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대조사 열반 32주기에 즈음하여

<박노승 종의회 부의장>

나는 매년 음력 4월이 되면 무한한 감창(感愴)에 잠긴다.

왜냐하면 이달은 근세 우리불교의 큰 별이요. 내가 하늘과 같이 우러러 경모하며 믿어오던 상월대조사님께서 사바세계와 인연을 끊은 달이기 때문이다.

바로 32년 전인 음력 윤 4월27일 긴 여름날의 어둠이 구인사 경내에 깔리기 시작한 이날 저녁 일생을 성스러운 구도자로서 대도인으로서 자재한 법력과 무량한 자비로 많은 중생을 제도하여 오시던 상월대조사님은 그 문하에 귀의한 수만 중생을 뒤로 남기시고 숙연히 열반에 드셨다.

나는 그때 구인사에 머물고 있었다. 입멸하시던 그날 두 차례에 걸쳐 대조사님의 부름을 받고 그 침실에 갔던 바 분명한 음성으로 "나는 오늘은 넘기지 못할 것이다. 회장에게는 연락이 되었나" 하시는 것이다. 회장은‘故'박형철 전 참의원장을 가르키는데 그날 서울에 무슨종교 회합이 있어서 부재중이었다.

또 대조사님께서 삼척에 계시는 어머님(자당님)과 친척들에게 속히 연락하라기에 사무실에 와서 전화를 하고 있는데 급히 올라 오라는 연락이 왔다. 올라가니 이것이 웬일인가? 잠이 드신 듯 조용히 열반해 계셨다.

설마했는데 실로 이순간 슬픔에 앞서 앞이 캄캄하며 천지가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큰 의지처를 잃은 실의 (失意)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이 비보(悲報)가 전파를 타고 전국에 알려지자 신도들은 일손을 멈추고 구인사로 구름과 같이 몰려 왔다. 장례가 끝나는 그날까지 대조사님의 가심을 슬퍼하는 곡성은 연일 구인사 경내에 진동하였다.

그날을 생각하면 추억이 새롭게 가슴을 메운다. 참으로 대조사님에 대한 그리움을 이 순간에도 억제할 길이 없다. 상월대조사님의 열반 32주기를 보내면서 대조사님께서 보여주신 잊을 수 없는 자애(慈愛)로움을 떠올려 본다.

불교에 인신난득(人身難得)이고 불법난봉(佛法難逢)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불교와의 만남은 깊은 인연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불법의 신앙문에 든지 어언 35년이 되었으니 불법인연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철이 들고 부모님의 슬하를 벗어나 자립생활을 하다 보면 인생에 대한 고뇌와 회의(懷疑)를 느끼게 된다. 인간이 무엇 때문에 이세상에 나와서 우수사려 (優愁思慮)와 비탄고민(悲嘆苦悶)속에서 사는지 알 수가 없다.

자타를 막론하고 자기의 삶에 대해 의의를 느끼고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산다고 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인간사회는 고통의 연속이며 어떠한 가정을 보더라도 평화와 행복은 일시적일 뿐이다.

인생이란 그 자체가 무상한 것이다. 천지와 같이 믿었던 부모도 때가 이르면 이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며 반석같이 믿고 서로 의지하고 동고동락해 오던 부부사이도 생리사별(生離死別)이 없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인생의 실상을 나는 내 주변에서 수 없이 보고 겪고 느껴왔다. 잠깐 동안에 몸은 늙어 자기 자신도 역시 이 세상에서 떠나버리고 말지 않는가 누구나 고요한 밤에 잠자리에서 깨어나 곰곰히 생각해 본다면 자기 자신이 무엇 때문에 살아가며 죽어서는 어떻게 될것인가 하는 생각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인생이 이렇게 모든 인생고를 겪으면서도 이것을 남의 일과 같이 피상적으로 생각할 뿐이고 여실하게 자기의 고통인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일시적인 향락에 빠져 있기 때문에 진실한 삶을 찾으려는 구도발심(求道發心)을 못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70년 가을 처음으로 구인사를 찾았다. 그 이전부터 집안 어른이 소백산에 계시다는 말은 들어왔다. 그러던 중 67년부터 실질적으로 구인사에서 대조사님의 중창불사를 보좌하고 계시던 장형 박형철 (2002년 작고)의 인도를 받아 구인사에 가게 된 것이다. 그때 나는 원각사 (圓覺寺)란 출판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거실로 안내를 받아 처음으로 대조사님을 친견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대조사님은
“너는 돌아가신 부친모습을 많이 닮았구나.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진실한 믿음이 있어야 하느니라.불법은 먼곳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세속 가운데 있고 일상생활 속에 있느니라. 바른 마음으로 직장에 충실하고 인간관계가 원만하고 집안 간에 화목하는 것이 다 불법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아직도 나의 귓전에 생생하다.

위(威)와 덕(德)을 갖추신 도인의 풍모 깊은 감응을 주는 고매한 인격 말씀을 듣고 있는 동안에 나는 마음속으로 “집안에 이렇게 훌륭한 어른이 계시는 구나”하며 깊이 감복하여 시종 머리를 들지 못하였다. 또 자상하고 자애로움에 따뜻한 혈족의 정을 느꼈다.

당시 구인사는 친견실(현 삼보당)을 건조 중이었고 몇 채의 목조건물 밖에 없었는데 대조사님께서 미래 발전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멀지 않아서 구인사가 크게 발전할 것으로 확신하였다. 대조사님은 오늘날  천태종의 놀라운 발전을 미리 예견하신 것이다.

그 뒤로 종단 발전의 모습은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불가사의 하였다.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것도 다 이루어졌던 것이다. 실로 대조사님의 놀라운 묘지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뒤에 대조사님께서는 나에게 감사위원이란 직책을 맡기시고 종단 일에 힘써가라는 당부를 하셨다. 그러시고는 “불사에 성의를 기울이면 개인의 소망도 자연히 잘 이루어지는 법이다.”라고 하셨다. 그 때 그 말씀을 나는 뇌리에 깊이 새기었다. 나는 우선 참된 신앙인이 되고 그리고 성심과 전력을 다해 대조사님의 뜻을 받들고 감사위원의 책무를 다할 것을 굳게 서원했다.

돌이켜 볼 때 짧지 않은 35년 세월 속에 감사위원으로 17년 동안 봉직했고, 그 후 종의회 의원과 천태종보 월강금강 편집위원으로 18년 일했다. 속절없이 흘러버린 35년 세월 속에 나는 감사위원 종회의원, 편집위원 책무를 맡아 성의를 다해왔다.

이처럼 대조사님의 재세시나 열반 뒤에나 항상 구도(求道)의 정신으로 사명감을 갖고 직무수행에 임해 왔다. 그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나의 수행의 길이요 대조사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의 길이라고 굳게 믿었다.

교세가 커지고 신도조직이 확산 되어감에 따라 소위 감사의 업무도 복잡해지고 증가하였다. 지방의 신도회 가운데는 신도회의 본분과 사명을 망각하고 알력을 일으키고 상호간의 불신으로 분열되는 불미스런 일들이 일어나곤 했다. 따라서 종단 재무 감사뿐만 아니라 때로는 이러한 문제까지 조사 처리하다보니 가끔 실망과 괴로움으로 비애를 느낄 때도 있었다.

더욱이 대조사님 열반 직후 일어났던 종단 내의 혼란으로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구인사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도량이다. 대조사님의 법신이 상주한 도량임을 굳게 믿고, 2대 종정 남대충 대종사와 3대 종정 김도용 대종사의 뜻을 받들면서 초발심을 굳게 지키고자 하였다.

나는 천태종신앙을 하기 전에는 불교신앙이라 하면 산사(山寺)에가서 불상에 예나 드리고 정초나 초파일 등에 사찰(寺刹)을 찾아가서 불공을 드리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천태종에 입문하고부터 불교는 스스로를 완성시키고 마음을 바르고 밝게하여 자성(自性)을 깨닫는데 있음을 알게 되었다. 즉 불안과 고뇌에서 벗어나 안심임명(安心立命)을 얻는데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기연마 즉 염불정진의 실천이 있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일상생활에서 나쁜 생각이나 나쁜 짓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행하면 그리하여 스스로 마음을 맑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임을 사무쳐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불교의 신앙단체란 보리심(菩리心)을 일으켜 부처님의 가르침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화합단체임을 알게 되었다. 즉 신앙단체란 개개인의 밝은 생활을 이루고 남도 행복의 길로 인도하려는 정신적인 수행단체로 그 결속과 친화는 사회의 어느 단체보다도 굳고 두터움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단체적 신앙 생활을 통해 자신의 혁신을 기해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원래 성격이 좀 과격하여 사회생활에서나 가정생활에 있어서 자기주장만 하거나 큰소리로 화를 내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러나 나는 불교신앙을 통해 유화(柔和)와 인욕(忍辱)과 애어(愛語)가 신앙인의 생활상 실천 덕목임을 알고 항상 이를 자각하며 참회의 생활을 하고 있다.

상월대조사님과의 만남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그 만남으로 인해 나의 인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나의 신앙생활을 열어 주시고 불법인연을 심어주신 은혜를 가슴에 새기며, 그 가르침을 받들어 나가고자 결심을 더욱 굳게 다진다.

금강불교 3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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