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는 인연 속에서
자신의 내면 알아차리면
타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어

장마가 그치고 땡볕 아래 무성하게 자란 풀을 보며 지난 겨울 이사하며 마주한 마당과의 첫 만남을 떠올린다. 가업을 챙기느라 이사하며 고단하게 짐 정리를 하던 나에게 눈 덮인 넓은 마당과 푸른 어둠 속에서 빛나던 눈 덮인 소나무는 하나의 경이로움이었다. 자연의 대기에 온몸을 고스란히 내맡기고 찬바람에 의연하게 미소짓는 소나무와 눈을 마주하던 순간 내 몸에서도 푸른 피가 새롭게 흐르듯 묵은 피로까지 풀리며 따뜻한 위로가 느껴졌다. 마당은 바람과 석양의 길목인양 빗질한 노을과 조우하며 시간을 조율했다. 겨울 서정도 잠시잠깐 넓은 마당은 자고일어나면 여기저기 풀들이 무성하다.

집안 여기저기 돌봐야하는 잔솔질도 많아졌다. 풀을 뽑고 날벌레가 서식하지 못하도록 청결하게 하는 등 가족의 건강을 위한 집안을 돌본다. 마당 구석의 이끼와 돌틈의 풀, 장맛비를 흠뻑 들이킨 여름꽃들 사이로 기세등등 활개를 치는 날벌레는 초대하지 않아도 찾아와 여름 대기의 습도와 더위를 즐기며 제 존재를 증명하곤 한다.

무성한 생명력과 공존하며 서서히 몸의 힘을 빼고 ‘그저 그렇게’ 보며 느껴본다. 무더위와 날벌레의 방문도 다 한여름이 건네주는 계절의 이야기라고 여겨본다. 여름방학이 되자 학기 중에 두문불출하던 학생들이 간간히 찾아와 인생다반사 자신들의 속내를 털어놓고 가며 연신 ‘고맙습니다.’ 한다.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일어나지 싶다. 현상이 내면의 소리이듯, 내게 다가오는 인연들도 다 내 거울 같아서 그들의 속내를 들으며 내 안의 깊은 소리를 듣는다. 늦깎이 학생들의 학문 입도 사연은 제각각이다. 70세 훨씬 넘어서 박사학위를 받게 된 제자의 사연은 누구도 나이를 핑계 삼아 배움을 게을리 할 수 없음을 경책한다. 필자보다 인생의 선배로서 보여주는 향학열과 겸양의 지적 욕(慾)·념(念)은 별경심소(別境心所) 유식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한다. 선한 욕구와 희망의 욕(慾)이 인생을 바르게 이끄는 원동력이며, 선택한 바를 지속적으로 알아차리는 바른 마음가짐의 염(念)이 늙지 않는 생명력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한다. 만학의 학생들과 나누는 정담과 학문의 법거량은 내면 깊숙한 데서 샘솟는 욕구의 표현이다. 내가 만나는 인연들 속에서 다시금 나 자신을 확인한다. 자신의 내면을 더 깊이 잘 알아차릴수록 타인을 더 잘 이해하는 이치이다. 여실지자심(如實知自心)이라는 가르침이 있다. 수행의 첫걸음이 자아의 무지를 아는 일이듯, 자신을 진실되게 아는 마음이 부처님처럼 되는 훌륭한 마음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진실되게 자신을 아는 마음이 참된 지견이며 여래의 마음일 것이다.

한여름 무더위와 날벌레 그리고 마당을 방문한 무수한 풀들과 인연들과 나누는 소소한 만남 속에서, 그동안 내 안에 잠들어 있어 알아차리지 못한 내면의 깨어남을 경험한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몸과 마음을 살핀다.

한여름 땡볕 아래 마당 가운데 서 본다. 8월 하늘 어딘가에서 주춤거리며 다가올 시원한 소나기 한 차례 오실 듯, 지난 겨울이 여름에게 미처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가 산들바람 되어 맴돈다. 내게 다가오는 인연과 자연은 마치 미개봉의 이야기 같다. 마당의 소나무처럼 ‘그저 그렇게’ 스쳐가는 구름에게 물어보는 마음으로 앞으로 내게 다갈 올 미지의 관계를 꿈꿔본다. 나를 비춰줄 관계를. 소나무는 온갖 풀 덩쿨이 감싸 올라서 성가시고 간지러울텐데도 여전히 여유롭게 미소짓듯 산들바람을 보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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