다. 반면 일본은 외세의 침략을 받지 않은 탓으로 오랜 역사의 전통범종이 많이 전해진다. 그 중에는 한국에서 약탈한 범종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일본 범종의 생김새는 한국 및 중국과는 사뭇 다른 점이 많다. 일본 범종의 고리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두 마리 용과 여의보주로 조형되었다. 그러나 용의 다리가 생략되었고, 몸통의 꼬임도 없는 단조로운 형태가 특징이다. 하나의 몸통에 두 개의 용머리가 역방향으로 향하고 중심부에 화염보주가 장식된 형상이다.

일본종의 몸체는 마치 컵을 엎어놓은 형상이다. 그런데 일본종의 가장 혁신적인 조형 특징은 종뉴(鍾鈕)의 수가 많다는 점이다. 중국 범종에는 뉴가 없고, 한국 범종에는 36개가 전형이다. 그러나 일본 범종에는 최소 60개(當麻寺鍾/7C말)에서 최대144개(東大寺鍾/752)까지 많은 뉴가 장식되었다. 그런데 돌출된 뉴의 형태가 아무런 문양도 없는 단순한 인뉴(印鈕)형상이다. 이것이 한국종과 다른 점이다. 즉, 뉴의 수가 많을 뿐 한국종과 같이 연꽃이나 꽃봉우리와 같은 예술적 상징적 조형 의도는 엿볼 수 없다.

현전하는 일본 범종 가운데 주목되는 작품은 동대사(東大寺/도다이지) 범종(751년), 방광사(方廣寺/호코지) 범종(1614년), 지은원(知恩院/지온인) 범종(1636년) 등 3대 대종을 들 수 있다.

일본 동대사 범종은 나라시대 범종 가운데 가장 크다. 높이 386cm, 구경271cm, 무게는 약 27톤.

동대사 범종은 나라시대 범종 가운데 가장 큰 종으로 현재 동대사 대불전 동쪽 언덕 위에 위치한 종각에 걸려 있다. 〈남도칠대사순례기〉의 기록에 의하면, 이 종은 천평승보2년(750년) 5월에 만들기 시작하여, 동3년(751년) 12월에 1차 주조가 실패하고, 다시 동4년(752년) 정월에 원형을 만들기 시작하여 동년 윤3월에 완성되었다. 이 종은 높이 386cm, 구경271cm, 무게 약 27톤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이다. 훗날 이 종을 그대로 모방하여 더욱 큰 대종 2구가 만들어졌다.

교토 방광사 범종은 1614년 동대사종을 모방해 만들었다.

교토 방광사 종각에는 동대사종을 모방하여 만든 4m가 넘는 거종(1614년)이 걸려있다. 이 종은 당시 권력을 잡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의 원력으로 주성되었다. 그러나 이 종의 명문으로 인해 풍신(豊臣)가문은 멸문비운을 맞이하고 말았다. 종의 명문인 “국가안강(國家安康) 군신풍락(君臣豊樂)”이 당시 정권을 잡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해치고 도요토미 자손이 임금이 된다는 억지 해석의 빌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1636년에 주조된 일본 지은원 범종.

교토 지은원 대불전 앞 언덕에는 현재 전하는 일본 범종 가운데 가장 큰 대종이 걸려있다. 이 종 역시 크기만 다를 뿐 동대사 범종의 양태를 그대로 본떴다. 지은원은 17세기 초반에 멸문한 풍신(豊臣)가에 이어 정권을 잡은 덕천(德川)가의 원찰이다. 지은원 범종은 풍신가의 방광사 범종이 조성된지 22년 후인 1636년에 주성되었다. 당시 가장 큰 종이었던 방광사 범종보다도 더욱 크게 주성된 연유가 풍신가를 멸했던 덕천가의 위상을 고려했음은 쉽게 짐작되는 일이다. 이 종은 높이 5450mm, 구경 2740mm로서 범종으로서는 세계에서 세 번째 크기다.

미얀마의 범종

미얀마의 불교공예품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것이 범종이다. 전국 각지의 웬만한 불교사원을 방문하더라도 반드시 범종을 볼 수 있다. 사원을 찾은 신도들은 사원 입구에 걸려있는 3구1조로 구성된 범종을 당목으로 각각 한번씩 3번을 쳐서 경건한 참배의지를 고한다. 서쪽국경에 인접한 인도가 불교의 종주국임에도 불교사원에서 범종을 사용하지 않았던 점에 비하면 크게 다른 점이다.

미얀마 범종의 전형양식 역시 고리와 몸체로 구분된다. 고리는 원반대좌 위에 두 마리 사자상이 반대로 배치되었고, 그 중심에 고리가 조형되었다. 그 고리에 핀을 꽂아 ∩형의 고리를 연결하여 횡가(橫架)에 걸어 매단 모습이다.

종신부의 형태는 평면상 원형으로 상부가 좁고 하부가 급격히 벌어진 나팔꽃 모습으로 서양종과 유사하다. 미얀마 범종 대부분의 종신 표면에는 미세한 음각선으로 문양과 글자가 새겨졌다. 종의 형태는 상부에만 두 마리 사자상이 조형되었을 뿐, 전반적으로 장식이 거의 없는 단아한 조형이다.

미얀마 알라웅파야왕조의 제5대 왕 보다우파야의 재위기간(1782~1819)에 조성된 민군대종. 무게는 약 90톤이다.

오늘날 전해지는 미얀마의 기념비적 최대의 종은 민군종[The Mingun Bell]이다. 오늘날 세계의 범종 가운데 가장 큰 중량을 자랑한다. 이 종은 현재 미얀마 제2의 대도시 만달레이[Mandalay]에서 북쪽으로 11km쯤 떨어진 사가잉구[Sagaing Division] 민군[Mingun]에 위치하고 있다. 민군대종의 높이는 약 366㎝, 외부직경은 약 497㎝이다. 종신 외부에는 문양장식이 없으며, 하부에 각각 4조씩의 융기선대가 상하로 돌려졌다.

이 종은 미얀마 알라웅파야왕조의 제5대 왕 보다우파야[Bodawpaya, 1740~1819]의 재위기간(1782~1819)에 조성하였다. 제작기간은 1808년부터 1810년으로 2년간이며, 주조에 사용된 재료의 무게는 약 90톤에 이른다. 이 종은 현재 사용가능한 세계 최대 중량의 범종으로 전해진다.

태국의 범종

태국 방콕국립박물관에 전시 중인 아유타야 범종은 아유타야 시대에 주조됐다. 태국의 전통 범종 가운데 최대 크기다.

동아시아 불교국가 가운데 범종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태국을 빼놓을 수 없다. 태국의 불교사원에 가면 범종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특히 큰 사원에는 경전을 새긴 수십여 개의 작은 범종들을 연이어 매달아 놓은 사례를 볼 수 있다. 불자가 그 종 모두를 한 번씩 치고 나아가게 되면 어려운 경문을 한번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게 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태국에는 역사적으로 기념비적이거나 거대한 양식으로 주목되는 범종이 거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지역마다 간혹 상이한 양식사례가 존재하지만 태국 범종의 전형양식은 인근의 미얀마 범종과는 판이하다. 태국 범종의 고리에는 나가(Naga)가 조형되었다. 나가는 인도 신화에서 대지의 보물을 지키는 반(半)신격의 강력한 힘을 소유한 뱀이다. 나가(Naga)는 산스크리트어로 뱀, 특히 코브라 등의 독사를 말한다. 대개 목을 쳐든 코브라의 모습으로 몇 개의 머리를 갖기도 하고 상반신은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나가는 적을 한방에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강력한 독과 상처를 입어도 금세 아무는 놀라온 회복력을 가지고 있어 삶과 죽음을 다스리는 신으로 신앙되었다. 태국 범종의 고리는 머리가 셋 달린 나가가 사방으로 배치되었고 몸통이 고리로 연결되어 정상중심에는 여의보주와 고리가 조형된 모습이다.

태국 범종의 몸체 상부는 반구형의 둥근 형상이며, 하부로 내려오면서 거의 원통형의 모습이다. 하부 종구에는 쇠시리형태의 받침이 부가되었다. 이것은 중국남부, 일본의 일부, 베트남범종에서 볼 수 있는 조형요소이다. 종신에는 문양이 없으며, 넓은 종횡대가 부각된 십자 중심에 원형의 당좌가 조형된 모습이다. 이러한 몸체형상은 베트남 범종과 유사함을 보여준다.

현전하는 태국 범종의 주목되는 사례는 아유타야 박물관에 소장중인 17세기 범종이다. 비록 크지는 않더라도 오늘날 태국 범종의 시원(始原)적 형태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현재 방콕국립박물관에 전시 중인 범종 역시 아유타야시대에 제작된 유물이다. 박물관 야외 광장 중심에 자리한 이 범종은 태국의 전통 범종 유물 가운데 최대 크기이다. 상부 고리에 조형된 머리가 셋 달린 나가의 긴장된 모습에서 불법수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베트남의 범종

베트남 하노이박물관에는 1m 이내 크기의 동종 10여 구가 전시돼 있다.

베트남의 예술문화는 중남부의 인도계와 북부의 중국계로 구분된다. 중남부는 2세기경 참족에 의해 건립된 참파왕국을 중심으로 인도에서 기원한 종교미술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베트남의 북부는 오랫동안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지속적으로 중국 남방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베트남의 범종은 북부 중국 송나라 및 명나라와 문화교류를 통하여 중국 남부양식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베트남 범종의 고리는 두 마리 용으로 조형되어 중국종의 고리와 매우 유사하다. 몸체의 상부는 천판 주연부가 둥글게 처리되었으며, 하부로 내려오면서 거의 수직의 형태이다. 몸체에는 십자형의 넓은 종횡대가 부각되었고 십자중심에는 당좌가 장식되었다. 종신 상부에는 길상을 의미하는 문양이 장식되었고, 하부에도 용, 구름, 당초 등의 각종 문양이 새겨졌다. 종신 하부에는 이른바 구지과(駒之瓜)라는 종신대좌가 조형되었는데 이것은 중국의 남방 양식, 일본 범종의 일부, 태국 범종 등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이다. 현전하는 베트남의 전통범종은 매우 적다. 하노이 국립박물관에는 1m 이내 크기의 범종 10여 구가 에 전시 중에 있다.

이상으로 불교전래 국가 가운데 범종이 사용된 국가의 각양의 범종양식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각국의 범종은 저마다 독특한 양식특성을 보여준다. 조형적으로 유사함도 있지만 저마다 명백하게 다른 조형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범종의 모습은 창의적 조형요소가 돋보인다 하겠다.

청정무구의 소리로서 인간의 영혼을 제도하는 원력이 종의 몸체에 고스란히 조형된 한국범종! 멀리 산기슭에 자리한 호젓한 산사에서 연사모종의 은은한 종소리가 나그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곽동해

한서대학교 문화재보존학과 교수.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과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생명의 소리를 위한 장엄, 범종〉, 〈전통안료의 문헌사적 연구〉, 〈한국단청의 원류〉, 〈전통불화의 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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