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를 넘어 폭염(暴炎)입니다. 긴 가뭄을 지나고 내리는 빗줄기가 반갑긴 하지만 국지성 호우가 곳곳에 수재민을 낳고 있으니 마냥 반가워할 수도 없습니다. 폭염과 폭우로 습도가 올라 불쾌지수마저 높은 만큼 사소한 말다툼 마저도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때입니다. 아울러 이웃에 수재민이 없는지 살펴보고, 그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작은 정성을 보태는 불자들이 됩시다.

최근 인천 초등학생을 엽기적으로 살해한 사건이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시신을 토막 내고 장기를 적출하는 등 여고생이 벌인 일이라기엔 너무나 믿기지 않습니다. 더욱이 법정에서 참회와 자성의 모습을 보이기보다 자신의 형량에 집착하는 태도는 생명경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까움이 앞섭니다.

불교는 연기론적 관점에서 모든 생명체를 상호연관된 존재로 인식합니다. 따라서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작용 관계이며, 파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상생공존(上生共存)해야 할 동반자로 여깁니다. 이를 간과하고 서로가 생명을 해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면 우리 사회는 원한과 분노가 쌓여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하찮은 미물중생이라도 그 생명을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을 함부로 경시하고 무분별하게 죽이는 세태를 보면 중국 천태지자(天台智者) 대사의 ‘해원석결(解寃釋結)’이란 법문이 떠오릅니다. 중국 양무제 때 지자대사가 어느 날 지관삼매(止觀三昧)에 들었습니다. 그 때 산돼지 한 마리가 몸에 화살이 꽃힌 채 피를 흘리며 지나갔습니다. 곧 이어 사냥꾼이 뒤를 쫓아와 “산돼지 한 마리가 이곳으로 지나는 것을 보지 못했는가?”고 물었습니다. 지자대사가 말했습니다.

오비이락파사두(烏飛梨落破蛇頭)
사변저위석전치(蛇變猪爲石轉雉)
치작엽인욕사저(雉作獵人欲射猪)
도순위실해원결(導順爲說解怨結)

“삼생전(三生前)에 까마귀가 배를 쪼아먹고 무심코 날아가자, 나무가 흔들리는 바람에 배가 떨어져 아래서 햇볕을 쐬고 있던 뱀이 머리를 맞아 죽고 말았다. 이렇게 죽게 된 뱀은 돼지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고, 뱀을 죽게 한 까마귀는 생을 마치고 꿩으로 다시 태어나 숲 속에서 알을 품고 있었다. 이때 돼지가 칡뿌리를 캐먹다가 돌이 굴러 내려서 꿩이 죽었다. 이렇게 죽음을 당한 꿩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 사냥꾼이 되어 그 돼지를 활로 쏘아 죽이려 한다.”

지자대사는 이들의 지난 삼생사(三生事)를 보시고 더 큰 원결과 악연으로 번져가지 못하도록 사냥꾼에게 해원(解寃)의 법문을 설해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이 도리는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연기의 법칙입니다.

명(明)나라를 세운 개국 황제 주원장(朱元章)은 승려 출신이었습니다. 주원장은 어렸을 때 자주 황각사(皇覺寺)라는 절에 가서 놀았습니다. 이 절의 장로는 주원장의 총명함을 눈치 채고 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덕분에 주원장은 어린 시절에 고금의 문장들을 두루 통달할 수 있었습니다. 주원장이 열일곱 살 되던 해, 그가 살던 회북 지역에 큰 가뭄이 들고 전염병까지 돌게 되었습니다. 그의 부모와 형이 이때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북적이던 마을은 사람들이 매일 죽어나가자 텅 비었고 처연함만이 감돌았습니다. 오갈 데가 없던 주원장은 결국 황각사로 들어가 사문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는 매일 마당을 쓸고, 향불을 피우고, 북을 두드리는 일을 맡았습니다. 이런 그에게 노승들의 꾸지람이 쏟아졌지만 참고 견디며 도량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재해가 날로 심해져 도조를 받아 유지해야 했던 황각사도 더 이상은 어쩌지 못하고 승려들을 내보냈습니다. 주원장 역시 탁발승이 되어 길거리를 떠돌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3년 후 다시 황각사로 돌아와 수행하고 있을 즈음 곽자흥의 수하에서 군관으로 있던 친구 탕화(湯和)가 편지를 보내와 홍건군에 가담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여러 곳을 편력하며 출세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 주원장은 곽자흥의 봉기군에 가담해 기지를 발휘, 여러 전과를 올렸습니다. 1355년 곽자흥이 죽자 주원장은 봉기군의 영도권을 장악하게 되었으며, 이로부터 장기간의 전투 끝에 중국을 통일하고 명나라를 세워 황제로 등극했습니다.

주원장이 황제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과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 도량(度量)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전염병으로 부모형제를 잃었거니와 사람이 죽어나가는 처참한 광경을 목도했던 그는 비록 전장의 장수였다고는 하나 함부로 적군을 도륙하는 일은 벌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다른 이에게 원한을 짓는 일이 없었습니다.

주원장의 예처럼 남에게 원한 살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원한은 남을 위한 배려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때 생깁니다. 따라서 원한을 짓지 않으려면 나의 욕심을 버리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내야 할 것입니다. 지혜로운 이의 삶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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