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사제폭탄 막으려면
시주자의 출가 비판처럼
교수 권력 감시 기능 필요

얼마 전, 또 한 번 대학이 부정적인 측면에서 사회의 주목을 끌었다. 연세대에서 발생한 사제폭탄 사건이다. 옛날 같았으면 아마도 감히 스승에게 원한을 품어 범행을 저지른 용의자의 ‘패륜’은 여론의 뭇매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도덕주의적 질타보다 “도대체 어느 정도 갑질을 당했으면 이런 일까지 꾸몄을까”와 같은, 대학 내 상하관계 속 착취에 노출된 용의자의 상황을 이해해보려는 여론이 더 강한 것 같다.

최근에 ‘을’의 인권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이 높아진데다가, ‘인분교수사건’이나 교수의 표절·성범죄·횡령 사건들이 터지면서 대학사회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높아진 것이다.

대학에 만연된 교수 갑질의 직접적인 원인은 간단하다. 권력의 비대칭성이다. 교수는 마음만 먹으면 석·박사 과정 학생의 출세 길을 적어도 국내에서 막아버릴 수 있다. 반대로 대학원생이나 조교 등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법률적 장치들은 미비하다. 요즘 대학마다 인권센터들이 있긴 해도 많은 경우에는 있으나마나다. 거기에다 보이지 않는 계급적 차이도 작동된다.

연세대 교수를 포함한 중상위 계층의 자녀라면 대학원을 가도 국내 대학원을 가서 이 고생을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대다수 국내 대학원 진학자의 계급적 배경은 교수들보다 열악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처럼 서로의 관계가 경제·사회적 차이의 영향을 받는 위계적 사회라면 이런 부분도 비대칭적 관계 형성에 기여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교수권력에 대한 견제장치의 미비가 문제다.

이와 동시에 교수 갑질이 성행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배경은 바로 교수 사회의 ‘분위기’다. 사회심리학에서 알 수 있듯이, 한 개인의 생각과 행동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가 소속되는 소(小)사회다. 국내 교수 사회가 어떤가? 만약 회식자리에서 한 교수가 “우리 대학원생이 착해서 내 아들을 학원에도 차로 데려다 준다”라든가, “대학원생이 심부름하다가 일을 잘못 처리해서 나한테 크게 혼났다”라고 동료들에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면, 그 동료들이 정색해서 ‘인권침해’라고 비판을 가할 가능성은 과연 어느 정도 높을까? 요즘 문제가 된 한 교수가 “젊은 여자는 정신병자만 아니라면 거지가 없다는 말이 있다. 구걸하느니 당당하게 매춘으로 살 수 있다”라든가 “권력만 가지면 미인은 절로 따르게 마련이다.”와 같은 말들을 책에다가 자신있게 쓸 수 있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지성인들의 세계라기보다는 차라리 조폭을 더 방불케 하는, 극심한 인권침해를 유교적인 온정주의·가족주의로 덮어주며 당연화시키는 이런 교수사회의 집단적 ‘분위기’를 과연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불가에서 잘 알려진 것은, 승풍(僧風)의 높고 낮음은 재가자들의 엄격한 요구 여부에 달려 있다는 거다. 단가(檀家), 즉, 시주들이 출가자들의 지계(持戒)를 나서서 요구하고 수행보다 보직·재물에 관심 많은 승가 구성원들에게 비판을 가할 수 있다면 수행작풍이 절로 높아지게 돼 있다. 일반사회도 마찬가지로 교수사회에 대한 감시의 고삐를 늦추면 안된다.

한국에서 교수가 지닌 권력의 크기를 생각해보면 한 순간이라도 감시를 받지 않으면 권력남용의 가능성이 생긴다. 일반사회가 교수신분의 보유자들에게 냉정한 시선을 보내며 기회 닿을 때마다 교수사회 민주화, 인권 감수성의 제고, 탈권위주의와 성평등윤리 엄수 등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교수사회의 분위기도 바뀌고 이번과 같은 사건의 발생 확률도 낮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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